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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봉 UXer Jul 18. 2024

제주 올레길 완주


제주살이 3일차. 아침에 날씨를 보고는 도서관 대신 마지막 남은 올레 21코스를 가기로 했다. 그래도 성산일출도서관에 먼저 들러야 했다. 어제 빌린 ‘사기’ 다섯권을 반납해야 했기 때문이다.



성산항 방파제를 휘휘 지나 올레 1코스인지 2코스인지 모를 표식들을 지나 오조리 마을회관을 지나고 성산포성당에 이르면 도서관이 나온다.



어젠 도서관에서 여덟시간 가까이 있으면서 새 책 10페이지 정도를 썼다. 많은 분량은 아니지만 삽을 떴다는 데 의의를 뒀다. 끝나고 나가기 전에 열람실에 들러 사기(만화책)를 다섯권 빌린 것이다. 책으로는 이미 여러번 읽었다. 사마천은 별로 안좋아하지만 춘추전국시대를 디룬 사서가 사기 말곤 없다. 그래서 대강 아는 내용인데 만화라서 빌렸다.



호젓하기로는 종달리에서 하도해변까지가 최고다. 이쪽으로는 관광객들도 잘 안온다. 이제 한바퀴를 돌고나니 제주도 지리가 (주로 해안가이지만) 머리속에 들어온다. 거기는 뭐가

좋고 거어기는 뭐가 어쩌고.. 한적하게 혼자 생각을 정리하규 싶어? 나라면 여기 갈거야. ㅋㅋ


이렇게 짐짓 아는 척 할 수 있는 동네는 고향인 서울 빼고 제주도가 유일하다.


날도 흐린데다가 초속 8~10미터의 바람이 불어 너무 좋았다. 그래도 습도가 높아서 땀이 안나진 않았다. 화장실에서 씻고 선크림도 서너번 다시 발랐다. (그럼에도 탔다 ㅠㅠ)



십여년전에는 북제주의 김녕이 그랬는데 이제 북제주는 관광지로 개발되어 예전의 호젓함이 사라졌다. 서쪽 대정이나 내륙의 곶자왈 근방이 그나마 나은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여기가 명당이다. 재미는 덜하다


문어라면이 보였지만 라면을 안좋아하기에 문어파래전을 시켜 점심으로 먹었다. 제주도 남쪽 해안가에는 곳곳에 문어나 한치라면을 파는데 솔직히 나는 맛있는 줄 모르겠다.



제주 올레길 중에 오름이나 산을 오르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오늘 오른 21코스의 지미봉은 그중 최고로 높았다. 오롯이 오르기만 400미터. 등산로 한번 참 정직하다. 무슨 천국으로의 계단도 아니고.. 4월에 갔던 스위스의 꼬불꼬불한 길이 자꾸 떠올랐다.


스위스? 난 제주도가 더 좋다.


중간에 서너번 숨을 고르기는 했지만 체력이 예전과 다르다. 9코스 초입의 월라봉 오를 때는 그렇게 힘들더니 오늘은 그 두배 높이인데도 크게 힘든 기색은 없었다.


모슬봉. 검은오름. 저지오름. 서우봉. 사라봉. 고근산. 삼매곶공원. 당시에는 다 힘들었다. 10km 걷고나서 올라봐. 안힘든가?



드디어 올레길을 한바퀴 다 돌았다니 뭔가 허전하다. 기분이 어떨지 궁금했는데…겨우 이런 것이었나? 꺼이 꺼이 울 줄 알았나?  신발을 집어던지며 환호성을 지를 줄 알았나? 현실은 겨우 한걸음 더 내뎠을 뿐이다. 참 허무하기도 하지…(인생도 이럴거 아냐. ㅅ)


사계해변 어딘가에서 카메라 한대 깨먹고. 머리가 지저분해 서귀포 올레시장 미장원에서 이발도 해보고.신발이 망가져서 표선의 어느 신발가게에서 3만원 주고 하나 사기도 했고 문닫는다는 것을 겨우 사정해서 남원 어느 식당에서 밥 얻아먹고.. 참 별일이 다 있었다.


거의 다 가서 비가 내렸다. 우산이 없어서 그냥 맞으면서 걸었다. 지나가는 차들이 이상하게 쳐다본다. 그렇게 거지꼴이었나 보다.


내일부터는 다시 도서관에 콕 박혀서 4번째 책을 써야 한다? 아니 쓸 것이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한다가 아닌 할것이다가 맞지.


날이 좋으면 어딜 갈지 고민도 할 것이다. 이제 제주도 버스 타는 데 도가 텄다. 갈치 토막을 내듯이 올레길을 톡톡 끊어서 다닐 생각이다. 한바퀴 돌았으니 그렇게 해도  되잖아?



@ 올레길 완주 증거 (구글 포토 장소)


한라산도 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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