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조림, 도전!

엄마 밥상

by 노정임


가을 무렵이 되면 새벽 기차 타는 멋이 더해진다. 5시 55분 기차를 탈 때만 해도 어둑하던 하늘이 점점 밝아지고, 바깥의 풍경은 풀빛이 더해간다. 기온이 떨어지고 해가 짧아지니 새벽에 일어나기는 힘들어지지만, 기차를 타고 가며 보는 나무의 색은 다양해지고, 기온 차이로 물안개도 멋지게 피어오르고, 맑은 날에는 하늘의 구름도 변화를 만들어 내며 움직이고 하늘빛보다 아름답게 빛난다. 2시간 반 동안의 기차 여행은 언제나 편하고 즐겁다. 무궁화호라서 자주 서고 종종 더디 가는 것 같아 시계를 보기도 하지만, 지나가는 풍경만 멍하게 봐도 좋은 시간이다. 그러다 내릴 시간이 다가오면, 내려서 로컬푸드 매장에서 살 몇 가지 생각하고 내려서 논길 밭길을 지나서 장을 보고, 집에 가는 시내버스를 탄다.

집에 도착하면 날마다 같은 풍경이다. 나를 마중 나온 아버지, 그리고 마루에 앉아 기다리는 엄마. 손을 흔들고 인사한다. 자기소개서에서 피해야 할 관용적 표현이라면, 첫 줄에 쓰는 ‘엄격한 아버지와 온화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아닐까. 내 기억 속에서 이 표현은 팩트다. 아침마다 반복된 일만 봐도 증명할 수 있다. 엄마가 부엌에서 아침밥을 준비하며 일어나라고 부르는 소리가 열 번 들려도 이불 속에서 꿈지럭거리다가, 새벽에 논물 둘러보고 오신 아버지의 저벅저벅 장화 소리만 들려도 벌떡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했다. 아버지의 새로운 모습을 본 건 부모님이 환갑 지나셨을 무렵이었을 거다. 대학부터 도회지로 이주한 나는 오랜만에 집에 왔는데 생경한 모습을 보았다. 아버지가 부엌에서 작은 칼을 들고 마늘을 까고 계셨다. 지금은 파, 마늘은 물론이고 열무, 배추 등 수확한 채소 다듬는 일은 아버지가 꼭 함께하신다.

양념 다듬을 때는 수다를 떨게 된다. 얼마 전, 앞서 하던 수다가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나지 않게 되었는데, 아버지의 이 말씀 때문이었다.

“도전과 반응! 그러니까 도전이 있으면 반응이 생겨. 새로운 문화가 들어오면 죽던 문화가 살아나기도 하는겨. Challenge and Response!”

영어까지! 아마도 귀농귀촌 사례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 중이었던 거 같다.

"에에? 도전과 반응?"

"대학 때 배웠어. 문화사. 강철중 교수."

"오~ 유명하신 분인가."

"몰라, 강철중이여."

아버지는 사람 이름을 잘 기억하신다. 아버지의 학창 시절 친구들, 친척, 인척, 동네 사람들, 자식들의 선생님 이름부터 막내딸 친구 이름까지 아신다. 60년도 넘은 대학 교수님 이름과 최근에는 '도전과 응전'으로 번역된 아놀드 토인비의 학문적 용어를 우리 집 부엌에서 듣게 될 줄이야.

익숙하지 않은 생선으로 조림과 국 사이 국물이 넉넉하게 끓여냈다. 그동안 끓여 본 생선은 갈치, 조기, 가자미, 꽁치.참치 통조림, 이웃에서 준 박대, 장치 등이다. 망원시장에서 생물 우럭, 대구, 고등어를 사서 끓인 적도 있다. 그런데 가을 즈음, 마땅한 생선이 없고 러시아산 커다란 동태를 시장에서 보고 어릴 때 자주 먹은 기억이 나서 토막 내서 사 왔다. 그동안 끓인 어떤 생선 음식보다 환영받은 동태탕. 생선가게에서 한 줌 넣어준 바지락과 오만둥이 네댓 개를 넣고 끓인 동태탕은 생물 우럭, 대구보다 부모님 입맛에 맞았나 보다. 내륙 지방이라서 자반이나 냉동 생선이 익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역시 맛보다 추억이 우선이다. 우리의 밥상은 보수적이다. 새로운 반응에 걱정이나 거부감이 앞선다.

음식 공부는 재미있다. 찌개와 조림 사이 어디쯤 있는 요즘 자주 끓이는 생선 음식도 재밌다. 그러나 재료 손질은 정말 힘들다. 생물 생선을 사서 가는 이유 중 하나는 생선가게 사장님들이 잘 다듬어 주시기 때문이다. 생선 음식을 자주 했더니, 생선이 생기면 일단 냉동실에 넣어두신다. 이웃이 주신 장치라는 생선, 그리고 바다낚시를 다녀왔다며 고등어를 주신 분도 계시다고.

