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밥상
“아버지, 치과는 잘 다녀오셨어?” (언니)
“적어도 하나는 빼야 한다고, 의사가 그러네요.” (오빠)
“아랫니요?” (나)
“응. 근데 의사가 놀라. 나이 보고 얼굴 보고, 나이 보고 치아 보면서.” (오빠)
"하하하, 하하하."
일주일 전, 아버지를 모시고 전주 병원에 다녀온 오빠에게 궁금함을 대신 물어본다. 일 년에 두 번은 셋이 함께 새벽에 모여서 간다. 가을 일을 하러 가는 일손이다. 오빠가 모는 차를 타고 가며 서로 안부를 나눈다. 대화의 끝은 늘 비슷하다. 집에 가서 할 일을 떠올린다. 작년에 했던 일, 올해 달라진 상황, 준비할 것 등등. 올해는 고구마를 많이 심으셨다 하고, 감 농사는 대폭 줄이셨지만 그래도 10그루쯤을 손으로 따야 한다. 코로나는 가족 문화도 바꾸었다. 명절과 부모님 생신에 형제, 자매, 조카들이 다 모였었다. 열 명이 훌쩍 넘어서 밥상 놓을 곳이 없었지만, 최근 5~6년 사이 서로 시간을 비껴서 다녀간다. 엄마, 아빠, 언니, 오빠, 나 이렇게 다섯 명은 가을걷이 때 한 팀이 되어 이박삼일 단체전을 뛴다.
올해 오빠는 ‘락스’를 산다. 나는 엄마의 냉장고 안 식재료를 생각하며 메뉴를 짠다. 언니는 망가진 거름망을 대체할 체, 비닐장갑 등 살림살이를 돌본다. 형제들이 모은 회비로는 겨울 이불을 한 채를 사 왔다. 부모님의 며느리가 이불 빨래를 해서 싣고 왔다. 이런저런 식재료를 사 가면서도 부모님께 요청하는 것이 있다.
“엄마, 계란 있지요?”
“얼마 안 남았을걸.”
“그러면 한 판만 사다 주시지. 아버지한테 얘기해 주세요~.”
2~3일 일할 준비다. 김치와 장아찌, 장이 놓인 밥상에 따듯한 두부와 달걀 반찬이 오르면 온기가 생긴다. 오랜만에 일손이 모였으니, 부모님이 계획한 일이 많다. 최소한의 기계만을 갖춘 우리 집에서 대부분을 손으로 날라야 한다. 곡괭이와 호미로 고구마를 캐서, 경운기에 실어 집으로 나른다. 감을 따려면 사다리, 감 장대, 바구니, 가위를 가지고 가야 한다. 따고 다듬고 담아서 경운기로 나른다. 집에 온 고구마는 얼지 않게 종이상자에 담아 창고에 넣고, 땡감은 깎아서 해가 잘 드는 곳에 걸어서 말린다. 일하는 사람들은 하늘을 볼 새가 없다. 새벽밥 먹고 아침 해와 함께 시작한 일은 해가 저물 때까지 계속된다.
다섯 명이 암묵적으로 꼭 지키는 게 있다. 세끼와 간식 먹는 시간이다. 아침엔 된장국, 점심엔 어제 끓여놓은 국물에 국수를 말아서 먹고, 저녁은 생선도 굽고 고기 넣은 찌개도 끓여서 먹는다. 간간이 일찍 익은 홍시가 간식이 된다. 태양의 기운을 채우는 느낌이다. 요구르트와 떡도 먹는다. 잠깐 새참 먹을 때 비로소 서로 얼굴을 마주 본다. 별다른 대화를 하지 않아도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와서 손이 잘 맞는다.
가을걷이 때 날씨가 늘 좋다.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다. 하늘은 푸르고 햇살은 적절히 따사롭고 둥글둥글한 능선마다 나무들은 물들어 간다. 바람이 살랑 불어오면 향기도 좋다. 놀기 좋은 계절이다.
“참 일하기 좋은 날씨죵.” (나)
“감을 따니까 허리가 쭈욱 펴져.” (오빠)
“으악, 지렁이가 뱀만 해.” (언니)
농담이지만 사실이기도 하다. 그리곤 저녁에 일찍 잠들고, 다시 새벽밥을 먹는다.
