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밥상
[요리 활동] 두부참치동그랑땡전
부엌 뒤에는 옛 우물터가 있다. 우물은 이제 덮였고, 비를 가릴 만큼 지붕을 이어 여기서 흙 채소도 다듬고, 큰 그릇을 쌓아 보관도 한다. 이곳 한켠에 준비된 게 있다. 휴대용 버너와, 의자로 삼는 스티로폼 몇 개다. 엄마, 아빠, 나 셋이 불을 가운데 놓고 둥글게 앉아 전을 부치는 ‘간이 부엌’이다.
한 달에 한 번 제사가 있었다. 수십 명이 와서 명절을 지내던 큰집이었으나, 몇 년 전부터는 거의 두 분이 제사를 준비해야 했다. 음식 종류를 줄였다고는 했지만 국, 탕, 나물, 찜, 전, 과일, 과자까지 준비가 만만치 않다. 큰 상에 무거운 음식을 쌓아 올리고 늦은 시간에 지내야 하는 제사. 3년 전부터 부모님의 아들에게 제사가 넘어갔다. 부모님에게도 오빠네 가족에게도 새로운 문화가 생긴 것이다. 부모님에게 길어진 연휴는 해결해야 할 또 다른 숙제처럼 느껴졌다. 각자 할 일을 찾아서 하듯이 오빠네 식구는 제사를 지내고, 나는 부모님의 남는 시간과 허전함을 채울 방법을 고민했다.
나에게 유일한 모임이 하나 있다. 한 달에 한 번 모여서 음식을 만들어서 먹기도 하고, 밑반찬을 만들어 나누는 모임이다. 요리를 잘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어서 나는 설거지가 주 업무다. 어깨너머로 배우며 하루를 동글게 앉아 재료도 다듬고 같이 음식을 나누는 마음이 충만한 모임이다. 여기서 만두를 했었다. 우리 집에서는 전혀 하지 않던 음식.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음식. 고기 빼고 두부를 두 배 넣으면 엄마도 드실 수 있고, 무엇보다 긴 연휴 중 하루를 꽉 채울 만큼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었다. 제사가 없어진 첫 추석에 나는 숙주까지 챙겨 들고 가서, 엄마 아빠에게 설명하고 서로 연구하면서 낯선 만두를 빚었다. 맛있었다. 그러나 익숙하지 않은 음식이라 부모님을 너무 힘들게 한 것 같다. ‘너무 힘든 거 하지 마!’ 엄마의 말씀을 지켜야지. 방향을 전환했다.
명절엔 기름 냄새가 좀 풍겨야 기분이 난다. 담백하게 만들었던 만두 속은 전 부치기 좋은 재료였다. 전분과 달걀을 좀 더 넣어 동그랗게 빚어 전을 부쳤더니 근사한 반찬이 되었다.
“테레비 보니까 계란에 참치 넣어서 부치면 맛있다던데?” (아빠)
“참치요?” (나)
그래, 캔 참치! 아버지 배움이 추가되어 두부참치동그랑땡전이 되었다. 파가 많이 나는 계절에는 파를 듬뿍 넣고, 부추가 텃밭에서 살랑이면 부추를 송송 썰어 넣고 동글게 부쳤다. 고기만두 속에서 두부동그랑땡, 이제 두부참지동그랑땡전이 되었다. 모든 재료는 잘게 잘라야 한다. 집중력이 필요하다. 작고 동글게 빚으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귀찮기도 하다. 그럴 땐 놀이라고 생각한다.
재료가 준비되면 간이 부엌에 동글게 앉는다. 내가 배운 모든 음식 지식과 모든 경험을 사용한다. 들기름만으로 부쳤었는데, 들기름은 발연점이 낮아 연기가 많이 나니까 발연점이 높은 기름을 섞어서 쓴다. <반찬 도감>을 만들며 배운 방법이다. 포도씨유를 프라이팬에 두르고, 들기름은 살짝 첨가하는 방식이다. 처음 부친 뜨거운 전을 맛보는 시간이 재미있다.
음식을 배우러 다니며, 책을 만드는 편집자로서 가장 재미있는 시간은 강의 시간 후에 수강생들의 질문을 듣는 때다. 어떤 강의에서도 늘 나오는 질문은 “그래서 뭘 먹으면 좋아요?”다. 이건 건강에 관한 질문이다. 사회적인 이야기, 문화적인 이야기를 해도 먹을거리에 대한 궁금증은 건강과 직결된다. 아직 어떤 것이 건강한 것인지 모르는 건 아닐 텐데, 이건 어떤 본능적인 불안함이라고 느껴졌다. 건강에 나쁜 건 피하고, 먹어서 건강에 보탬이 되는 걸 찾고 싶은 본능. 구순인 부모님께 두부참치동그랑땡전은 아마도 건강에 도움이 되는 음식이 아닐 수 있다. 불을 가운데에 두고 음식을 하는 것은 가장 원시적인 모임의 모습이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음식을 보는 그 자체가 재미있다. 채반에 김이 빠지도록 겹치지 않게 나란히 쌓은 모습은 예쁘다. 식힌 전을 반찬 통에 질서 있게 담으면 뿌듯하다. 이렇게 재미있는 놀이는 찾기 어렵다. 더워도 너무 더운 여름과 감기가 걱정되는 추운 겨울을 빼고 종종 전을 부치며 부모님과 재미있게 놀았다.
