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밥상
음식 맛은 신선한 재료와 시간, 그리고 간이 좌우한다. 간을 맞추는 건 장이다. 간장, 된장, 고추장 세 조합이면 우리 집 밥상에 오르는 반찬 어느 것이든 간이 된다. 소금을 넣는 경우는 거의 없다. 뽀얗게 끓이면 더 예쁜 떡국에도 간장을 포기할 수 없다. 간장 맛을 알면 거무스름한 빛을 품은 떡국이 보기만 해도 오히려 더 먹음직스럽다. 생선찌개엔 고추장을 뺄 수 없다. 곡물이 들어간 고추장을 넣으면 국물이 텁텁하다지만, 고춧가루에 고추장을 살짝 보태면 맛이 다양한 층위를 이루어 만족감이 커진다. 설탕 한 알 넣지 않아도 끓일수록 국물 맛이 달다. 수육을 삶을 땐 된장이 빠지면 안 된다. 후추, 월계수 잎 없어도 된장 혼자 맛을 감당해 낸다.
어린이 음식책을 만들고 싶어서 강의를 한창 들으러 다닐 때였다. 장에 관해 공부하다가 생각했다. ‘엄마가 장을 담그는 걸 못 봤네. 왜지?’
“엄마, 장 담글 때 왜 안 불렀어요?”
“쉬워. 장은 뭐 할 게 있가니? 메주 삶을 때가 어렵지.”
실제로 배워 보니, 쉬웠다. 조건은 있다. 장독과 메주가 있을 경우! 장독을 놓을 장소가 있고! 그러고 나면 재료는 간단하고, 담그는 법은 쉽고, 한두 시간 안에 금세 담근다. 메주가 나오는 2~3월에 담그면 된다. 봄부터 여름 동안 익고,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장을 뜰 수 있으니,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거의 1년이 걸리지만, 첫해만 지나고 나면 부엌에 장이 떨어질 일이 없다.
제철이면 감당 못 할 만큼 채소를 많이 수확할 때가 있다. 더운 여름 내내 빨갛게 익은 홍고추를 따서 고추를 말리고 나면, 가을로 접어드는 무렵에 풋고추가 포도송이처럼 달린다. 더위가 끝난 이후에 열린 푸른 고추는 홍고추로 여물지 못하기 때문에 가지째 툭툭 끊어 와서 부엌에 모여 다듬는다. 쌓이는 열매를 보니 반찬을 만드는 것이라기보다는 채소를 보관하는 방법에 장아찌는 아주 유용하다. 여름 해가 기운이 조금 빠졌으니, 오전에도 가고 오후에도 가서 풋고추를 따와서 장아찌를 담근다. 잠깐 사이 부지런 떨어야 제철을 놓치지 않는다.
식초, 설탕, 멸치액젓, 그리고 간장을 넣어 국물을 만들어 둔다. 씻어서 물기를 떨어낸 고추를 통에 촘촘하게 넣고 누름돌로 누른 다음 잠길 만큼만 간장 물을 부으면 끝이다. 그다음은 시간이 재운다. 김장할 때가 되면 늦여름에 담근 장아찌가 맛이 든다. 김치와 장아찌처럼 익어가는 음식들은 기대감을 높여주고 오는 앞날을 기다리게 만든다. 늦여름에 딴 고추는 조직이 치밀해서 아직도 속까지는 간장 물이 스며들지 않았지만 질겅 씹어서 맛보는 장아찌가 짭조름하고 달고 맛있다. 엄마 드시도록 잘게 다져서 반찬통에 담는다.
어느 해 설날 연휴였다. 엄마가 힘이 없고 밥 먹기가 싫다며 자꾸 누우셨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두려웠다. 어찌할 바를 몰라 이부자리만 만지작거리며 옆에 있었다. 쟁반에 챙겨온 떡국도 동치미 국물도 고개를 저으며 눈을 감고 돌아누우셨다. 음식을 하다가, “엄마, 간장이 떨어졌네. 장독에서 퍼 올까요?” 물으면, 뜬금없이 “이제 장 그만 담글라는디.” 하신다. 이 말을 들으면 엄마가 앓아눕던 모습이 떠오른다.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아 서로 딴청이다.
나는 장을 뜨러 가고, 엄마는 도마에 놓인 채소를 마저 썬다.
“지금 담그신 것만 해도 충분히 먹지. 장아찌에는 집간장 아까우니까 진간장 넣자, 엄마.”
“그러믄 싱거워.”
“액젓 더 넣지 뭐.”
간장, 된장, 고추장은 2년 전에 담근 거다. 나는 작년에 <장 도감>을 편집했다. 어린이책이고 도감이면 주절주절 설명할 면이 없다. 핵심만 뽑아야 한다. 개인적 사회적 이리저리 뻗은 장에 대한 역사와 맥락을 따져보고 정보를 정리해야 한다.
책으로 만드는 장은 또 다르니, 책으로 담을 만한 가치를 많이도 생각했다.
