역사는 타이밍, 사람, 상황 그리고 우연의 복잡한 얽힘이다
- 돈 리트너
동아시아 역사에 대해서 서구인들이 흔히 갖는 편견 가운데 하나가 현재의 국가 구도(중국, 한국, 일본, 몽골) 그대로 역사를 해석한다는 점이다. 조금이라도 역사를 배운 한국인이라면 병자호란은 중국이 아닌 여진족이 쳐들어온 것이고, 그 여진족(아이신기오로)들이 산해관을 넘어 중국을 차지해서 청나라가 되었다고 본다면 서구권에서는 그게 원이든, 요든, 금이든, 청이든 그냥 중국이라고 부른다.
우리(동아시아인들)가 유럽을 국가 단위로 이해하려는 오류와 똑같다. 로마사나 십자군전쟁 좀 읽어봤다고 아는체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나는 움베르토 에코를 읽어 나가다가 바우돌리노에 이르러 유럽 이해하는 것을 포기했다)
우린 스페인 사람이 아니라 바스크 사람이다.
헤센 지역 사람들을 (가난한) 동부 독일 사람들과 비교하지 말라.
교활한 잉글랜드 놈들 같으니라구 - 스코틀랜드인
갈라치아는 원래 폴란드와 체코의 특색이 섞여 있습니다. 그리고 우린 프로이센인들을 싫어하죠.
어디 사람이냐구요? 아름다운 알프스 티롤에 살고 있어요. 저는 남부 티롤의 고유 언어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어도 할 줄 안답니다. - 돌로미티 코르티나담페초 주민
땡볕에 새까맣게 탄 마르세이유 건달놈에게 내 딸을 어떻게 주냐구!! - 일드프랑스 지역 프랑스인
이해가 가는가? 우리가 그저 유럽, 그저 이탈리아인, 체코인, 루마니아인이라고 구분하는 것과 그들이 생각하는 자신들의 정체성은 매우 다르다. 이탈리아가 북부와 남부로 분리독립 움직임이 있다는 것은 언론을 통해 들어보셨을 것이다. '이탈리아'는 역사적으로 봐도 사실 매우 애매한 국가적 테두리이다. 긴 중세/르네상스 시대를 지나면서 그들이 지역간에 얼마나 상호 투쟁, 이간질을 해왔는 지 알면 '이탈리아는 왜 아직도 존재할까?'라는 말에 동의할 것이다. 체코는 보헤미아와 모라비아라는 정체성이 다른 두 민족/지역이 공존하고 있지만 다름과 상호인정이 공존한다. 동유럽 국가중 유일한 비슬라브계 국가인 루마니아는 가까이 이웃한 불가리아, 우크라이나, 헝가리보다는 멀리 떨어져 있는 독일 남부지역과 정체성이 비슷하다. 둘 다 로마 군인들이 정착해서 토착민들과 공동으로 만들어졌다는 먼 역사와 불과 80년전까지만 해도 독일인들이 많이 살았고 여러 분야에서 큰 영향력을 끼쳤다는 가까운 역사에 기인한다.
그나마 프랑스는 국가라는 정체성이 강한 편에 속한다. 이웃 국가들과는 다른 국가적 정체성 사건들(백년전쟁, 절대왕정, 시민혁명)의 역사가 있어서인 것 같다. 영국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 등의 지역별 정체성이 강하다.
독일, 스페인, 발칸반도 국가들은 프랑스나 영국에 비해 지역적 정체성이 강하게 작용한다. 툭하면 분리 독립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동유럽에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미승인 국가?도 더러 있다)도 그러한 지역적 정체성 차이에서 비롯된다. 더 웃긴건 북방의 바이킹이나 동방의 유목민이 침입해와서 아예 자리를 잡아버리거나 전쟁에 휘말려서 원래 살던 지역을 민족 전체가 통째로 이사가버리는 일도 흔히 있었다보니 동아시아인들이 유럽을 이해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몽골제국 시대에만도 중국 북방에는 몽골 외에 옹기라트. 케레이트. 메르키트. 위구르 등의 (각자의 정체성이 매우 다른) 부족들이 존재했다. 그 서쪽으로 가면 실크로드 상의 수많은 유목민들이(물론 징기스칸님께서 싹 정리해버리셨지만), 동쪽으로는 여러 여진부족(숙여진. 생여진. 흑수여진)과 고려가 있었다.