올해는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엄마에게 배우자. 내가 좋아하던 명절 음식을!’ 참깨 볶기는 명절 준비의 전초전이다. 어릴 때는 왜 먹나 몰랐던 나물이 고사리였는데, 지금은 너무나도 좋아하는 반찬이다. 엄마가 해주시던 밥알 듬뿍 든 식혜도 생각났다. 단 음료는 거의 안 마시지만, 식혜는 한 사발 마실 수 있을 거 같았다. 이번 추석 연휴는 은근슬쩍 엄마에게 배우는 음식 강의로 채웠다.
농사지은 참깨는 씻기부터 배워야 했다. 물에 둥둥 뜨는 가벼운 참깨를 씻을 때는 고운 체가 필요했다. 씻은 참깨를 약한 불에 올리고 20분 이상 쉬지 않고 볶아야 타지 않는다. 그러다 어느 순간 고소한 향이 올라오고, 볶는 참깨가 가볍게 흩어지고, 색이 노릇노릇해지며, 몇 개를 엄지와 검지 사이에 넣고 비벼서 바스러지면 바로 불을 꺼야 한다. 아주 짧은 그 순간을 넘어서면 타 버리고 맛도 달라진다. 내가 나무 주걱으로 볶고, 엄마는 눈으로 볶는다. 향과 색을 보고 멈출 시간을 알려주셨다. 한 달쯤 먹을 참깨 한 솥이 볶아졌다. 따듯한 참깨 맛을 보니 참말 고소하다. 재미있다!
내가 사 온 엿기름은 엄마를 갈등하게 했다. 난데없는 엿기름을 보시고는 ‘뭘 해, 귀찮게.’ 하셨는데 저녁 시간쯤에 툭 말씀하셨다.
“식혜 한다고?”
“할까, 엄마?”
“그럼, 밥 한 컵 따로 해야지.”
“넹넹~. 좋아요~. 하하하.”
엿기름 물부터 만들었다. 엿기름에 물을 넣고 주물주물 전분기를 빼서 3~4번 걸러 물만 받는 방법이었다. 수십 년 간 엄마가 해주신 식혜를 먹었는데, 엿기름 물 내는 방법은 처음 알았다! 어디 가서 음식 강의를 들었던 걸까? 여기 스승님이 계신데.
“엄마, 내 손 좀 만져봐요. 보들보들해졌어. 엿지름 물이 피부에도 좋구만요. 하하하.”
스승님 기분을 좋게 하려고 너스레를 떨며 웃는다. 내가 기분이 좋아져서 떠는 애교이기도 하다. 밥을 지은 전기밥솥에 엿기름 물을 붓고 보온을 누른다.
“아침에 보자!”
아침에 밥솥을 열고 밥알이 떠오른 식혜를 보니 참 재미있다. 설탕을 넣고 바글바글 끓여서 맛보고, 식혀서도 맛본 뒤에 냉장고에 넣었다.
고사리나물도 배웠다. 엄마에게 배운 대로 나물을 볶은 다음에 내 방법을 추가했다. 예쁘게 볶아진 고사리에 쌀뜨물을 자작하게 부어서 한참 끓였다. 내가 고집을 부렸다. 엄마가 말려도 계속 끓였더니 고사리나물이 세로로 찢어질 만큼 부드럽게 풀어졌다. 들기름과 들깻가루가 녹아든 국물도 맛있다. 물기 많고 부드러운 고사리나물은 아빠도 좋아하셨다.
명절에 올 다른 식구들에게 고깃국을 끓여주고 싶으셨는지 썰지 않은 소고기를 한 덩이 사다 두셨길래 탕국도 배웠다. 고기만 덩어리째 먼저 푹 삶아서 식힌 다음, 익은 고기를 썰고 무를 넣어 한 번 더 끓이는 방법이었다. 그래야 이 맛이 나는구나! 고기와 무를 잘게 썰어서 한꺼번에 끓이는 소고기뭇국과 살짝 다르다. 더 맑은데 진한 맛이 난다. 재밌네.
스승님께 배워도 안 되는 게 있다. 채소 데치기! 같은 채소라도 날씨나 수확한 상태에 따라서도 다르고, 손으로 비벼 보며 감각으로 데치고, 물에 헹구어 보면서 확인해도 엄마처럼 안 된다. 가지, 머윗대, 참취, 시금치, 고추·마늘종 조림…, 고난도 기술이다. 엄마는 말씀하신다. “그냥 하는 거지.” 비법은 없다고 하신다. 배우는 법을 배워야겠다.
각자 고집도 세지만, 우리는 모두 배우는 걸 좋아하는 성향이다. 그래서 좋다. 우리는 대체 왜 배우는가? 한계를 깨닫게 하고 나아가게 한다. 나이 상관 없이, 주제 상관 없이 배우면 용기가 생긴다. 도전할 용기. 그리고 그 배움을 내가 어떻게 쓰는가를 보면 나의 사랑의 방향을 알게 된다. 배우는 건 쓸모가 많고, 새로운 재미를 만들어 낸다. 다가올 설에는 어떤 음식을 배워볼까? 아니, 어떤 놀이를 할까? 스승님 기분을 스윽 살펴보고, 천천히 상의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