쉽고 오래되고 가치 있으나 너무 가까워서 잘 안 보이는 과정과 매력을 꺼내서 눈에 보이게 그려야 했다. 엄마의 장독대만큼 책을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을 받은 것은 내가 10년째 담그는 장이었다. 도시의 원룸에 사는 나는 장독도 장독대도 없다. 그런데도 10년 장을 담글 수 있었던 것은 음식을 공부하던 동문과 함께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 동문의 사무실 베란다에서 5~8명이 한 장독에 같이 장을 담가서 나누어 먹었다. 장에 새로운 이야기가 생겼다. 엄마의 장독대에서 독립한 지 10년이 된 거다. 그럴수록 엄마의 장이 더 귀하게 느껴진다.
음식에서도 전통에 대한 고민이 많다. 낡아 보이기도 하고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옳고 그름이 따로 있는 것처럼 여기기도 한다. 소금은 뭘 쓰고, 물은 어떠해야 한다는 등 규율도 많아 보인다. 그래서 전통이라는 권위가 더해지면 멀게 느껴진다. 서울 정동의 장독대와 전북 완주의 장독대가 연결된 순간 장은 현재가 되었다. 같이 장을 담가 해마다 다른 맛을 맛보고, 짭조름하게 익어갈 장아찌를 담그는 일은 내일을 기대하게 하는 작고 위대한 일이다. 한식이라서, 지켜야 할 유산이라서가 아니라 맛있어서, 담그기 쉬워서 장아찌를, 장을 담근다. 혜성을 발견한 여성학자의 문장이 내 카톡 프로필이다 “삶에 별빛을 섞으십시오.” 이 문장을 이렇게 응용하고 싶다.
“삶에 장맛을 비추십시오.”
우리는 ‘먹는 존재’다. 먹는 행위는 목숨과 직렬 연결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근원적 싸움에 가깝다. 우리는 날마다 근원적 싸움 중이다. “두려움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 중이다.
기도하듯 속으로 되뇐다. ‘사라지지 말아라, 장과 김치. 엄마, 사라지지 말아요.’ 이런! 생각을 다시 현재로 가져온다.
코로나로 집에 있는 동안, 사이버대학에 편입해서 다녔다. 출력만 있고 입력은 없는 상태가 싫어서 시작했으나 시험 보기는 너무나 지겨웠다. 포기하지 않고 졸업 학기까지 수강했으니, 스스로 자신을 크게 칭찬할 만하다. ‘이야기치료’ 과목에서 이렇게 멋진 문장도 만났다. 선물 같은 문장이다.
“(사람은) 만들어진 이야기에 따라 살다가,
개인의 경험을 새로운 언어로 묘사하고 기술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이야기치료> 수업 중에서
우리는 각자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이야기에 따라서 산다. 이야기는 일상생활을 잘 배열하도록 돕는다고 한다. 자신의 활동을 공유하면서 자기 경험을 재진술하게 되고, 다시 살아나게 하며 (다른 사람이 제공한 것이 아닌!) 자신이 발견한 독특성을 스스로 발견하고 자신의 이야기는 언제나 재해석될 수 있다! 응원과 용기가 되어주었다. 지배적인 이야기가 무엇인지 눈치를 보며 찾는 시간에 내가 선호하는 자기(self)를 찾아 성장하고 발달하고 지지할 수 있다는 응원. 자아는 다른 존재들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 안에서 창조하고 구성되므로 그래서 불가피하게도 사람은 모두 자기 창조의 주인공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용기.
자연스러운 전승이 어려운 시대이다. 내가 만드는 책도 전승을 돕는 매개체라고 생각한다. 일상을 흐르게 하는 핵심적인 음식(문화)을 기록하는 일이다. 장에 대한 새로운 경험이 쌓이고 있고 그 감탄을 언어로 기술하고 있다. 무얼 먹을지 고민할 시간에 밥을 짓고 된장찌개를 끓여 나를 채운다.
엄마와 같이 밥을 하고, 장 이야기를 하고, 장아찌를 담는 것은 엄마와 함께하는 세계를 계속 이어가는 일이다. 살아내는 그 모든 시간은 타인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 그중 현재 엄마와 가장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 생활 속에서 아주 또렷하게. ‘사랑해’라는 말보다 ‘아낀다’라는 말이 주는 투박하고 생생한 느낌처럼.
올해도 어김없이 김장을 했다. 고구마를 캤던 다섯 명에다 조카 한 명이 더해졌다. 날씨 탓에 우리 집도 배추, 무가 작다. 크기가 작아서 절반쯤으로 분량은 줄었으나 부모님 냉장고는 충분히 채웠다. 일 년치 식량이다. 김장할 때 고기는 빠질 수 없지. 고기도 삶고 굴국도 끓였다. 엄마는 두부를 드셨다. 나보다 24살 어린 조카가 벌써 오 년째 김장에 오고 있다. 조카 덕분에 김장이 이어질 희망이 우리의 이야기에 담긴다. 동글게 모여 김장을 하면 어쩔 수 없이 수다가 많아진다. 청년 혼자 가장 어른?스럽고, 어른들은 아이들같이 수다가 많았다. 많이 웃었고, 열심히 먹었다. 김장을 끝내고는 부모님 겨울 옷을 꺼낸다. 바깥 출입이 많으므로 두꺼운 바지와 조끼를 챙겨 놓고 서로 건강을 기원하며, 각자의 이야기 속으로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