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밥상
엄마의 웰컴 푸드는 국이다. 첫 기차를 타고 간 날은 오전 10시에 집에 도착한다. 엄마는 어제 끓여두신 국 냄비부터 불에 올린다. 이미 내 몫의 수저 한 벌이 식탁에 놓여 있다. 밥 한 주걱을 국에 말아서 먹는다. 익숙하고 편하다. 맛있다. ‘엄지 척’과 함께 큰 목소리로 말한다.
“아욱국이네. 내가 젤로 좋아하는! 엄마! 맛있어요!!”
내가 처음 기억하는 밥상부터 지금까지 국이 빠진 적이 없다. 찌개가 있어도 국은 늘 있던 엄마 상차림을 말하니 놀라는 사람이 있어서 놀랐다. 이 역시, ‘당연한 게 아니었구나!’
지팡이를 짚고 밭일하시는 걸 보는 마음은 복잡하지만, 이제 일을 말리지 않고 알맞게 하시기만을 바란다. 아침마다 돌아보는 밭이 부모님의 건강 비결이라 여긴다. 밥상에서 건강 비결이라면 무얼까? 부모님이 지키는 건 두 가지다. 시간과 양. 세끼를 기준으로 규칙적인 생활과 연관된 상차림이다. 밥그릇과 국그릇은 늘 같은 크기다. 두 번 드시는 법도 없다. 옆에서 보면 과식이 없는 것이 부모님 밥상에서 눈에 띄는 장점이다. 욕심이 별로 없으시다.
가장 많이 오르는 것은 역시 된장국. 거의 매일 국을 끓이다 보면 된장의 가치를 다시 보게 된다. 특히나 흰쌀밥과 무척 잘 어울린다. 식어도 맛있고, 속이 편하다. 모든 채소를 품는다. 아욱, 시금치, 냉이, 시래기, 김치, 콩나물 등 거의 모든 채소로 된장국을 끓일 수 있다.
국은 밥과 함께 먹는다. 상차림에서 밥 먹는 손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국을 둔다. 수저 바로 옆에 국을 놓는다. 국은 맛도 좋지만 밥을 먹기 수월하게 도와준다.
국은 국물과 건더기로 이루어져 있다. 국물을 준비하고 재료를 다듬어서 끓이면 된다. 국물 내기의 부담은 늘 있지만, 장국, 건어물, 양념채소의 다양한 조합으로 만들어낸다. 국물은 나트륨덩어리라며 건더기만 먹기도 하지만 국은 역시 국물맛이다. 채소로 국물을 내면 짠맛이 덜해도 맛있다. 그래도 걱정이라면 조금만 먹으면 된다.
멸치, 다시마는 국물의 정석 내지 전통이 되었고, 파가 많이 나올 때는 파를 살짝 볶아 국물을 내면 고기육수처럼 맛있다. 물론 주관적인 입맛 기준이지만!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을 발견하면 반갑고 기쁘다. “죽이 안 먹고 잡대. 나는.” 몸이 안 좋으시거나 하면 죽을 끓여드리려 해도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그러면 국수는? 국물 좀 낼까요?” 그러면 못 이기시는 척 “해~” 하신다. 국수 국물을 즐겁게 고민하다가 요즘 새로 발견한 재료는 배추다. 알배추 겉잎을 섬유질 방향의 90도로 돌려 잘게 자르고 파도 듬뿍 넣고 냄비에서 볶다가, 간장 1숟가락과 올해 처음 사 본 바지락 육수 코인 2개를 넣고 끓이면 어떤 국을 끓여도 받아준다. 이 국물에 달걀을 풀면 달걀국, 가래떡을 넣으면 떡국, 채소만두를 넣고 만둣국을 끓여도 좋고, 칼국수면을 넣고 끓이면 하얀 해물탕 먹고 나서 끓여 먹는 국수 맛이 난다.
