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어린이책'에서 배웠다

엄마 밥상

by 노정임


어린이책을 만드는 편집자가 된 것을 행운, 천운으로 여긴다. 나에게 잘 맞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창 일할 때는 몰랐다. 내 이력이 너무 평범하다고 투덜댔더니 한 선배가 그랬다.

"너 정말 특이한 이력이야. 동화책은 안 하고 생태 책만 했었지. 그리고 또 역사책하고, 국어책도 하잖아. 시장에서 가장 많은 게 동화 같은 픽션인데, 넌 논픽션만, 그것도 국내 저자랑 기획한 책만 했잖아."

"그, 그렇죠."

"번역서에 문학을 가장 많이 한다고. 특이해, 너."

부모님께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들은 기억이 없다. 성적표를 보고 더 잘하라고는 하셨지만. 어쨌든 아주 가끔 밤 9시에도 책상에 앉아있으면, 안방에서 주무시던 엄마가 문을 빼꼼 열고 말씀하셨다.

"어여 자. 자야 내일 일어나지."

딴짓도 아니고 책상에 앉아있어도 늘 자라고 하셨다. 학교 공부 외에 학원도 다른 예체능도 배우지 않고 고등학교까지 지냈다. 성적은 계속 떨어졌지만 공부 스트레스는 없었다. 대학 갈 때 전국 석차를 보며 내 위치를 깨닫고 잠시 충격을 받았으나 곧이어 친구들과 재밌게 노는 일로 채웠다. 밤 새운 적도 없다. 내 능력을 벗어나는 버거운 공부는 하지 않았다.

공부를 가장 많이 한 건 취직하고 나서다. 잠깐 사보를 만들 때 취재하고 인터뷰 글쓰기를 연습했고, 어린이책 편집자가 되고부터는 회사에서 온갖 강의를 듣게 해주었다. 90년대 후반, 신문사 문화센터를 비롯해서 아주 다양한 성인 교육기관이 번성했다. 거의 쉬지 않고 등록해서 나는 '노학원'이라고 불러도 될 지경이었다. 재밌었다. 시켜서 했다면 못 했을 거다. 얕고 넓게, 그리고 시험 보지 않는 공부는 재미있고 내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기분에 일에도 활력을 주었다.

부모님의 공부에 대한 잔소리가 없던 것도 질리지 않고 계속 공부할 수 있는 이유였다. 그래서 집에 가면 그때 배우고 있는 것을 말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그림, 사진, 편집 프로그램, 역사 탐방, 생태 자연, 과학 강연 등 재미난 현재의 이야기들을 듣고 이야기를 전했다. 화학을 전공한 아버지는 과학 이야기를 재미나게 들어주셨다.

나의 관심사는 그러다 음식에 이르렀다. 공부이자 관심사라고 했는데, 이는 일이기도 했다. 배움의 과정에서 책을 기획했고, 원고를 쓰기도 했고, 기획하고 그림과 글을 의뢰하기도 했다. 그리고 사람도 만나 새로운 인연, 어른 친구도 사귀게 되었다. 계속 성장하는 느낌, 그리고 과거에 배운 것이 아니라 현재의 이슈들로 앞서 연구한 분들의 생각을 따라가는 것은 진한 재미가 있었다.

배움의 내용이 연결될 때는 ‘유레카!’ 세상에 없는 걸 깨달은 것처럼 기쁘기도 했다. 최경봉 교수님과 우리말 문법책을 만들다 음식 동사의 특징을 알게 되었다. 단어를 보면 나라마다의 문화를 알 수 있다 하셨고, 그 사례로 음식을 만들 때 쓰는 동사를 모아 보여주셨다. 우리나라는 조리 과정에 ‘물’을 이용한 동사가 가장 많았다. “삶다, 데치다, 찌다, 고다” 등. 영어에서는 ‘토스트, 바비큐’ 등 불에 직접 굽는 동사가 많았다.

김치 연구자 강의를 들으러 갔더니, 물김치는 우리나라만의 김치라고 했다. 엄마의 싱건지가 새롭게 보였다. 자랑스럽기도 했고. 배우고 싶어졌다. 그래서 엄마가 뚝딱 만들어 그 과정을 잘 몰랐던 싱건지 담그는 과정을 자세히 기록해 놓았다. 기록은 했으나 손맛은 나에겐 기대할 수 없었다.

