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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봉 UXer Jul 19. 2024

제주살이

오늘은 성산에서 서귀포로 이동했다. 이번 제주살이는 네번째 책 초고를 쓰는 것이 목적. 얼마나 쓰는 지는 중요치 않다. 올레길을 완주하면서 그저 쓸 수 있을만큼 쓴다고 다짐했으니까. 올레길은 어제 완주헸으니 이대로 돌아가도 후회는 없었다.



201번 버스는 차없이 제주살이 하는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교통수단이다. 다만 제주 버스기사분들은 하나같이 험하게 운전하셔서 엉덩이가 아프고 멀미가 날 지경이다. 정류장 설 때마다 급출발 급정거를 안겪어 본 적이 있나 싶다.


성산에서 서귀포도서관으로 향하는데 중간에 큰 비가 내린다. 전날까지는 기껏헤야 가랑비 내리는 수준이었는데 오늘은 제법 굵은 비가 내린다. 오호홋. 하필 올레길 완주하니까 비가 거세게 내리네? 웃으먄 안된다. 난 웃는 게 아니라 하늘의 조화에 감탄하는 거다.


천리에 통달하면 이렇게 뭔가 딱딱 들어맞는다. ㅋㅋㅋ

남은 삶, 도나 닦을까 보다.


얌전한 카페를 찾아 카공족으로 전업할까 했으나 성격상 남들 눈총받는 데 익숙치 않아서 맘 편하게 일할 수 있는 도서관을 찾아다녔다. 다행히도 제주도는 한라산, 올레길로도 유명하지만 도서관으로도 손색이 없다. 숫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세계 최고 수준이지 않을까 싶다. 맞다. 나는 제주빠이다. 어쩔건데??


사람들이 인스타에 올릴만한 것으로는 제주한라도서관과 서귀포 기적의도서관, 삼매봉도서관이 있겠으나 왔다갔소의 목적이 아닌 이상, 다시 말해 진정으로 열중하고자 하는 이에게 가장 좋은 선텍은 그제 갔었던 성산일출도서관이나 내일 가게될 서귀포중앙도서관일테다.


그런데 표선에서 성산까지는 너무 오래 머물러서 물린

상태, 구내식당으로 유명한 서귀포중앙도서관으로 향한

마음은 어찌보면 당연지사다.


문젠 둘 다 오늘(금요일) 휴관이라는 거 ㅠㅠ


하는수없이 서귀포고등학교 뒷편에 있는 서귀포도서관으로 향했다. (이름이 다소 헷깔리는 것은 내탓이 아니다. 서귀포동부도서관. 서귀포중앙도서관, 서귀포서부도서관, 서귀포도서관) 솔직히 말하자면 쇠소깍에 있는 서귀포동부도서관을 실수로 지나쳐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대안이었다.


서귀포도서관에서 6장 정도 책을 쓰는데 여섯시간을 할애했다. 열람실은 키보드 타자소리가 남들한테 방해될까 염려되어 휴게실에 자리잡고 좁은 원형탁자에서 (적어도 앉아있는 시간동안은) 열심히 쓴게 고작 6장이다. 바보냐?! 있는 자료를 옮기는 건데!!


바보라도 밥은 먹어야 했다. 12시경에 배가 고파 밖에 나왔는데 학교앞임에도 식당이 드물다. 아랫목의 올레시장 부근과는 너무 비교된다. 밥 한번 먹겠다고 정처없이 헤메다가 겨우 입구 한켠 차지한 순대국밥집. 손님이 많아 딩연히 맛있을 줄 알았건민. 아 이건 또 뭐냐??  이 고기 군내를 어찌할꼬. 난 진심으로 순대국밥을 좋아하지만 수저를 들때마다 나는 텁텁한 냄새를 참기 어려워 대충 먹고 나왔다. 나는 몰라도 내 입은 소중하다.


서귀포는 올레시장이 유명한 구도심과 월드컵 경기장이 있는 신도심으로 나뉘는데 서귀포중앙도서관은 신도심에 있어 숙소도 그리로 잡았다. 앞서 밀했다시피 서귀포중앙도서관은 제주에서도 탑인 도서관. 하지만 안타깝게도 금요일은 휴무인지라 막상 오긴 했으나 비까지 오는 와중에 할 일이 없었다.

 

이런저런 일들로 통화하고 카톡하고 메일 확인하고 나서 오늘은 제끼기로 했다. 우헤헤. 6시간 6장의 흑역사는 일상의 안일함에 묻혀 버렸다. 오늘 서울로 돌아갈까 생각도 했지만 그럴 경우 주말이 자신없었다. 바보라도 성실하긴 해야지. 죽기 전에 아는 건 조금이나마 풀고 가야지.


예약해둔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나서 밀린 빨래를 하러 셀프빨래방에 갔다가 모처럼 단백질과 지방을 채우고자 돼지김치찌게와 두루치기를 잘 한다는 식당에 갔다. 제주에서 혼자 밥먹겠다는 데 하도 뺀찌를 먹어서 습관처럼 혼자가도 되냐고 미리 전화까지 했다.


한참 저녁시간임에도 중간에 잠깐 들른 손님 한쌍을 제외하곤 2시간 내내 손님으로는 나 혼지 있었다. 커다란 공간에서 유일하게 의미있는 존재(돈을 내니까)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김치찌게는 제법 밋있었고 돼지두루치기도 평타는 했다. 거기에 더해 손님 자율로 계린후라이와 옛날 소시지 부침이 가능해서 한병먹고 갈까 하다가 소시지를 더 구워다가 혼자서 두병이나 소주를 마셨다. 좀처럼 없던 일이다.


밖을 구경하며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읽었다. 딴에는 사람을 공부했던 게 이럴 때 심심하지 않아서 좋다. 돈이 많건 적건. 잘났던 못났던 내게는 소중한 읽을거리이다. 왜 고개를 푹 숙였을까? 둘이 싸웠나? 저리 으시대는 건 분명 위협을 느껴서일텐데.. 혼자서 두 시간을 (소주와 더불어) 그러고 보냈다.



맛있는 데 왜 손님이 없을까? 다시 먹어봐도 맛있는데. 난 분명 까다로운 입맛의 소유자인데. 점심에 군내가 난다는 이유로 손님많은 순대국밥도 반이나 비웠는데…


2시간내내 손님을 기다린 건 주인장 내외 뿐만이 아니었다.


오늘은 올릴 사진도 별로 없다. 숙소 옮긴다고 비온다고 두손이 꽉차서이다. 제주도는 항상 내게 힘이 되줘서 너무 고맙다. 뭐라도 더 쓰고 가고 싶은데 성품이 검약히고 입도 짧아서 그게 잘 안된다.


내일은 또 몇 장이나 쓰려나…먹기좋게 잘라놓은 당근이나 하나 먹고 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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