사실 국보다 더 좋은 게 있다. 바로 물김치. 배추김치나 무김치처럼 채소를 발효하는 음식은 다른 나라에도 있지만 발효된 국물을 훌훌 떠먹기 위한 목적으로 담그는 김치는 유일하다고 한다. 엄마의 반찬 중에 식구들이 모두 다 ‘엄지 척’ 하는 음식이 싱건지(열무로 담그는 물김치를 우리 집에서 부르는 이름)다. 열무를 소금에 절여 채수까지 다 쓰는 조리법이다. 그러니 열무를 잘 다듬고 세 번쯤 깨끗이 씻어야 한다. 손가락 두 마디 크기로 자르고 나서 한 번 더 씻는다. 그런 뒤 소금을 뿌려 30분 정도 절이고, 절여진 열무와 열무에서 나온 물을 그대로 통에 담는다. 절여지는 사이 국물을 준비한다. 고춧가루, 마늘, 생강을 촉촉하게 으깨서 아주 고운 체에 걸러 국물을 부으면 끝이다. 손가락으로 국물맛을 보며 간을 맞추신다. 손맛이라는 말이 딱 맞는 엄마의 싱건지다. 천일염 하나로 맞춘 간도 딱 맞고, 새콤하게 익으면 숟가락질을 한 번만 하는 사람은 없다. 세 술 이상 떠먹게 된다. 동치미, 양배추오이물김치, 돌나물물김치 같은 계절 김치도 가끔 담근다. 모두 소금 하나로만 간을 맞춘다.
오늘도 엄마와 아빠의 식사시간은 일정하며 밥.국 그릇은 꼭 같고 넘치지 않는다. 혼자 있는 집에 돌아와서도 나를 위해 국이나 찌개를 꼭 끓인다. 국 끓인 날 아침엔 과식한다. 절제는 너무 멀다. 밥상에서도 욕심을 줄이기는 어렵다!
*‘음쓰’ 없는 육수 만들기: 배추와 파를 채치고 다시마도 작게 썰어 기름 없이 볶다가 간장 한 스푼 넣어 간을 가볍게 한 뒤에 물을 부어 육수를 끓이면 배추와 파는 국물에 거의 녹아들어 국물의 밀도를 높여준다. 건져낼 건지도 없고 필요도 없다. 오히려 섬유질을 부드럽게 드실 수 있어서 좋다. 멸치도 더 부드러워져서 엄마도 드실 수 있다. 그래서 국물을 내도 ‘음.쓰(음식쓰레기)’가 없다!
다시마는 잘게 채썰어 다시 국에 넣어 먹거나 국수 고명으로 올린다. 오래 우리지 않으니 꺼내서 간식처럼 먹어도 짭짤한 맛이 남아 있다. 아버지가 잘 드신다. 고은정 음식연구가 선생님도 국물낸 다시마를 간식처럼 먹는다 하셔서 재밌었다. 멸치는 중멸치를 쓴다. 걸러내지 않고 먹기에 좋다.
육수에 너무 힘들이지 않아도 맛이 나는 방법을 엄마가 국 끓이시는 걸 보고 알게 되었다. 오래 끓이기가 비법이었다. 물을 10%쯤 더 넉넉히 붓고 끓고 나서 10~15분 정도 더 끓이면 육수 없이 해도 재료와 국물이 어우려져 맛이 난다. 담백하고 깔끔한 맛이다.
국물을 많이 끓여두면 상할까 걱정인데 엄마의 비법이 꽤 효과적이다. 두 번 끓이는 거다. 과학적인 이유는 모르겠는데, 국이든 찌개든 조림이든 하루 지나기 전에 한 번 더 끓이면 맛도 깊어질 뿐만 아니라 상하는 시간도 줄어든다. 물론 냉장 보관을 제때 해야 하지만 두 번 끓이기는 국물 음식한 뒤에 꼭 하는 일이다.
#엄마와함께먹는밥 #되면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