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의 언어가 번역되었습니다

엄마 밥상

by 노정임

#엄마와함께먹는밥

마음은 몸과 함께 가라앉는다. 별다른 방법을 몰라서 책에서 답을 찾으려 했다. 심리학 서적을 읽게 되었는데 그중 <당신이 옳다>를 집중해 읽었다. 전자책으로 읽고, 잠이 오지 않을 때 읽어주기 기능을 켜고 듣기도 했다.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예상 못 한 원망이 마음 한켠에서 떠올랐다. 부모가 ‘어린 나’를 사랑해주고 부축해주고 엄호해주고 지지해주고 응원해준 것이 충분하지 않다는 불만, 설움. 슬픈 마음이 올라왔다. 슬픈 마음은 슬픈 마음을 불러낸다.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 한 어린 나가 불쌍해지기도 했다. 사실 여부와 상관 없이.

6남매 중에 막내로 자라서 형제자매님들은 내가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자주 말하지만, 나는 또 채워지지 않는 게 있었다. 있다. 장미꽃이 저무는 계절에 갔는데, 대문 옆 장미넝쿨을 가지치기 하고 계셨다. 아직 시들지 않은 장미꽃 한 송이를 꺾어 의자에 무심하게 올려두고는 “선물이여. 허허허.” 하신다. 난데없는 선물이다. 아마 이 에피소드를 말하면 언니 오빠가 엄청난 질투를 할지도 모른다. 엄격하기만 한 아버지, 사랑 표현은 잘 하지 않는 엄마였으니. 막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1/6이었다. 첫째는 1/1, 둘째는 1/2…, 아들은 또 다르겠지만. 사실 우리는 서로 다른 부모를 경험하며 자란다. 40세에 낳은 늦둥이였으니, 내가 기억하는 엄마 아빠는 50대부터다. 젊은 엄마 아빠는 기억에 없다. 육아의 기술이 있다면, 다섯을 키운 경험으로 능숙해졌을 수도 있고 기대가 줄어들어 별 제약 않고 내버려 둔 것이 믿음으로 비췄을 수도 수도 있겠다.

선물이라며 멋쩍게 웃는 두 분 모습이 귀엽다. 옛 기억을 덧씌우지 않고, 꼬이지 않은 마음가짐으로, 장미꽃 선물을 받았다. 마음으로 기꺼이. 선물을 소중하게 대한다. 장미꽃 한 줄기를 부엌으로 가져간다. 길죽한 머그컵을 꺼내 물을 담아 꽂고 점심을 먹는다. 엄마가 끓여두신 아욱국을 훌훌 맛있게 들이켜다가 생각이 났다. 두 분의 재미난 특성을 밥상에서 발견했던 게. 부모님 두 분이 ‘사랑’하는 관계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자랐다. 그저 가족이었다. 그런데 이 정도면 ‘찐’ 사랑 아닌가 했던 기억.

아버지는 국에 밥을 절반 말아서 드시고, 그 국그릇에 남은 밥을 비벼서 드시는 습관이 있다. 비빔장은 어김없이 양념하지 않은 고추장이다. 밥상에는 뚜껑이 있는 고추장 종지가 늘 있었다. 지금도 있다. 엄마는 달랐다. 가끔 비벼 드시는데 꼭 간장을 넣으신다. 깨소금 듬뿍, 실파 송송, 마늘 곱게 다져 넣은, 기름기 없이 뻑뻑한 양념간장은 밥상에 늘 있다. 맛에 관한 자부심 넘치는 이들이 ‘먹을 줄 모르네.’라는 말과 함께 먹는 방법을 설명하려 드는데, 내 기억 안에서 부모님이 서로 입맛을 탓하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강권하지 않았다. 나는 서로 다른, 서로 침범하지 않는, 비빔장의 취향을 존중으로 번역했다. 기억은 감정과 연결되어 있다. 강렬한 기억만이 살아남는다. 의외의 발견에서 이건 사랑이라고 확신했었다.

기억이 다시 이어진다. 좋은 기억은 좋은 기억으로 이어진다. 초등학교 시절, 세상 모르고 달콤하게 잠을 자느라 새벽 3~6시 사이는 내게 없던 시간이었다. 어느 날 설핏 깨어 부드러운 말소리를 들었다. 부모님이 일어나기 전에 누운 채로 하루 할 일을 상의하고 있었다. 어느 논에 가서 무슨 일을 하고, 놉을 몇 명 얻고, 간식을 뭘 주고 밥을 어떻게 해 갈지 등. 나는 다시 잠이 들었는데 그때의 안정된 분위기와 부드럽고 따뜻한 음성이 기억난다.

