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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트라이트: 나약하지만 강한

세 명의 방해자. 스포 주의!

by 청반달

88회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과 각본상을 수상한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실화 영화는 대부분 오락성을 보충하기 위해 극적인 각색을 거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각색을 하긴 한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건조한 이야기 방식을 택했다.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크게 성공하는 여러 할리우드 영화와는 다르게 극적인 요소가 적은, 뜨겁거나 차갑지 않은 미지근한 영화가 되었다.

이야기가 미지근하다는 건 대부분 단점으로 여겨지지만, 이 영화에서는 장점으로 작용한다. 바로 어느 세대의 관객들이나 큰 거부감 없이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성범죄를 고발하는 영화는 대부분 끔찍한 피해 장면이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는 피해자의 입과 얼굴 표정을 통해서, 분노를 담은 투박하기도 하고 조심스럽기도 한 진술만을 바탕으로 피해 사실을 묘사한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이 사건을 취재하는 사람들과 피해자들을 돕는 사람들의 행동을 통해서 이 사건이 얼마나 끔찍한 사건인지 묘사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끝에 관객들은 분노와 슬픔과 같은 강렬한 감정에 휩싸이는 대신에 차분하게 이 영화를 곱씹게 된다.


너무나 생각할 거리가 많은 영화지만, 이 영화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스포트라이트 팀과 반대된 위치에 서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스포트라이트 팀이 밝히려는 사실을 숨기는데 일조한 사람들. 이 영화는 그들을 평면적인 악당으로 묘사하기보다는 인간 그대로의 입체성을 충실히 반영했다. 어느 때는 옭은 결정을 내리기도 하고 어느 때는 나쁜 결정을 내리기도 하면서, 권력에 무릎 꿇을 때도 있지만 권력에 저항해서 양심을 지키기 도하는, 어찌 보면 나약하고 또 어찌 보면 강한 인간을 말이다.


우리가 주목할 첫 번째 악당은 에릭 매클리시다. 극 초반에서 그는 피해자들을 제대로 변호하지 않고 제 잇속만 채우는 변호사로 여겨진다. 게다가 그는 변호사의 직업윤리를 운운하며 신부들의 성폭행 사건에 대해 함구한다. 하지만 극 중반에 그려지듯이, 사실 그는 일찍이 교회의 친구보다는 교회와 맞서 싸우기를 선택했던 사람이었다. 혼자 싸워서는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고, 보스턴 글로브에 자신이 가진 신부들의 명단을 보내며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이메일이 묵살되면서 교회와 타협할 것을 선택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이 가진 신부들의 명단을 다시 한번 스포트라이트 팀에 제공함으로써 스포트라이트 팀의 조사 결과에 신뢰성을 부여하고 조사범위를 좁혀줘서 기사가 한 시라도 빨리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두 번째 인물은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짐 설리반이라는 인물이다. 로비의 친구인 그는 교회 측 변호사로 교회의 앞잡이로 여겨지는 사람이지만, 그런 그 조차도 마지막에는 신부들의 이름을 확인해 주며 말한다. 그러는 넌 어디에 있었냐고, 왜 이렇게 오래 걸렸냐고. 그 일을 하는 동안 교회에 좋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으며 교회가 얼마나 많은 좋은 일을 하냐며, 교회를 변호하는 스스로를 정당화하면서도 그의 내면 깊은 곳에서는 언제나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제발 누군가가 이 일을 폭로해서 자신이 멈출 수 있기를 바랐던 것이다.

짐 설리반은 앞에 나온 에릭 매클리시보다 훨씬 수동적인 사람이다. 그가 한 것이라고는 로비가 가져온 명단에 길게 동그라미를 그린 것뿐이다. 그것도 로비의 끈질긴 연락에 어쩔 수 없이 떠밀려서 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만약 그가 명단을 확인해주지 않았다면, 기사는 끝내 나오지 못하거나, 몇 년을 더 기다렸어야 했을 수 있다.


앞에 두 사람이 결국 옳은 일에 힘을 보태는 반면, 이 영화의 최고 악당인 추기경 로는 정반대의 선택을 한다. 그는 그런 범죄가 저질러졌고 자신이 그 모든 것을 숨기는데 일조했음을 시인하지도 부인하지도 않는 침묵을 택한다. 비겁한 결정이지만, 사실 그가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그가 보스턴 글로브의 새로운 편집장 마티 배런을 앉혀놓고 경고하는 장면에서, 그도 젊은 시절에는 한 작은 교회 신문에 편집장을 맡았던 적이 있고, 인권 문제를 옹호하다가 좌절한 적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스포트라이트 팀은 신부 출신의 심리학자 리처드 사이프와의 통화에서, 예전에 추기경 로가 아동 성폭력에 대한 보고서 발표를 지원하다가 오히려 보고서를 덮어버린 사건도 알게 된다. 그는 한 때 바른 길에 서있었지만, 현재는 누구보다 앞서서 반대의 길을 걷는 인물이다.

우리는 선한 사람은 언제나 선한 행동을 하고 악한 사람은 언제나 악한 행동을 할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 살다 보면 옳은 길을 걷던 사람이 나쁜 길로 방향을 완전히 트는 것을 보기도 하고, 나쁜 길을 가던 사람이 잠시 고개를 돌려 선한 일에 일조하는 것을 보기도 한다. 그럴 때 우리는 그 사람들은 어떻게 분류해야 하는 걸까.

앞에 소개한 세 사람도 영화 속에서는 각자 입장을 한쪽으로 정했지만, 영화에서 묘사되지 않는 그 이후의 삶에서는 이번과 전혀 결이 다른 결정을 내렸을 수도 있다. 그럼 그때에는 이 사람들을 선인과 악인 중 어느 쪽으로 분류해야 할까?


이 질문에 완벽한 답을 구할 수 있을까? 우리는 영영 답을 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가 익히 경험했고 여러 작품들이 보여주듯이 사람이란 나약한 듯하면서도 강한 이중적인 존재이고, 이는 사람을 가변적으로 만든다. 그리고 이 가변성은 사람이 성장할 수 있다는 증거가 되고, 곧 사회와 역사를 변화시키는 바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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