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밥상
#엄마랑먹는밥
막내딸 장바구니는 상행선일 때 더 무겁다. 이번 6월 16일에 서울에서 펼친 장바구니를 볼까. 부모님이 싸 주신 온갖 채소가 나온다. 직접 길러서 주신 콩나물로 국 먼저 끓이려고 물을 올리고 장바구니를 푼다. 미루면 채소가 아깝게 상한다. 일주일 전에 캐셨다는 감자가 가장 많다. 햇빛이 닿지 않게 신문지를 씌워 실온에 보관하고, 오이, 풋고추, 상추는 냉장고 야채칸으로 간다. 깻잎순나물, 마늘종볶음 같은 반찬도 있다. 부모님과 나의 관계는 우리나라 농촌과 도시의 관계와 비슷하다. 돈으로 사 간 몇 가지 공산품과 비교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그 이상의 정성이 들어 있다. 향기와 색감과 신선함을 받아왔다.
또 받아온 것이 있다. 부모님의 하루 리듬이다.
“니 엄마 대단혀. 하여간 대단해.”
엄마가 자리에 없을 때 아빠가 종종 하는 칭찬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피곤해도 아파도 아침에 일어나 엄마가 밥을 짓는 걸 말하는 것이다. 5~6시 사이. 겨울에도 6시면 일어나 펴지지 않는다는 무릎을 어떻게든 움직여 안방에서 화장실로, 화장실에서 부엌으로 가셔서 쌀통을 연다. 어느 집에나 있을 골이 진 플라스틱 바가지. 우리 집에서 분홍색 바가지는 쌀 씻기 전용이다. 흙이 있는 채소나 비린내 나는 생선 씻는 데에는 절대 쓰지 않는다. 거품이 나는 세제로 닦지 않고 쓰기 때문이다.
빨래판처럼 마찰면을 늘리려고 여러 줄의 골을 만들어 놓아서, 씻기에도 좋고 물을 따라낼 때 쌀이 쓸려가지 않는다. 나무로 만든 쌀 씻는 그릇을 ‘이남박’이라 했었다. 안쪽에 잔 고랑을 많이 판 것도 같다. 아니 플라스틱 바가지는 이남박을 흉내 내어 만든 것이다. 윗지름은 한 뼘 좀 넘고, 깊이는 그 반 정도고, 바닥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바가지는 안정감이 있고, 무엇보다 가볍다. 귀처럼 생긴 작은 손잡이도 한쪽에 있어서 잡기도 좋다.
이제는 방앗간 기계가 불순물을 깨끗하게 거르기 때문에 쌀을 박박 문질러 씻지도 않고 돌도 없어서 조리질은 하지 않지만, 쌀통에서 밥솥까지 가는 동선은 일정하고 정확한 루틴을 따른다. 시간도 도구도 정해져 있다. 오늘 밥을 할까 말까, 하는 고민은 선택지에 없다. 변주는 밥밑콩이 계절따라 달라질 뿐이다.
내가 온 날은 점심까지 생각해서 쌀 5컵을 한다. 밥이 되는 시간 동안, 엄마와 아빠는 밥 먹기 전에 먹는 고혈압 약 등을 챙겨서 드신다. 아빠의 약은 안방에, 엄마의 약은 밥 짓는 가스렌지 아래 작은 선반에 있다. 압력솥에 밥을 안치기 때문에 넉넉히 약 30분 정도 걸리는데, 그때 국도 뎁히고 반찬도 꺼내고 상차림을 한다. 아버지는 허리가 아픈 뒤로 요즘 5~10분 정도 자전거를 타고 새벽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온다.
밥을 많이 지은 날, 그러니까 내가 온 날은 밥솥에서 김이 빠지는 시간이 길다. 그럴 때 셋이서 고만고만 가까운 거리에 앉아 오늘 어떤 일을 할지 얘기한다.
“참깨 오늘 다 심을 수 있을랑가?” (엄마)
“그럼, 그거 뭐 비닐만 쭉 펴면 되는데.” (아빠)
“아버지가 경운기로 골 다 타 놨어.” (엄마)
“맞다, 참깨 비닐 사러 금산 다녀오셨댔지요?” (나)
“임 사장이 차 태워줘서 같이 갔어.” (아빠)
귀촌한 분이 종종 먼 길을 차로 태워다 주신다. 옛 직업을 모르기 때문인지 대개 사장님이라 호칭한다. 임 사장님은 아랫집이고, 허 사장님은 앞집이다.
