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밥상
슈퍼를 돌아보았다. 이마트, 홈플러스, 지에스, 오아시스 등 청국장을 찾아 다 둘러보았는데 다 있네. 관심을 갖고 보니 있었다. 고르고 골라 두 종류를 사 와서 끓여본다. 무를 넣고 끓여보고 김치를 넣고도 끓여본다. 냄새도 거의 없고 순하고 맛있다. 부모님께 가져갈 청국장을 골라 사 놓는다. 덕분에 나도 메뉴 하나가 늘었다.
동그랗게 포장된 청국장을 사 갔다.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로 앙증맞게 싸인 비닐 포장을 보더니 아버지가 헛헛 웃으셨다.
“아니, 이렇게 해서 팔어?”
한 말씩 띄우던 청국장, 절구에 넣고 쿵쿵 찧어서, 겨울철 김치통에 넣고 밖에 두고 먹던 청국장을 생각하면 아기 장난감 같았을 것이다.
점심을 먹고 나면 한숨 돌린다. 안방은 잠자러 들어가는 곳, 밥을 다 먹고도 부엌을 벗어나지 않는다. 식탁 옆에 누워서 쉬기도 하고 간식도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곳이 부엌이다. 나는 벌써 저녁을 걱정하지만 티 내지 않는다. 두 분이 쉬시도록 부엌 한쪽에 철퍼덕 누워 이야기를 듣는다. 이제 코로나는 없어졌지만 마을회관에 모이던 어른들이 거의 없다. 그 사이 돌아가신 분, 요양원이나 딸네 집으로 이사 가신 분, 가끔 귀농한 집 이야기 등을 두서없이 하다가 낮잠도 잠깐 잔다.
식사 시간과 식사 시간 사이에 부엌에 누워서 나누는 대화는 옛날 얘기도 많았다. 아버지는 주로 전쟁 때 겪은 목숨이 위험했던 순간의 이야기, 전쟁 직후 힘들게 도시로 중학교를 통학한 이야기를 자주 하셨고, 엄마는 결혼을 한 뒤 할아버지를 모신 이야기, 하나밖에 없는 아들과 손주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현재 내가 그리고 있는 아버지 어머니는 노쇠한 농부이지만, 그들은 일제 강점기에 초등학교를 다니고, 10대에 한국전쟁을 겪고, 전쟁 이후 결혼을 해서 6남매를 낳아 키우며 60년 넘게 함께한 ‘원 팀’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을까. 내가 기억하는 특별한 점은 한 달에 한 번 제사상을 차리던 일 많은 큰집이었고, 설과 추석에는 수십 명이 오는 친척에게 열 개 넘는 상을 차려 방마다 순서대로 보내고 한 명도 빠짐없이 밥을 먹게 하는 놀라운 부엌이었다. 기계 없이 모내기하던 때에는 10인분 넘는 밥과 국과 반찬을 다라이에 챙겨서 머리에 이고 손에는 물 주전자를 들고 엄마는 논으로 갔다. 나는 겨우 빈 그릇 몇 개를 들고 따라갔던 기억이 있다. 나에게 음식 만들기를 시킨 적도, 밥을 짓거나 떡을 찌고 전을 부치는 일도 시키지 않았다. 숟가락 놓기나 물그릇 나르기처럼 자잘한 심부름만 했다.
“엄마, 그때 어떻게 그 많은 밥을 다 했어?”
“그러게, 어떻게 뭘로 차렸는지 생각도 안 나.”
급식이 없던 때라 고등학교 3학년에는 아침마다 세끼 먹을 도시락을 싸 주셨다.
“엄마, 도시락은 언제 쌌어? 내가 아침 7시에 버스를 탔는데, 엄마는 몇 시에 일어나신 거야?”
“몰라. 아직도 광에 도시락 있을걸?”
부모님과 저녁은 가장 가볍게 먹는다. 식사 후 밤에 탈이 나는 경우가 있으니, 저녁에 속 편한 음식을 드시게 할 요량이다. 가장 믿을 만한 식재료는 된장이다. 김치 넣고 두부 올리고 청국장을 바특하게 끓여내고 달걀말이도 하나 더하면 부모님은 벌써 칭찬이다. “히야~ 잔칫상이네.” 그렇지만 맛을 평가하지는 않으신다. 조금 드실 뿐 맛없다는 말은 하지 않으신다. 남은 청국장 한 덩이를 보여드리며, 저 가고 나서 이거 끓여 드셔요,라고 큰 소리로 말하니, 그제야 아버지가 한 말씀하신다.
“어째 청국장 냄새가 없어.”
“요즘 파는 청국장은 냄새 없는 게 자랑거리예요.”
그래도 먹을 만하다며 한 그릇 비우셨으니, 충분하다. 청국장은 작으면 150g에서 300g까지 한 번 끓여 먹기 좋게 포장되어 있다. 로컬푸드 매장에도 청국장은 꼭 있다. 종류를 바꿔가며 소량으로 냉장고에 한두 개만 구비해 놓는다. 맛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 그리고 평가는 놀이가 된다. 우리의 밥상은 보수적이다. 지금도 나는 엄마의 된장국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지만 도서관 식당에서 곁다리처럼 슬쩍 떠 주는 된장 국물에 감탄하기도 한다. 새로운 경험은 누구에게나 재미있다.
“청국장처럼 생각나는 음식 있으면 얘기해 주세요. 그러면 나도 편해.”
“뭐 별다른 거 없어. 그냥 먹던 거 먹고 싶지.”
“응? 음, 그쵸....... 저도 그래요.”
천천히 끄덕이며 다시 생각했다. “먹던 거”. 일상의 평범한 음식. 나를 해방시킨 말. 스스로 한 약속의 부담에서 조금 가벼워졌다.
“우리는 알아야 할 일은 모르고,
몰라도 되는 일은 많이 아는 건지도.”
-<언강 위의 우리> 중에서
한 가족으로 살다가 지금은 각자의 집에서 서로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 점과 점으로 있다가 가끔 이어진다. 과거를 생각하면 찾아오는 손님이 거의 없는 이 집이 쓸쓸하다. 미래를 생각하면 이 집이 비게 될까 봐 무섭다. 그래서 오늘만, 오늘의 계절과 오늘의 사람만 생각하기로 했다. 여전히 엄마 아빠를 다 알지 못한다. 엄마 아빠도 나를 다 알지 못할 것이다. 오늘도 우리는 알아가는 사이다. 믿을 만한 사람임은 분명하다. 신뢰하는 인간 대 인간의 만남이 조금 더 길게 지속되길 기원하며, 다음 밥상 메뉴를 짠다.
#엄마밥상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