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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 인사이드: 실반지와 의자

당신이 어떤 모습이든. 스포 주의!

by 청반달

동명의 광고를 상업영화로 옮긴 <뷰티 인사이드>. 제목은 '뷰티 인사이드'지만 중요한 장면에는 어김없이 '뷰티 아웃사이드'의 배우들이 포진하면서, 외면의 중요성을 더 강조했다는 비판이 따라다니는 영화다. 실제로 영화를 보게 되면 제목에 너무 집중하는 바람에 매번 바뀌는 인물들의 잔상만 남고, 나머지 장면들은 머리에 남지 못하고 흘러내려간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도대체 어디가 뷰티 인사이드냐고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달콤한 장면은 다 잘생긴 우진이 찍는다. 사실 우진이 이수에게 첫 데이트를 신청하기 위해 여러 날을 기다리면서, 스스로의 생각을 읖는 장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외면의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그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서, 조금 다른 방향으로 우회해보자. 영화를 보다 보면 툭툭 걸리는 부분들이 있다. 거슬린다기보다는 '왜지?'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는 부분들이다. 이 영화에서는 두 가지 사물이 그랬는데, 그 첫 번째 사물은 실반지다. 매일 바뀌는 외모에 따라 옷도 신발도 모두 바꿔 입는 우진이 언제나 몸에 지니는 실반지. 매일 아침 여러 크기의 실반지 중 오늘의 손가락에 맞는 것을 골라 착용한다. 보통 반지를 착용하는 남자는 둘 중 하나다. 패션에 관심이 많거나, 연인이 있거나. 하지만 우진은 둘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두번째 데이트에서 엄마의 가게로 이수를 데려간 우진, 하지만 두 여자 모두 우진이 이 곳에 온 이유를 모른다

이 영화에서 실반지는 우진이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한 장치다. 스스로의 존재를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엄마가 만든 실반지를 끼는 것으로 인간이 태어나자마자 갖게 되는 가장 기본적인, 누군가의 자식이라는 존재 정의를 명확하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일 바꿔 끼우는 실반지와 우진이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엄마의 모습은, 그에게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존재 정의조차 허락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상황에서 우진은 의자를 만드는데 몰두한다. 의자가 바로 두 번째 사물이다. 원작인 광고와 다르게 영화는 주인공의 직업을 맞춤형 가구 디자이너로 설정했다. 이상한 점은 그가 만드는 가구는 온통 의자들 뿐이라는 것이다. 그가 만드는 것 중에서 의자가 아닌 것은 이수의 아이디어로 만들게 된 테이블 정도. 우진은 어떤 점에서 오뛰 꾸뜨르 의자를 만드는데 집착까지 보인다. 사업적인 성공을 위해 표준화된 가구라인 출시를 제안하는 단 하나뿐인 친구의 말을 못 들은 척하면서, 자신의 손으로 의자 만드는 일을 고수한다.

우진이 이수를 만나기 위해 매일 구입하는 것도 의자다. 다른 물건들 중에서도 꼭 의자를 구입한다. 그리고 포장을 다 뜯지도 않은 채로 한 곳에 쌓아 놓기만 한다. 이수에게 매일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다가가서, 꾸며낸 버릇과 직업을 바탕으로 추천받은 다양한 모양의 의자는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마치 우진이 누구에게도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매일 다른 모습으로 세상과는 걷돌기만 하는 것처럼. 우진에게 의자는 단순한 의자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가 한 사람만을 위한 의자 만들기에 몰두하는 것은, 한 사람이고 싶은 그리고 누군가에게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담고 있다.


이수를 만나게 되면서 이런 그의 바람은 충족된다. 매일 다른 모습이지만, 이수에게는 온전히 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험은 매일 달라지는 외모에서 긍정적인 면을 찾게 하고, 그의 맞춤의자에 대한 집착을 옅어지게 한다. 다른 가구 제작에 눈을 돌리고, 못 들은 척하던 친구의 표준 사이즈 가구라인의 출시까지 받아들이게 되는 등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그 전혀 새로운 경험에 심취한 우진은 병들어가는 이수를 눈치채지 못하고 두 사람은 이별하게 된다. 우진은 이수와 헤어지면서도 이수를 위해 직접 만든 오뛰 꾸뜨르 의자를 보낸다. 꼭 주고 싶었다고 말하면서. 그것도 원래 이인용이었던 의자를 개조해서 말이다. 가만히 그 의자를 바라보기만 하던 이수 대신 언니는 그 의자에 앉아 이리저리 몸을 비틀다가 말한다.


"이거 니 사이즌가? 이거 너무 니 사이즈다. 그치?"


우진의 의자 제작 방식에 따르면 우진은 한 의자에 계속 앉을 수 없는 사람이다. 매일 다른 사람의 모습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진은 원래 2인용이던 의자를 분리해서 이수만을 위한 1인용 의자를 만든다. 그가 영원히 두 사람을 위한 2인용 의자를 만들 수 없듯이, 그녀도 그의 곁에 영원히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진의 그런 생각과는 다르게 부각되는 것은, 우진이 선물한 의자처럼 우진이 이수에 꼭 맞는 남자였다는 사실이다. 우진이 그녀의 말소리에 이끌려,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수에 빠지게 되는 것처럼 이수도 우진에게 그런 느낌을 받았다. 신기할 만큼 자신과 잘 맞는 사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첫 데이트에서와 달리 멋진 모습이 아닐 수도 있는 우진을 다시 찾아가지 않았을 거다. 허무한 해피엔딩으로 보였던 마지막 장면은 그제야 이해된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상황에서도 이수가 우진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건 그가 그녀만을 위한 단 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갈수록 선명해져서, 도저히 회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진은 최악의 연인일 수 있다. 매일 바뀌는 외면은 두 사람 간의 관계에 명백한 장애물로 작용한다. 하지만 그건 우진의 매일 바뀌는 모습이 이수에게 낯설게 다가왔기 때문이지 우진이 못난 얼굴을 한 시간들 때문이 아니다. 사실 우진만 외면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리고 예기치 못한 사고로도 우리의 외면은 쉽게 변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외모 변화에도 꾸준히 연인의 곁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그저 외모의 변화가 아니라 갑자기 얻게 된 장애로 한 몸 통제하는 것조차 어려워진 연인이지만, 그 옆을 떠나지 않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이수처럼 사람의 외면이 아니라 사람 자체 즉 내면에 집중한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도 바로 이런 것일 거다. 외모는 결국 한 사람을 묘사하는 많은 방법 중 하나일 뿐이고 쉽게 바뀐다. 그러니 그 안에 든 사람이 누구인지를 자세히 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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