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밥상
(계속) 우리 집 장독대의 고추장은 비워진 적이 없다. 고추장을 담그는 방식은 집집마다 다를텐데, 우리 집은 찹쌀을 하루 불려서 떡시루에 넣고 오래도록 푹푹 쪄서 부드럽게 만들어 그대로 고춧가루와 소금과 이제는 흔해진 조청을 섞어 만든다. 궁궐의 장고(장독대를 모아놓은 곳) 자료를 보다가 고추장은 오래 비빌수록 맛이 좋아 고추장 담그는 날에는 고추장 그릇을 궁녀들이 오가는 길에 놓아두었다 한다. 그러면 궁녀들이 오가며 고추장을 섞었다고 했는데, 우리 집 고추장도 소금을 다 녹여야 한다며 반나절을 두고 간간이 섞은 뒤에야 장독에 담았다. 오래도록 이어진 음식 문화와 우리 동네에서 많이 나는 찹쌀과 할머니에서 할머니로 이어진 방법으로 우리 집 고추장을 담갔을 것이다.
그분의 아들인 아버지는 지금도 고추장으로 밥을 비비고, 고기를 구워도 초고추장에 찍어서 드신다. 엄마는 할머니가 하던 대로 고추장을 담근다 하셨다. 밥은 며느리에게 맡겼으나 고추장은 해마다 손수 담그셨으니. 아기인 나를 업고 토닥인 기억은 없지만 서로 눈을 맞추며 웃은 적은 없지만, 할머니는 부재한 적이 없었던 거다.
고향으로 가는 시내버스 안. 언제나 가장 많은 이는 할머니다. 정류장에서 30~40분 버스를 기다리는 건 다반사. 점점 줄어들다 보니, 버스 오는 게 정말 고맙다. 시골이라도 이제 흙길은 거의 없다. 정비가 잘 되어서 도로는 넓고 정류장에는 유리 부스와 의자가 있으며 오고 있는 버스를 알려주는 커다란 모니터도 잘 정비되어 있다. 없는 건 사람뿐. 정류장에서 기다리다 보면 할머니 한두 분을 만나게 된다. 할머니들은 옆 사람에게 말을 건다. 아주 자연스럽게.
#버스에서 만난 할머니들
할머니들이 버스에 오르고 자리에 앉으실 때까지 버스는 움직이지 않는다. 버스 기사님들은 퉁명스러워 보이지만 할머니들이 들고 탄 짐까지 안전하게 자리잡고 나서야 출발한다. 2주에 한 번씩 가는데 이를 어기는 기사님을 보지 못했다. 할머니들이 드물게 오는 버스를 기다려 동네를 벗어나는 건 농산품을 팔러 가기 위해서거나 장을 보러 그리고 가장 많은 경우는 병원에 가는 경우일 것이다. 인원이 적어서 다행히 서서 가는 분은 없다. 끼익 설 때 움직이는 건 옆에 둔 짐이다. 보따리에 싼 짐, 캐리어에 끈으로 묶은 짐, 상자에 넣어 담은 짐 들이다. 꽤 무거운 짐도 많아, 정차할 때 짐이 쓰러지거나 버스 앞쪽으로 쏠린다. 그럴 때 냉큼 잡아드린다. 내리실 때 짐을 잡아드리기도 한다. 고맙다는 전형적인 인사는 안 하시지만, 짧은 순간에 “아이쿠, 그려, 잉, 가, 됐고만.” 하고 짐을 다시금 꽉 잡으시며 웃음기를 담은 얼굴이 된다.