요즘도 수용의 대답은 집보다는 밭에서 자주 일어난다. 엄마의 자잘한 요구에도 늘 ‘아니, 그게 아니고’로 맞받는 대화가 기본인데, 밭에서는 “그려.”, “그렇게 해.” 하는 수용의 답이 자주 들린다. 두 분은 원 팀이구나! 동업자라 해도 되고 동반자라고 해도 되는 원 팀.

부모님은 거의 날마다 거의 비슷한 시간에 밭에 가신다. 탈것은 사륜 오토바이다. 가는 길도 하나다. 만나는 사람도 비슷하다. 90이 넘어서도 두 분이 같이 밭에 다니니 인사말이 크게 두 가지란다.

“우리 보고 금실이 좋댜.”

“일 그만하시고 맨날 쉬라고만 해.”

일하실 때 만큼은 원 팀이 확실하다. 가끔 큰소리로 싸우기도 하시지만(사랑 싸움이겠지), 언제 내려가 봐도 밭이 질서있고 깨끗하게 유지되는 걸 보면 말이다. 60년 넘게 호흡을 맞춘 원 팀.

엄마가 가장 좋아하시는 국은 미역국이었다. 간장과 마늘만 넣어 끓인 맑은 미역국. 식어서 마셔도 시원한 미역국. 이제 미역도 엄마가 먹기에 질기다. 틀니로 씹기에는 너무 미끄덩거리는 바닷나물. 들에서 자라는 아욱과 시금치 나물은 후루룩 넘기기 좋은데. 더위가 유난히 길고 더디던 올여름. 미역냉국을 해 드리고 싶었다. 미역을 아주 잘게 잘랐다.

“뭘 잘러. 괜찮어. 그냥 마시지 뭐.”

막내딸이 자신을 위해 애쓰면 마음이 불편하신가 보다. 그럴 때 아버지께 대신 답을 구한다.

“아버지, 이렇게 잘라도 되지요? 드시기 괜찮겠지요?”

“응. 니 엄마도 먹기 괜찮겠네.”

먹을거리를 챙기는 건 사랑이 분명하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기 어색할 뿐. 두 분 사이가 좋은 것을 ‘어린 나’도 좋아한다.

얼마 전 깜짝 놀랄 애정 표현을 들었다. 커트를 하고 오신 부모님. 엄마가 아빠 머리카락을 만지며 “예쁘네.” 하신다. 그때 같이 갔던 둘째 언니는 깜짝 놀라 아무말 못 하고, 나는 “응, 예쁘시네. 엄마도 예뻐요.” 하며 분위기 살리는 막내딸 역할을 한다. 우리는 각자 다른 부모님을 경험하고 기억하는 게 맞다. 엄마의 처음 듣는 다정한 말에 언니는 “예쁘다…, 쉽지 않은 말인데….”라며 혼자 충격을 수습한다. 장미꽃을 못 받아본 언니는 대신에 엄마 아빠의 강력한 신뢰를 받고 있는 걸 알겠지? 부모와 자녀의 관계로만 봐서는 풀리지 않는 애증이 있다. 시간을 같이 보내며 연결되어 있을 때 기억은 재편된다.

아, 막내딸은 간장으로 비빌까, 고추장으로 비빌까? 좀 까다롭다. 달걀프라이나 생야채가 들어간 비빔밥은 고추장, 삶아 무친 나물이나 김치를 넣어 비빌 땐 간장을 넣는다. 하지만 비빔밥보다 양념된장을 듬뿍 넣어 먹는 쌈을 가장 좋아한다. 취향도 입맛도 사랑의 표현 방법도 다른 독립된 사람들이다.

우리는 각자 이야기로 기억될 것이다. 밥상에서 서로의 입맛을 평가하지 않고 고추장과 간장과 된장을 각각 좋아한 사람들로. 여전히 엄마와 아빠의 사랑으로 남기를 바라기도 하지만, 더 원하는 것은 나는 내 이야기로 남는 것이다. 내 존재함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며 받아들이는 것. 이 전제 없이 내 존재는 누구에게도 받아들여질 수 없다. 받아들여졌는데도 못 알아볼 가능성이 높다. 나와 나의 관계부터 어그러질 것이다.

나는 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엄마는 엄마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내 이야기에서 엄마는 조연, 엄마 이야기에서는 내가 조연으로 남을 때 그것이 온전한 사랑 아닐까? 사랑을 이렇게 정의를 하고 나니 사랑하고 부축하고 엄호하고 지지하고 응원할 마음이 깨끗한 물처럼 흐른다. 아직 표현은 미숙하지만 서로 응원의 말을 자주 한다.

"우리 정임이 못하는 게 있가니."

“우리 엄마 진짜 대단해. 응, 엄마가 맞지. 그게 맞지요.”

서로의 언어를 우리는 또 배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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