중국의 정체성이 다소 헷깔리는 이유는 사실 중국인들보다는 북방 유목민족들에게 원인이 있다. 북방 유목민족들이 계속해서 밀고 내려와 섞이는 바람에 민족적 경계가 모호해진 것이다. 물론 중국도 통일왕조가 생길 때마다 북방을 쳐들어간 적이 있지만 상호간의 침략 비율은 매우 불균등하다.
특히 위진남북조 시대에 중원으로 내랴와 터를 잡고 번듯한 나라(수, 당)까지 세웠던 선비족들은 이제 중국인들의 정체성과 계통을 분리시키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은 1500년 이전의 역사이고, 아직 그 스스로의 정체성이 살아있는 몽골, 여진, 위구르, 티벳, 기타 수많은 소수민족들은 이야기가 다르다. 그들이 자연스럽게 중국이라고 묶일 이유는 가장 최근에 중국을 지배했던 이민족(청나라)들이 티벳과 위구르, 몽골'도' 지배했다는 것 뿐이다. 중국이 지배한 게 아니라, 청나라가 지배했다는 게 중요하다. 만주인들은 그들이 중원을 지배했듯이 다른 나라들도 그냥 지배했을 뿐이다. 그들은 종교도 다르고, 민족 정체성도, 문화도, 언어도 다르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자연스럽게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이 그것을 계승했다....
(여담이지만 홍타이지의 청나라 팔기군이 당시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강대국에 속했'었'던 명나라를 누르고 중원을 빼앗은 것은 대체역사소설에 가깝다. 만약 16세기 '임진왜란시기' 조선 지식인들에게 그 소설을 공개했다면 아무리 소설이더라도 개연성이 너무 떨어진다, 이게 말이 되냐고 욕먼 잔뜩 먹었을 것이다. 당시 조선의 명량해전도 개연성 떨어지긴 마찬가지지만…)
19세기 중국과 무역하던 유럽인들이 청나라를 (ching이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China라고 부르면서, 일본 관동군이 비열한 협잡질 끝에 만주국을 벗어나 중국을 침공하면서, 전중국 인민들의 공산주의적 평등을 설파한 중국공산당이 1948년 국민당군을 대만으로 몰아내면서, 마오쩌뚱이 소련에 대항해 공산주의의 새로운 종주국이 되고자 주변국들과의 긴장감을 날카롭게 세우면서, 다시 말해 우연적인 사건에 필연적인 인과관계가 계속 겹치면서 현재의 중국이 만들어진 것이다.
신해혁명 이후 현대 중화인민공화국이 누리고 있는 가장 큰 헤택은 넓은 영토나 많은 인구가 아닌, 이런 개념적 정의(중국이라는 개념의 영토적/민족적 정의)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오해는 많은 불편한 관점들을 양산한다. 그리고 이웃 국가/민족에 대한 영토적, 문화적 폭력으로 이어진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권 국가들이 진심으로 중국을 위협으로 여긴다면 그들이 해야 할 첫번째 우선순위는 10나노 이하 반도체를 못만들게 하거나 대만 침공을 못하게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중국이 사실은 진짜 중국이 아니라는 것을 널리 알리는 일이다. 다시 말해 현대 중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어느 민족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중국이라는 정체성은 문화적 공통성에 의해서 키워졌다. 다만 중국은 땅이 넓고 역사가 길다보니 여러가지가 뒤섞여 있다는 게 특징이다. 봉신연의, 초한지, 서유기, 삼국지, 수호지 같은 역사/문학작품부터 시작해서 한자에 기초한 시, 서, 예, 그리고 유불선이 합쳐진 중국만의 민속적 신앙(때론 누렇고 뻘건 머리띠를 두르게 하기도 했지만)은 이민족 지배기에도 중국인들이 자신만의 정체성을 지키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가령 먹물 좀 먹었다는 중국인들의 일상 대화를 들여다보면 역사속 위인, 간신, 수호지 등장인물, 고사성어들이 쉽게 등장한다. '이 진회같은 놈. 감히 나를 악비처럼 물먹이려 들어.' 자기들끼리는 아주 자연스러운데, 진회와 악비가 누군지 모르는 이방인들은 당췌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 없다.
