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없어 할머니 (1)

엄마 밥상

by 노정임

엄마는 90살 할머니가 되었다. 나에게는 언제나 엄마이지만. 혈육으로서 한 분 계신 나의 할머니는 내가 태어나기 1년 전에 돌아가셨다 한다.

어릴 때, 아니 20대가 되고도 할머니의 빈 자리를 느끼지 못했다. 동네는 집성촌. 할아버지 형제들이 거의 다 한마을에 살고 계셨기 때문에 할머니라 부를 분이 많았다. 할머니의 부재가 아주 깊게 새겨져 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어린이들에게 들려줄 옛이야기의 가장 선호하는 화자는 할머니다. 1990년대 말 어린이책을 시작할 때 거의 대부분 그랬다. 너그럽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존재, 집안을 살펴 온 가족을 평안하게 돌보는 존재, 권위적이지 않고 경험이 풍부한 지혜로운 존재로 꾸짖음 없이 어린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

어린이책에서 글을 쓸 때, 내 위치는 이모 또는 고모였다. 가끔 똑똑하고 종종 우스운 화자. 실제로 조카가 많기도 하거니와 나와 가장 가까워서 말을 꺼내기 좋은 캐릭터였다. 그래도 한 번쯤은 할머니 캐릭터를 상상할 만한 환경이었으나, 할머니 목소리로는 글이 써지지 않았다. 아! 할머니가 없었지. 대가족에 집성촌, 10대까지 한 장소에서 살면서 관계의 부족함을 모르다가, 단 한 존재 할머니가 없다는 것이 이렇게 허전하게 다가올지 몰랐다.

엄마는 종종 할머니 이야기를 하셨다. 할아버지 몰래 쌀독에서 쌀을 퍼서 배고픈 동네 사람에게 나눠준 이야기, 그런데 음식하는 건 싫어하셨는지 시집 오자마자 밥 짓는 걸 며느리에게 넘기고 밥할 때마다 애기 업고 마실 가셨다는 이야기. 그래서 음식을 못 배웠다고 엄마는 그랬다. 엄마는 열 명 넘는 식구 하루 세 끼를 다 차려내셨지만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런데 음식 이야기를 찾다가 할머니를 다시 만났다. 여름마다 동네 아저씨들이 모여 천렵을 하던 이야기 중이었다.

“고추장은 우리 거만 퍼갔어.” (아빠)

“그때 뭐가 있가니. 쌀 하고, 소금 하고, 물만 넣었는데, 그렇게 맛났어.” (엄마)

“그죠, 물엿도 없고. 조청은 없었어요?” (나)

“먹을 쌀도 없는디? 조청을 어떻게 쒀.” (아빠)

“장 못 담그는 집도 많았어.” (엄마)

“할머니 이름을 몰랐네. 우리 할머니 이름이 뭐예요, 아부지?”

“장 씨여. ...(계속)....”


#엄마와함께차리는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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