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뽕은 언제나 먹히는 기획일까?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의 새로운 시즌이 얼마 전 시작했다. 하지만 첫 시즌 때와 같이 열광적인 화제성은 전보다 덜하다는 느낌이다. 사람들이 프로그램 자체에 익숙해져서 일수도 있고, 여러 에피소드가 방송되면서 비슷한 내용이 반복돼서 일 수도 있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무엇보다 시간이 흘렀다는 것이 가장 크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시간은 프로그램이 방송되기 시작해서 지금까지의 시간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촛불집회와 탄핵을 거쳐서 새로운 대통령을 뽑았던 정치적 사건의 시간이다. 갑자기 정치와 이 프로그램이 무슨 상관이냐고 묻는다면, 답하는 대신에 이렇게 질문하겠다. '어서와'가 2017년이 아니라 2015년, 2016년에 방송을 시작했다면 지금과 같은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
우선 나는 이 프로그램이 소위 '국뽕'을 자극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대해서 잘 모르는 외국인들이 한국을 자유롭게 여행하면서, 한국의 음식, 문화, 역사를 배우고 경험하고, 감탄하기도 하고 공감하기도 하는 모습을 싫어할 한국사람은 없다. 사실 그건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국뽕은 언제나 먹히는 기획일까? 아니다. 내가 '어서와'의 성공에서 정치적 사건들이 중요하다고 보는 이유가 여기 있다. 예를 들어서, 나 스스로 생각해봐도 내가 진짜 괜찮은 사람일 때, 옆에서도 나를 인정해 준다고 생각해보자. 쑥스럽겠지만 절로 수긍이 갈 것이다. 반면 스스로 맨 밑바닥을 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와중에 옆에서 칭찬이 들려온다면, 쉽게 동의할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나를 놀리는 건가 생각하게 되면서 수치심이나 화가 날 수도 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대한민국은 살기 좋은 나라다.'라는 명제에 코웃음을 칠 수밖에 없는 자기모멸의 시간을 몇 년 간이나 겪었다. 그리고 그건 바로 타인의 인정을 받아들일 수 없는 시간이기도 했다.
2014년에는 세월호의 사고로 전국이 충격에 휩싸였다. 그다음 해인 2015년도 사정이 더하면 더했지 나아지지 않았다. 2015년 한국사회가 거쳐온 시간들을 복기해보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불쾌했던 시간들의 연속이다. 2015년에는 헬조선이라는 신조어와 수저 계급론이 유행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에서의 탈출을 꿈꿨다. 모 기업에서는 1년 차 신입사원에게까지 희망퇴직을 종용할 정도로 경제상황은 막막했고, 교육부는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정교과서 편찬을 발표했다. 세월호 사고에 이어서 메르스 사태, 백남기 농민 사건 등으로 정부는 국민을 보호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2016년도 새해를 여는 날, 손아람 작가의 망국 선언문이 큰 관심을 받은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망국을 바라기에도 모자란 시간에 자기 위안을 위해 마약을 삼킬 사람은 없었다.
탄핵 전까지의 시간들이 '어서와'의 큰 성공을 위한 필수 조건이 결여된 시간이었던 것과 반대로, '어서와' 파일럿 프로그램의 첫 방영일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자신감이 최고조에 이르러서, '국뽕'이 가장 잘 통할만한 시기였다. '어서와'의 파일럿 방영일은 2017년 6월 1일,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채 한 달이 되기 전으로, 대통령의 80%를 넘는 높은 지지율이 뉴스거리였던 시절이다.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은 대통령 개인에 대한 선호뿐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자신감의 표출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외신들은 평화로운 집회와 그것이 이룬 성과, 새로운 대통령의 선출 등 일련의 과정들을 보도하며 찬사를 보냈고, 대한민국은 그 찬사에 도취되어 있었다. 패배감과 절망에 빠져있던 사람들은 일종의 승리감을 맛보았다. 사회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나아질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한국사회를 휘감았다. 때마침 방영한 '어서와'는 한창 고양된 한국사회의 자신감에 맞장구를 치는 프로그램이었다. 정치적 승리감과 성숙한 민주주의를 이뤘다는 자신감을 문화, 음식, 역사, 건축, 사람 등을 매개로 다양한 방향으로 이어지게 하고 증폭시켰다.
물론 시기적절함 이외에도 '어서와'의 성공 요인은 다양하다. 하지만 그 시기적절함 없이는 '어서와'가 지상파, 케이블, 종편을 통틀어 동시간대 1위라는 유래 없는 성과를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