중국이라는 정체성을 느낄 수 있는 더 쉬운 방법도 있다. 중국에 가보신 분이리면 어딜 가든 관제묘와 태극권하는 사람들을 보았으리라. 왜 관우인가? 허구많은 삼국지 등장인물 가운데 왜 관우만 신이 되었는가? 정작 신선이 되었다는 여동빈보다 관우를 더 높이 사는 이유를 이방인이라면 이해할 수 없다.
중국은 서왕모 여와와 복희의 신화를 공유하고 황제 헌원을 시조처럼 여기며 치우(동이족의 조상)를 악으로 규정하지만, 하-은-주-춘추전국시대를 거치는 시기까지도 하나의 국가/민족이라는 정체성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오히려 황하, 장강, 한수, 위수, 태행산맥 같은 지리적 여건에 따라서 연, 위, 제, 오, 월, 한, 촉, 진, 초, 조와 같은 지역별 특색이 더 강했다. 삼국지 장비가 자신을 소개할 때마다 '연인 장비'라고 했듯이 말이다. (이 글의 초반에 소개했던 유럽 지역주의와 비슷했다)
그러다가 진왕 영정이 등장한다. 나는 동이족들의 가장 큰 앙숙이 황제 헌원, 전욱, 관구검, 수양제, 이세민, 주원장, 모택동이 아니라 진왕 영정이라고 본다. 전국시대 말기를 풍미했던 합종론과 연횡론을 진왕 영정은 근본부터 부정한다. '우리는 하나다. 나는 하나인 것을 합치는 것 뿐이야.' 진왕 영정에 의해서 중국이라는 개념이 최초로 등장한다.
그러나 원래 다른 것을 하나로 합치려던 폭력(분서갱유, 만리장성이 대표적)은 곧 반발을 초래했고 각지에서 반란군이 조직된다. 그 중에 하나가 오(현재의 항주지역) 지역의 항우이다. 항우는 항연이라는 초나라 대장군의 후손으로 삼촌인 항량을 따라서 궐기해서 파죽지세로 진나라를 지워나간다. 당시 가장 큰 군벌 세력이었던 항우(초나라 출신들)의 주장은 원래의 그것(초는 초의 땅을, 진은 진의 땅을, 조는 조의 땅을)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고조 유방이 명장 한신, 군사 장량, 재상 소하의 스리백 시스템을 이용하여 항우를 물리치고 중국이라는 정체성을 다시 내세운다. (그래서 동이족인 내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중국사 한장면이 홍문의 연회이다. 그때 유방이 죽었더라면..)
중국이라는 만들어진 개념이 한족을 넘어서 원래는 남의 땅이었던 내몽골, 티벳, 신장까지 확장된 것은 앞서 청나라의 영토 야욕 때문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청나라 강점기에 한족들은 반청복명의 기치를 내세웠다. 그들 스스로가 중국이 명나라, 곧 한족의 영역이라고 밝힌 바 있다.
때문에 '중국'을 부정하는 것은 5천년간 이어져내려온 그들의 역사를 부정한다는 뜻이 아니라, 불과 150여년전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서 아닌 것을 아니라고 하면 된다는 뜻이다. 있는(is) 것을 부정하라는 게 아니라, 원래 있었던(was) 그대로 부정하라는 뜻이다.
그렇게만 하더라도 당장 내몽골과 신장, 티벳이 그들의 정체성 territory(같은 조상/역사/문화를 공유하는 공동체)로 독립할 수 있다. 다소 애매한 면이 크긴 하지만 소수민족 비중이 높은 운남, 귀주, 동북 3성(제일 애매하다)도 한족 중심의 중원과 궤도를 달리할 가능성이 있다.
3시에 있을 회의를 기다리면서 괜한 잡설을 늘어놓아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