#벼농사 할머니
버스 정류장에 오시지마자 어디 가냐고 물으신다. 머리부터 신발까지 가장 예쁜 것으로 갖추어 입으신 모습이다. 버스가 도착하기까지 15~20분 정도 남았을 것이다. 그 사이, 할아버지 돌아가셔서 혼자 벼농사 지어 자식 키운 이야기, 지금 서 있는 정류장이 예전에는 다 논이었고 지금 길 건너편 가게를 짓고 있는 사람은 예전에 농사는 안 짓고 땅 사놓고 놀던 사람인데 길이 나서 자식들까지 가게하고 산다는 이야기, 딸이 오기 전에 전화해서 할머니 잡채를 제일 먹고 잡다고 해서 ‘비싸도 어쩌겄어.’ 하시며 시금치를 사러 간다는 이야기, ‘지금도 벼농사 지을 수 있는디 얘들이 하도 하지 말라’고 해서 이러고 논다는 이야기까지 모두 들었다.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20년 벼농사 지으셨다는 얼굴의 피부가 나보다 좋으셔서 “햇빛 안 쬐고 사신 거 같아요.” 했더니, 아픈 데도 하나도 없었는데 80이 되니까 허리가 조금 아프다시며 꼿꼿한 허리를 한번 짚으셨다. 20분이 채 안 된 시간 동안 할머니가 주인공인 드라마 한 편을 봤다.
#묵 할머니
첫 기차를 타고 가서 버스로 갈아타기 전에 로컬푸드 매장에서 장을 본다. 늘 사던 몇 가지를 챙겨서 버스 정류장에 왔다. 그날 장바구니 자리가 모자라 양파는 손에 들고 있었다. 할머니 한 분이 정류장 의자에 앉아 계시다가 양파값을 물으셨다. 이야기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시작되는 거다.
“살 게 없어. (백팩 가방을 들어 보이시며) 묵만 일곱 개 샀네. 이가 안 좋고 소화가 안 되니까 묵이 젤로 좋아, 먹기가.” (할머니)
“저도 묵은 꼭 사 가요. 여기 묵 맛있더라고요.” (나)
“친정엄마 계시가니?” (할머니)
당연히 결혼했겠다 여기고 친정엄마라 호칭하신다.
“네에. 아부지랑 두 분이 계셔요.” (나)
집에 오면 엄마 아빠에게 길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해 드린다. 이 주에 한 번씩 장을 보고 기차와 버스를 타고 이동하다 보면 당연하게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가 생긴다. 서울 망원시장에 가다가 마을버스에서 핸드폰 찾아준 이야기도 있고, 초행길인 사람에게 버스 편 알려주고 로컬푸드매장 위치 알려준 이야기도 있다. 이때 두 분 다 공교롭게 똑같이 떡을 한 팩씩 선물해 주어서 그 떡을 풀어놓으며 엄마 아빠에게 사연을 이야기하곤 했다. 사소한 에피소드를 정말 재미나게 들어주신다.
“엄마, 오늘은 우리랑 똑같은 묵 사가는 할머니를 만났네. 일곱 개 사서 가방에 메고 가시더라고. 먹기가 젤 좋대, 묵이.” (나)
“그려.” (엄마)
동네에서도 할머니를 만난다. 초등학교 때 친구의 엄마이신데, 역시 할머니가 다 되셨다. “왔어?”, “네~!” 활짝 웃으며 늘 먼저 인사해 주시는 친구의 엄마는 보행기를 밀고 걷기 운동을 하신다. 고관절이 매우 안 좋다고 하셨다. 또 다른 할머니도 친구의 엄마이신데, 농기계에 치여 다치셨다는 이야기를 몇 달 전에 들었는데, 마을회관 앞 정자에 앉아 계신 걸 보았다. 인사를 드렸더니 활짝 웃으시며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받아주신다. 내가 만나는 할머니는 다들 웃으신다. 웃어 주신다.
모르는 사람이 보는 우리 엄마는 어떨까? 어떤 할머니일까? 타인들이 보는 모습은 모르지만 내가 보는 엄마는 자존심이 세고, 입이 무거운 분이다. 엄마는 늘 그러신다. “나는 자랑 안 해.” 놀랍다. 자랑할 게 없어도 만들어서 하는 게 자식 자랑 아니었나. 왜 안 하시냐고 물었더니 “뭘 해.” ‘오, 쿨하신걸.’ 이건 엄마를 닮지 못했다. 혼자서 생활하다가 엄마와 비슷한 것을 발견했다. 설거지! 엄마는 살림이고 음식이고 할줄 모른다 하시지만, 빨래와 설거지는 거르는 법이 없다. 나도 그렇다. 설거지와 빨래만 재밌고, 다른 살림은 대강 눈감는다.