일하다 틈이 생기면 각자 맘에 쓰인 일을 해결한다. 곧 김장을 해야 하니 나는 김치통을 비우고 냉장도 청소도 간단히 한다. 오빠는 부엌문 옆에 생긴 곰팡이를 지운다. 락스를 사 와서 할 일이 이거였다. 백 년 전 흙과 나무로 지은 집, 부엌을 개조하고 방을 넓히며 시멘트와 합판으로 마감하며 조각보처럼 만들어진 집. 음식을 하는 부엌은 습기가 많고, 바깥 공기와 기온 차이가 벌어지면 물방울이 맺힌다. 그래서 겨울을 지나고 나면 젖은 벽지에 곰팡이가 퍼져 거뭇해진다. 그걸 없애려고 여러 곳을 검색했는지 촘촘한 붓을 미리 준비해 와서 곰팡이를 닦는다. 언니는 어디 있나 했더니 화장실을 청소한다. 변기 닦는 정도의 청소가 아니다. 화장실에 있는 물건을 다 꺼내 놓고 하는 대청소다.
일하는 스타일도 다르다. 오빠는 여유 있게 일하고 싶어 한다. 아침 식사를 마치면 커피를 내린다. 커피 도구를 챙겨온다. 언니는 소위 말하는 일머리가 좋아 효율적으로 계획도 잘 세우고 정확하게 해낸다. 엄마 아빠의 신뢰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는 나를 잘 몰랐는데, 이렇게 견주어 보면 조급하다. 그리고 마감 시간을 정하고 일한다. 편집 일을 오래 하니 계획형으로 바뀌었나 보다.
“11시 30분! 밥 먹을 준비해요~! 감은 저녁 6시까지면 다 깎겠어요.” (나)
일의 양을 가늠하는 게 아니라, 6시까지 끝낼 수 있도록 집중해서 일하고 뛰어다니며 일한다. 엄마 아빠는 어떤 일 앞에서도 페이스를 잃지 않으신다. 이 구역 ‘힘순찐(힘을 숨긴 진짜 주인공)’, ‘본업존잘(본업을 잘해서 매력 있다)’이다. 허리가 굽고 손마디가 다 아프시지만 매력 있는 주인공으로 일의 리더로 추앙하며 아부의 말도 많이 하면서 일한다. 물론 힘들다는 소리도 많이 하고 탄식도 하면서 일을 달린다.
나는 다섯 명의 3일 메뉴를 적어 온다. 변주도 많지만, 쓰는 재료는 비슷하다. 이제 엄마도 우리가 오기 전에 기운을 끌어모아서 반찬을 만들어 두신다. 늦가을 가지무침, 호박볶음, 고추멸치조림 등.
“엄마, 맛있어요!”
“그려?”
아침마다 밥을 하고 국을 끓이고, 만들어 둔 반찬을 담아 먹고 얘기하고 설거지까지 하루 세 번의 밥때가 즐거운 놀이가 된다. 맛볼 때마다 맛있다고 감탄사를 남발하고, 부족한 맛은 각자 알아서 양념장으로 채우고, 서로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선다. 날마다 이렇게 하기는 어렵겠지만 2~3일 동안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고 서로 하겠다고 나서서 하는 건 꽤 서로를 보듬는 위로가 된다.
올해 오빠가 아침에 달걀과 두부를 섞어 반찬을 했다. 깊이가 있는 프라이팬도 하나 들고 왔다. 그러고는 부침과 찜 사이의 부드러운 반찬을 만들어 동그란 접시에 크게 담았다. 피자를 자르는 모양으로 여덟 조각을 낸다. 파를 넣어서 익숙한 맛이면서 모양은 재미있고 식감은 부드럽다. 모두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보며 ‘유니버셜 디자인’이 떠올랐다. 내가 찾던 음식이다. 제품이나 서비스 등을 이용하는 사람이 성별, 나이, 장애, 언어 등으로 제약받지 않도록 설계한 제품이나 환경을 만드는 디자인을 의미하는 낯선 말이 유니버셜 디자인이다. ‘범용디자인’, ‘모든 사람을 위한 디자인’이라고도 한다. 버스의 손잡이 길이를 다양하게 하고, 공공시설에 큰 그림문자를 붙여 저시력자나 외국인이 찾기 쉽게 만들고, 남자 화장실에도 유아용 의자와 기저귀 교환대를 설치하는 등 제약을 최소화하는 디자인이다. 오빠의 반찬에 ‘모든 사람을 위한 반찬’이라 이름 붙이고 싶었다. 장벽이 없는 ‘범용 음식’, ‘모두의 음식’!
농촌에서 대가족으로 살던 50대부터 90대까지 잠깐 모인 이 가족은 이제 한국의 평균은 아닐 것이다. 모든 가족은 특이하고 특별하며 개성이 있다. 가족의 결합은 시기마다 달라지고 평소에는 1~2인 가족으로 떨어져 지낸다. 가족 관계도 가벼워졌다. 느슨하게 결합하여 있다. 예전보다 바라는 바도 적다. 규율화된 효도가 아니라, 각자 방식으로 돌보고 위하고 협력하는 관계다. 토론도 하고 지혜와 정보를 나누기도 한다. 무거운 책임감이 내재해 있지만, 이제는 좀 더 가볍게 만나고 흩어지고 자기 자신에게 가장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엄마가 여러 번 말씀하시는 “너무 힘든 거 하지 마.”의 가족 버전이다.
