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밥상
아무리 좋은 의도로 배려했다 해도, 그 배려가 성공적으로 도달했는지는 상대방에게 달려 있다. 엄마의 일을 잠깐이나마 대신하겠다는 목표도 혼자 세웠고, 하루이틀일지라도 엄마의 공간을 점령한 행위는 엄마를 소외시켰으므로 방향을 바꿔야겠다고 막내딸은 생각했다. 이 생각까지 한참 걸렸다. 목표가 앞서면 과정을 살피지 못한다. 그래도 그 과정에 배운 게 있다. 여러 번 시도한 잡채는 채소를 실험하는 시간이었다. 채소의 성질을 파악하고 엄마가 좋아하는 채소를 아는 계기가 되었다.
처음에는 파프리카를 색깔별로 사들고 갔다. 가짓과인 토마토, 고추, 파프리카는 맨질맨질 윤기가 나는 표피를 가졌는데, 이는 세로로 잘라도 가로로 잘라도 질기다. 노랑, 빨강, 주황 파프리카를 볶아 만든 잡채는 보기에는 예뻤으나, 내가 씹어도 질겼다. 파프리카는 장바구니에서 빠졌다. 우엉도 넣어보았다. 몸에 좋은 뿌리채소니까! 아주 가늘게 채 썰어 간장과 기름에 살짝 볶아 넣었는데 섬유질이 많아 어떻게 해도 질겼다. 집의 텃밭에서 자라는 부추도 같은 이유로 잡채에서는 빠졌다. 물론 내가 먹기에는 좋았지만 기준은 엄마니까. 목이버섯도 빠졌다. 쫄깃거리고 매끈거리는 식감의 식재료는 이 없이 씹기 어렵다.
몸에 좋고 예쁜 것보다는 씹을 수 있고 소화가 잘되는 것이어야 했다. 색감을 보태고 영양을 채울 재료는 김밥 재료에서 찾았다. 채소김밥의 재료를 참조했다. 우선 맛살! 은은한 붉은 색감을 줄 수 있고, 결대로 잘게 자르면 기다란 면과도 잘 어울렸다. 내가 버섯을 좋아해서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았는데, 새송이버섯이나 팽이버섯은 익으면 질겨졌다. 어떤 버섯은 툭툭 끊겨서 기다란 모양이 유지되지 않았다. 느타리버섯은 맛살처럼 세로로 잘게 찢을 수 있었고 검은 빛깔을 담당해 준다. 그리고 엄마가 느타리버섯을 좋아하는 것을 눈치챘다. 단맛 나는 양파는 뺄 수 없었다. 양파는 보통의 방법대로 자르면 섬유질의 결대로 잘려서 볶으면 질겨지는데, 90도 돌려서 자르면 잡채에 어울리는 긴 모양은 유지하되 익혀서 씹을 때 편하게 톡톡 끊어진다.
맛살, 느타리버섯, 양파를 기본으로 하고, 다른 재료를 하나씩 추가하면 다양한 채소잡채를 만들 수 있다.
어묵잡채도 좋다. 볶으면 맛있겠지만 딱딱해진다. 요즘 식재료들이 쫄깃쫄깃한 식감을 자랑하는 건 밀도가 높아서다. 그래서 데쳐도 풀어지지 않는다. 어묵을 가늘게 채 썰어서 끓는 물에 2~3분 데쳐서 체에 담아 물기를 빼 둔다.
겨울엔 시금치잡채를 했다. 30초 정도 데치면 식감이 좋지만, 10~20초 더 삶아 줄기까지 부드럽게 익혀서 무친다. 큰 시금치는 섬유질이 질길 때가 있는데, 시금치도 양파를 썰 듯이 섬유질을 끊을 수 있는 방향으로 송송 썰어서 섞으면 면과도 잘 어울리고 누구나 먹기 좋다.
집에서 콩나물을 자주 길러 먹는데, 콩나물잡채도 맛이 좋다. 달걀지단을 부쳐서 얹으면 색감이 더욱 예쁘다.
부드럽게 한다고 했어도 면이 길면 씹기가 어렵다. 어떤 잡채든 밥상을 차릴 때 엄마 옆에 주방용 가위를 슬쩍 둔다. 처음부터 다져놓으면 보는 맛이 떨어진다. 작은 앞접시에 잡채를 담고 통깨를 솔솔 뿌려 드리면 엄마가 원하는 크기로 잘라서 드신다.
잡채를 만들며 엄마와 대화하는 방법도 연습했다. 요리를 시작하기 전에 엄마에게 식재료를 촤라락 펼쳐서 보여드리고, 엄마에게 만드는 방법을 여쭙기도 하고, 집에 있는 재료를 쓸 때 허락을 받는다. 형식적인 질문이지만 예의를 다하려 한다. 엄마와 눈을 맞추고 대화하는 것이 점점 재밌어진다. 그리고 우리 엄마는 충청도 사람이었다. 그걸 이제야 체감한다. 그래서 세 번 묻는다. 이건 막내딸에겐 힘든 일이다. 여러 번 똑같은 질문을 하거나 받는 걸 매우 싫어하고 참지 못하는데, 엄마와 연습 중이다. 요리하는 과정도 맛있게 재밌게 하려고 서로 노력한다.
이제 잡채는 가끔 하는데, 손발이 잘 맞는다. 재료를 씻어서 엄마에게 드리면, 우리만의 방법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잘게 찢거나 썰어서 주신다. 그러면 나는 삶고 볶아 엄마에게 꼭 간을 봐달라고 입에 넣어 드린다. 엄마가 ‘삼삼하네.’ 하시면 오케이다. 겉으로 표 내지 않을 뿐 청소년기와 청년기만큼 중년기와 노년기도 불안하다. 불안하지 않은 세대는 없다. 세대는 이어진다. 막내딸은 우리나라 세대에서 가장 인구수가 많은 50대가 되었고, 새 옷을 사 오면 ‘얼마나 산다고’라고 하셨던 부모님은 우리나라 세대별 인구 중에서 가장 수가 적은 귀한 90대가 되었다. 각자 기쁨도 있고 고민도 있고 희망도 있고 절망도 느낀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각자의 문제를 대신 풀어주지는 못한다는 걸 안다. 각자 과제를 품은 채 종종 만나서 함께 밥상을 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