그날도 냉동실을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 은빛 갈치가 똬리를 튼 듯 동그랗게 말려서 검은 비닐봉지 안에 입과 꼬리까지 생생하게 얼어 있다. 이제 생선 요리는 나의 몫이 되었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온전한 모습의 생선을 들고 야외 수돗가로 간다. 혼자만의 싸움이 시작된다.

“아악, 이빨이 뾰족해. 잘라야겠지?! 으아아아. 내장도 빼내고. 아악, 배를 갈라야겠지. 아아아.” 혼자서 소리 지르며, 비늘과 지느러미까지 다듬고, 물로 씻고 나면 힘이 빠진다. ‘낚시를 금지시킬까.’ 나도 모르게 멍하니 생각하지만, 재료만 손질하면 그다음 음식 만들기는 아주 귀여운 일이 된다. 음식을 만들어서 맛을 보면, ‘맛있다’ 하게 되고.

마당에서 닭을 키우던 초등학교 때, 닭을 잡던 엄마가 생각났다.

“예전에는 집에서 닭을 잡았잖아요.”

“허허, 그랬지.”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민물고기 잡아 와도 동네에서 소나 돼지를 잡아도 아버지가 내장까지 다 다듬었는데, 이상한 규칙처럼 닭만은 엄마가 잡아서 백숙을 해주셨다. 엄마가 닭을 잡던 자리에서 나는 손으로 만지기가 저어되는 생선을 손질한다. 파, 마늘, 무나 감자, 버섯을 생선보다 더 많이 넣고 끓인다.

“사 먹는 거 같어.”

처음에는 이 말이 서운했다. 땀 흘리며 열심을 다 했는데, 바깥 음식 같다니! ‘집밥 같다’가 칭찬 아닐까 했지만, 외식을 안 하시니 엄마보다는 진하고 양념 많이 넣은 내 음식에 외식하는 기분이 드시나 보다. 사 먹는 것 같다는 칭찬의 말일 것이다. 밥상에도 새로운 도전이 재미와 활력을 준다.

먹는 건 15분이면 끝난다. 별 대화 없이, 가끔 반찬을 앞으로 밀어주며 식사는 조용하게 끝난다. 식재료와 양념을 다듬으며 제약 없는 주제로 두런두런 수다를 떠는 과정이 재미다. 올해 채소 농사지으신 이야기, 생선이 우리 집까지 오게 된 이야기, 먹는 재미보다 어쩌면 모여서 밥을 차리고 같이 이야기하는 재미가 더 크다.

음식책을 만들면서 배운 새로운 문화가 우리 부엌까지 자리 잡는 데에도 시간이 걸린다. 정종에 햇생강을 갈아 넣은 생강술도 배웠다. 생선 비린내도 줄여주지만, 채소를 끓일 때 감칠맛도 더해준다. 여느 조미료 없이 끓일 때 생강술은 좋은 양념이 되어준다.

“우리 집 생강으로 만든 거여요. 고은정 선생님한테 배웠어요.”

“술이여?”

“네, 정종에다가 생강 갈아 넣고요. 1년 넘었지.”

명절에 들어온 과일 상자를 열면 거의 그대로 있다. 과일깍두기를 배운 다음에 응용하는 방법이 있다. 사과를 채를 썰어 무생채나 배추겉절이에 넣는 것이다. 무나 배추는 엄마가 씹기에는 어떻게 해도 질기지만, 이삼일 지나 조금 삭으면 사과에 김치맛이 배고 조밀한 조직이 부드러워져서 사과가 먹을 만해진다. 단맛이 더해지니 엄마뿐만 아니라 아버지도 맛있다 하신다. 모방하며 배운다. 고정되어 있던 우리 집 부엌 문화에 생강술 병을 들이고 사과를 김치 양념으로 넣는 작은 변화로 활기가 생긴다. 이야깃거리가 더해진다.

“학교에서 요리를 가르쳤으면 좋겠어요.” (나)

“그걸 뭘 배워.” (아빠)

“밥 짓는 거, 김치 담그는 거 다들 어려워해요. 근데 배워 보니까 재밌어요. 정말 필요하고요.” (나)

“응.” (아빠)

냉동실의 생선을 꺼내면서 아마도 나는 뜨악한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그런 나를 보고 엄마는 “너무 힘들면 하지 마.”라고, 학생 때 “어여, 자.” 하던 부드러운 말투로 말씀하신다. 여러 번 하면 쉬운 것이 될 테니, 심호흡 한번 하고 생선을 들고 호기롭게 수돗가로 간다. 도전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작가의 이전글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어린이책'에서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