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밥상
저녁 6-7시면 전화가 온다.
"어디야, 밥은."
"응, 집이에요. 아직 안 먹었지."
같은 질문과 답으로 시작하는 대화는 마무리도 비슷하다.
"오늘도 잘 주무시고, 내일 또 통화해요."
"우리는 맨날 쉬는디 뭐. 너도 잘 자고 좋은 꿈 꾸고. 잉"
"네~ 엄마. 아부지도 잘 주무셔요."
스피커폰을 켜서 전화를 건 아버지는 듣고만 있다가 내가 잊지 않았음을 표현하면 그제서 인사하신다.
"응."
5년째다. 코로나를 계기로 시골에 계신 엄마 아빠와의 거르지 않는 통화가 시작된 지.
부모님은 90년째 같은 집에 살고 있다. 두 분 다 1934년대생. 동갑 부부다. 엄마는 충청도에서 시집을 왔으니 70년째, 아버지는 태어난 전라북도 시골 현재 이 집에서 90년째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다. 이제는 거의 소멸되어 가는 심심산골이라도 담은 낮고 이웃을 다 알고 지내니 답답하지는 않았을 텐데, 코로나로 옆집마저 가지 말라고 하니 많이 답답해하셨다. 마을회관에서 종종 차려주던 밥상도 없어졌다. 겨울에는 저녁마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같이 저녁을 해결하기도 했었는데, 나름의 마을 전통이 사라졌다. 이런 소식도 전화로 전해 들었다. 80대인 부모님에게 바이러스를 옮길까 봐 찾아가지 않았다. 일 년에 두 번 정도 겨우 방문하고 그저 통화만 이어졌다.
다행히 두 분이 함께 계셨고, 계속 농사를 지으셨고, 장독대에 장이 있고, 5분 거리에 작은 농협 하나로마트도 있고, 철마다 나는 채소로 김치 서너 가지는 늘 담그셨으니 식사 걱정은 안 했다. 펜데믹이 끝나가던 2023년 여름, 5차인지 6차인지 예방주사를 맞고 자가 검사도 하고 기차 타고 마스크를 한 번도 벗지 않은 채 집에 도착해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냉장고 색깔처럼 내 머릿속도 텅 비듯이 하얘졌다.
'응? 아무것도 없네?'
더 놀란 건 엄마 얼굴이었다. 어금니는 빠졌지만 앞니는 있었는데 그 사이 앞니 서너 개만 남고 입은 홀쭉해져 있었다. 그림책에서 보던 전형적인 할머니 얼굴이 되어 있었다.
'우리 엄마 88세 할머니지.'
엄마도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않아서 나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엄마 밥상을 걱정했다. 쌀과 김장김치와, 철마다 거의 모든 채소를 실어다가 먹던 막내딸이 엄마 냉장고를 처음 고민했다.
엄마의 밥상에는 고기를 올릴 수가 없었다. 10년 전쯤부터 고기 알레르기가 생겼기 때문이다. 처음엔 자주 먹는 돼지고기였다. 김치찌개를 드시고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토하고 급체한 사람처럼 복통에 괴로워했다. 원인이 돼지고기인지 모른 채 119구급차를 불러 병원 응급실로 가야 했다. 보건소밖에 없는 동네인데 엄마는 저녁식사 후 주무시다가 12시가 넘은 새벽에 통증이 갑자기 왔고 토하느라 약을 먹을 수도 없으니 구급차만 기다려야 했다. 시골에서 구급차가 20분 만에 도착하는 건 무척 빨리 오는 것이었지만, 두 시간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이런 일이 몇 번 더 이어졌다. 그다음은 소고기였다. 그래서 붉은 고기는 끊었고, 닭과 오리가 올랐다. 그런데 냉장고가 비던 그 무렵 마늘만 넣고 끓여서 국물이 맑기까지 한 순한 삼계탕을 드시고 또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두드러기는 무서웠다. 점점이 올라오는 게 아니라 온몸을 덮었다. 신체 내부에서 피부처럼 부어오르면 호흡 곤란이 올 수 있다고 하니 고기를 끊는 건 고민사항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 되었다.
이제 남은 건 생선이었다. 그런데 우리 식구 모두 생선이 익숙한 음식이 아니다. 제사 때나 보던 조기, 가끔 자반고등어, 겨울에 오징어뭇국, 김장할 때 쓰던 황석어젓갈 속 생선 정도가 익숙했다. 더 큰 난관은 음식의 종류에 있지 않았다. 바로 나에게 있었다. 나는 음식을 할 줄 모르는 막내딸이다.
희망도 조금 있었다. 막내딸은 어린이책을 만드는 일을 하는데, 어디에 소속되어 있지 않아 틈을 내서 집에 올 수 있었다. 그리고 운명처럼 그때 음식책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 이론적인 음식 공부를 하고 있었고, 원고 속 음식은 레시피 따라 만들어 보기도 했다. 공부도 하고 실습도 할 수 있는 '아동 요리 지도자' 과정을 수강하며 자격증도 땄다. '할 수 있겠지?' 나 자신이 못 미더웠지만 2주에 한 번씩 집에 내려가 냉장고 채우기 해 보자, 하고 계획을 세웠다. 이 기록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조리법이나 영양 등은 내세울 게 없다. 엄마도 나도 비법이라곤 없다. 나에겐 엄마 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지만, 엄마는 요리를 즐기는 사람도 아니었고 스스로도 손맛이 별로라고 말한다. 딸이 책으로 배운 솜씨가 좋을 리도 만무하고. 이 순간의 음식에 대해서만 쓰기로 했다. 자가용이 없어서 기차로 이동한다. 새벽 첫 차를 타려고 4시에 일어난다. 시내버스를 타고 영등포역에서 5시 55분 무궁화호를 타고, 논산에 내려서 버스를 타면 40분 거리에 있는 집에 오전 10시에 도착할 수 있다. 부모님과 세끼, 많을 땐 여섯 끼를 차려 먹으며 냉장고를 채우고, 올라오는 기차에서 메모창으로 기록한 글을 모았다.
부모님의 밥에 대한 시간과 태도를 공유하고 싶다. 나는 왜 점점 더 평범하고 익숙한 음식을 차리게 되었는지, 음식 가짓수보다 먹는 시간이 더 중요한지, 밥상에서 우리가 얼마나 수용하고 저항하는지, 독립과 돌봄은 밥상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같은 떠오르는 생각들을 기록하고 싶어졌다. 90 엄마와 50 딸이 서로 돌보는 노노 돌봄의 한 사례로 이런 음식 기록도 한 켠 필요하지 않을까. 스스로 돌보는 힘은 밥상에 있었다. 지나온 밥상도 다가올 밥상도 걱정하지 않고, 그날 하루하루 순간에 집중하며 음식을 하고 올라오는 길은 평화로웠다. 지극히 사적이고 평범한 밥상에 대한 기록이며, 이제 어떤 시공간에서도 다시 만날 수 없는 특별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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