집도 조각보처럼 유지되고 있고, 조리법도 다양한 시공간이 결합하여 만들어지고, 사람도 조각보처럼 이어진다.
지난해에는 90년 동안 처음 겪는 홍수를 겪으셨다. 새벽 6시에 전화가 온다는 건 큰일이 났다는 뜻이다. 작년 여름 전화가 울렸을 때 두 분 중에서 누군가 아픈가 하고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홍수가 났다는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다음 날 흙탕물이 쓸고 간 자리를 오빠와 같이 차를 타고 가서 부모님을 찾아뵈었다. 조끼를 맞춰 입은 봉사대가 와서 도로를 청소하고, 군부대가 지원을 나와 대형 쓰레기를 치웠다. 우리 밭도 엉망이 되었다. 이제 1년이 지나, 뿌리째 떠내려와 걸려 있던 나무를 잘라 치우고, 손으로 들 수 없을 정도로 큰 돌들을 치우고, 비닐하우스 등에서 쓸려온 비닐이나 집게, 철사 들을 겨우 치웠다. 흙은 찾았는데, 씨앗이 사라졌다.
“콩 씨앗이 없네.” (엄마)
“어쩐대요. 구할 데를 찾아볼까?” (나)
“재작년 꺼 있는데, 날라나? 나는 씨앗 있으면 다 줘. 있으면 다 주지.”
씨앗도 소유하지 않은 모두의 것이라는 마음이던 모양이다. 올봄, 동네 분들한테 씨앗 달라는 말씀은 못 하시고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셨는데, 콩이 그늘에서 마르고 있다. 단정하게 묶어서 지붕 있는 창고에 세워두셨다. 양을 보니 10%쯤으로 줄어든 것 같다. 홍수로 한 해 사라졌던 콩을 이번 가을에 다시 수확하셨으니, 이 콩은 모두 내년의 씨앗이 될 것이다. 부모님이 베어다 놓으신 콩을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꾼들이 과제를 마치고, 각자의 집으로 갈 시간이다. 아버지는 인사를 참 중요하게 생각하신다. 옆에서 보면 인사를 좋아하시는 것 같다. 의무가 아니라 놀이처럼. 사륜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다 만나는 마을 사람에게 꼭 한 손을 들어 인사하신다. 오빠는 헤어질 때마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눈을 맞추고 인사를 한다. 나는 갈게요, 말하고 손을 흔드는 정도인데, 오빠의 인사법이 어느 날 내 눈에 들어왔다. 나도 종종 오빠의 인사법을 모방하여 엄마 아빠한테 인사를 한다.
“아버지가 돈 빌린 사람한테 농사 가르친 얘기 들었어요?” (나)
“아니.”, “못 들었는데?” (언니, 오빠)
“아버지가 아주 옛날에 젊은 사람한테 돈을 빌려줬대요. 근데 돈을 안 줘서 보니까 진짜 갚을 게 없어서 못 갚더래. 그래서 어떻게 했냐면, 인삼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줬대요.”
“오오.”, “그으래?”
“진짜 괜찮은 방법이죠? 그렇게 해서 돈 받으시고, 다시는 돈 안 빌려주신대요.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
각자의 집으로 가는 시간, 그 차 안에서 내가 들은 기억 유산을 나눔했다. 일제 강점기부터 한국전쟁, 근대화 등등 현대사를 모두 지나온 부모님의 이야기 중에서 반짝이는 것을 찾으면 공유한다. 일하다가 또는 많은 대화를 하다가 서로의 감정에 작은 상처를 내기도 할 텐데 이런 이야기는 상처를 치유한다. 공통의 기억을 가진다는 그 자체로 연대감도 튼튼해진다. 같이 공감하면서도, 아버지의 이야기는 각자에게 서로 다른 이야기로 해석될 것이다. 그러다 ‘모두의 이야기’로 재탄생하게 되지 않을까?
모두의 이야기는 모두의 음식처럼 우리를 돌보는 힘이 될 것이다. 연약함의 연대, 돌보는 사람들을 돌보는 이야기, 모두를 지원하고 응원하는 이야기가 많아질 때 서로의 돌봄이 일상에 스며들고, 나도 돌봄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모두의 디자인, 모두의 음식, 모두의 이야기가 많아지기를, 그러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