“언제 가? 일 있으면 가야지이이.” (엄마)
“참깨 심고 가야지요.” (나)
“그려.” (아빠)
“해 뜨기 전에 얼른 가요. 5월인데 아홉 시만 돼도 해가 너무 뜨거요.” (나)
(2025년 5월 19일 아침.) 참깨를 심으러 갈 준비는 내가 오기 전에 어제부터 다 되어 있던 거다. 얘기하며 밥을 다 먹고 나니 6시. 비닐, 삽, 호미가 경운기에 실리고 밭으로 간다. 밭에 도착해서 비닐을 펴는데, 이랑이 더 넓다. 이랑이 좁아야 비닐 양 끝을 흙으로 덮고 다지며 팽팽하게 칠 수가 있다. 고랑의 흙을 떼어내야 한다. 나에게 삽이 주어졌다. 한뼘쯤 흙을 떼어내고 롤러처럼 만든 비닐을 펴며 앞으로 간다. 그러면 두 분이 양쪽 이랑(이랑이 좁다!)에서 거의 기어서 흙을 떠서 비닐 끝을 덮는다. 비닐이 팽팽해지도록 긴 이랑마다 고르게 흙을 덮으며 간다. 말이 점점 없어진다. 50미터 고랑 4줄, 그리고 한 고랑은 절반쯤 더해서 총 225미터! 참깨 심기를 마쳤다. 이른 더위에 움직이지 않던 동작을 반복하고, 몇 년 동안 함께하고 있는 갱년기 증상으로 온몸이 땀에 젖었다. 어쨌든 10시 전에 끝난다. 6시에 시작했으므로.
집에 돌아와 죽순을 끊었다. 돌산이 위험해서 철제 펜스를 둘러놓아 대나무가 잘 보이지 않지만, 장독대 뒤 텃밭은 대나무밭이 있는 산으로 이어져 있었다. 대나무가 많았지만 죽순은 먹지 않았었는데, 먹을거리 소식과 먹는 방법은 텔레비전에서 제철마다 반복되고 학습시켰다. 2~3년 전부터 죽순을 먹게 되었다. 죽순을 채취하고 아침밥을 했던 압력솥에 쌀뜨물을 넣어 40분 삶는다. 오전 간식은 삶은 죽순이다. 얇게 썰면 엄마가 드실 만큼 부드럽다. 점심엔 국수 삶아서 먹고, 엄마가 챙겨주시는 보따리를 들고 나는 오후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온다.
내가 마흔 후반부터 겪는 갱년기 증상은 세 가지다. 잠, 땀, 화. 몇 시에 잠이 들든 새벽 1~2시면 눈이 떠져 잠이 안 온다. 땀이 거의 없었는데 밥을 먹을 때마다 땀이 나고 머리카락이 젖는다. 뒷머리에 땀샘이 있다는 걸 알았다. 화는... 그냥 올라온다. 뒷집 아주머니가 엄마에게 그랬단다. 애가 태어났다는데 울음소리가 안 들린다고. 그 애가 나다. 돌도 안 된 나를 데리고 밭일 하러 가서 돗자리에 앉쳐 놓으면 그대로 있었다 한다. 그게 나였다. 엄마가 마른 홍고추를 말아서 실고추를 만들려고 칼질을 하면 말도 못하던 아기가 엄마 손을 잡으며 하지 말라고 했다 한다. 그게 순둥이 나였다. 내가 생각해도 화는 별로 없었다. 짜증이나 흥분은 종종 있었으나, 화는 아니었나 보다. 갱년기 즈음이 되자 그동안 잘 몰랐던 감정인 진정한 화가 올라왔다. 급작스러운 열이나 두통과 비슷한 그런 감정이다.
고향 집에 갔을 때 잠을 잘 잔다. 가로등도 멀어서 사위가 어둡고 조용하다. 가전제품은 부엌에 거의 다 있어서 방안에는 작은 불빛도 없다. 저녁 7시부터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든다. 그러면 적어도 6시간은 푹 잔다. 다녀와서도 그날은 푹 잔다. 피곤하니까. 아침이면 엄마와 똑같은 리듬으로 밥을 짓는다. 나도 쌀바가지 하나를 준비했다. 그 바가지로는 쌀만 씻는다. 6시가 되기 전에 밥을 안친다. 6시 아침 뉴스를 보며 어제 가져온 반찬과 밥을 먹는다.
나는 부모님께 유산을 이미 받았다고 생각한다. 아침에 일어나는 습관이 부모님께 받은 나의 자산이다. 상속받은 재산이다. 잠드는 시간은 여전히 불규칙하고 중간에 깨는 일도 빈번하고 여전히 땀이 나고 화가 올라오는 일도 잦지만, 아침에는 비슷한 시간, 엄마가 몸을 일으키시는 5~6시에는 저항 없이 일어나 창문을 열고 아침밥을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