10여 년 전부터 열심히 음식 공부를 하러 다녔다. 제철 요리를 강조하시는 고은정 선생님을 만난 것도 큰 행운이었다. 우리 음식의 계량화를 무척 중시하셨다. 어른들의 경험과 손맛을 곧장 흉내 낼 수는 없지만 우리도 차려 먹을 수 있다고 용기를 주셨다. 우리 음식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내 생활 속에서 해서 밥상을 차리는 것이라고 하셨고, 나는 그 말씀에 공감하여 어린이 음식책을 해마다 만들었다.

우리 집에도 음식 공부한 내용이 전해졌다. 부모님이 농사지으신 채소로 늦가을마다 김장을 하는데, 배추 절이기가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절이는 내내 걱정을 했다. 고은정 선생님께 배운 뒤에, ‘10퍼센트!’라고 자신 있게 외치며, 막내딸은 배추 절이는 담당이 되었고, 온 식구가 걱정 없이 배추를 절이게 되었다.

지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음식 공부를 한다. 책으로, 유튜브로, 선생님들의 SNS로. 그러다 발견한 메뉴에 종종 도전한다.

“배우는 것 끝이 없다고 하잖어.” (엄마)

엄마의 한 말씀이 어떤 전문가의 말보다 나를 깨우칠 때가 있다. 조림 두부는 납작하고 널찍하게 자르고, 찌개 두부는 깍두기처럼 자르고, 그러다 훌훌 뜨기 좋게 된장국에는 얇게 날려 써는 방법을 내가(엄마가 아니라!) 엄마에게 설명했다. 그러자 엄마가 하신 말씀이다. 재미있는 이야기처럼 했으나, 가르치는 것처럼 들렸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무렇게나 썰어도 맛있지요, 뭐. 하하하.” (나)

기분이 나쁘셨나 하고 눈치를 좀 보았으나, 엄마는 진심으로 배우려고 하셨다. 다른 음식을 하려는데 “알려줘, 어떻게 써는지.” 하셨다. 내 태도를 다시 생각했다.

‘내가 배워야지! 뭐하냐, 나.’

그러고 나서, 엄마의 국 끓이기를 취재하고 관찰했다. 내가 잘하는 일이니까. 엄마는 국물을 낸 재료를 건져서 버리지 않는다. ‘음쓰(음식 쓰레기)’가 없다. 여기에 나의 방법을 조각보처럼 덧댄다. 배추와 파를 채 치고 다시마도 작게 썰어 기름 없이 볶다가 간장 한 스푼 넣어 간을 가볍게 한 뒤에 물을 부어 육수를 끓이면 배추와 파는 국물에 거의 녹아들어 국물의 밀도를 높여준다. 건져낼 건지도 없고 필요도 없다. 오히려 섬유질을 부드럽게 드실 수 있어서 좋다. 멸치도 더 부드러워져서 엄마도 드실 수 있다. 나도 엄마처럼 ‘음쓰’ 없이 국물을 낸다!

그리고 육수에 너무 힘주지 않아도 맛이 나는 방법을 엄마가 국 끓이시는 걸 보고 알게 되었다. 오래 끓이기가 비법이었다. 물을 10%쯤 더 넉넉히 붓고 끓고 나서, 10~15분 정도 충분히 더 끓이면 육수 없이 해도 재료와 국물이 어우러져 맛이 난다. 담백하고 깔끔한 맛이다.

국물 음식을 많이 끓여두면 상할까 걱정인데 엄마의 또 다른 비법이 꽤 효과적이다. 두 번 끓이는 거다. 과학적인 이유는 모르겠는데, 국이든 찌개든 조림이든 하루 지나 한 번 더 끓이면 맛도 깊어질 뿐만 아니라 잘 쉬지 않는다. 물론 냉장 보관을 제때 잘해야 하지만 두 번 끓이기는 여름이든 겨울이든 국물 음식을 한 뒤에 꼭 하는 일이 되었다. 국물을 낸 멸치도 엄마가 드실 정도로 부드러워져서 좋다. 대멸치는 아무리 끓여도 단단하니 국물 낼 때도 중멸치를 쓴다.

할머니가 되면 나도 집에 오는 이를 기다리며 손님을 환영하기 위한 국을 끓일 것이다. 헛헛한 마음이 따뜻해지고, 후루룩 부드럽게 먹을 수 있는 국을 내어주고 싶다. 이런 이야기를 담은 어린이책도 만들고 싶다.


#되면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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