엄마 김치 그릇을 따로 놓기까지 오래 걸렸다. 아직까지 김장을 하기 때문에 김치는 늘 상에 오른다. 그런데 국물만 드시는 걸 몇 년 전 어느 날 눈치챘다. 할아버지 계실 때 엄마는 김치를 잘게 다져서 할아버지 밥상에 따로 드렸다. 그렇게 해 드리려고 했더니 “그냥 먹어.” 하며 완강히 말리신다. 엄마도 노인은 처음이다. 이럴 때는 역시 아버지에게 답을 구한다.
“어떻다고 그려. 먹기 좋겠고만.”
김치를 콩알 크기로 다지고, 그릇도 따로 해서 담는다. 그 뒤부터 엄마를 위해 잘게 다진 반찬이 밥상에 놓였지만, 여전히 마음 불편해하신다. 김장김치가 시어진 늦여름, 배추겉절이를 해서 몇 가닥 잘게 자르려 했더니 이번에도 “그냥 먹어.” 하며 칼질을 말리신다. 나도 능글맞아졌다. 칼질을 멈추지 않는다.
“계셔 봐요. 이쁘게 썰어서 담아 드릴게용~.”
국수 삶아서 겉절이와 맛있게 드셨다.
엄마를 위해 하는 일인데도 막무가내로 말리실 때는 짜증이나 화와 비슷한 감정이 올라왔었는데 지금은 번역을 한다.
‘내 손에 고춧가루 묻는 게 싫으신 거구나.’
그리곤 엄마의 마음이 고맙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엄마는 한 번도 내가 밥을 하고 음식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가사노동이 폄훼되었던 과거에 가사노동을 당연하게 여겼기 때문에 그 일을 감당했던 이들의 마음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내가 설거지를 하면 뒤에 앉아서 떠나지 않는다. “미안햐, 미안햐. 내가 해야하는디” 혼잣말처럼 하신다. 음식을 해서 상을 차리면 “고마워! 내가 해서 줘야 하는디” 큰 소리로 말씀하신다. 꽤 훌륭한 어른이다. 나는 엄마에게 딸이지만 딸이 엄마의 밥상을 차리는 일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니, 나는 의무로 여겨지지 않는다. 매끼마다 고맙다는 말을 들으며 같이 밥상을 차린다. 겨우 이 주에 한 번.
최근 몇 년 동안, 무망감을 겪었다. 책은 만들고 싶은데 어떤 행동도 하기 싫고. 일할 사람들을 설득할 마음도 안 생기고. 타고난 가볍고 즐거운 성향이 사라진 듯하여 방황했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것도 ‘할머니’를 만난 덕분이다. 할머니가 되어야지. 엄마는 못 되었지만 이모는 될 수 있었듯이 나는 할머니가 될 수 있다. 나의 할머니와 내가 길에서 만난 할머니들과 우리 엄마 할머니. 존중과 호의를 담은 호칭, 할머니. 그이들의 경험과 웃음과 ‘기억 유산’을 받은 손녀에서 할머니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자신의 몸을 움직여 산과 강을 만든 마고할미와 팥죽을 쑤어 나누어 먹으며 호랑이를 내쫓은 팥죽할미와도 함께하는 할머니가 되기.
우리에겐 모두 할머니가 있다.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나에게도. 우리 모두에게는 할머니가 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할머니. 나에게는 할머니가 계속 함께할 것이다, 그이의 유산에 관심을 갖고 욕심내서 받기만 한다면. 할머니들의 유산을 이어받아 어린이들에게 할머니의 목소리로 이야기할 수 있는 할머니 되기가 나의 목표가 되었다.
#엄마와함께차리는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