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방해조차 없었던 지난 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막에서 꿀처럼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에어컨 없는 텐트여서 더위에 잠들기가 좀 힘들지 않을까 조금 염려를 했지만, 날이 저문 사막은 더위를 전혀 느낄 수 없었고 그 흔한 모기조차 없었다.
아직 어둠이 다 가시지 않은 이른 시간에 잠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일출을 보기 위해서였다.
사실 너무나 곤하게 깊은 잠에 빠져 있던 나는 텐트 바깥에서 들려온 일행의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그 시간에 눈을 뜨지는 못했을 것이다. 지난 밤, 일출을 보고 싶어서 대략적인 일출 예정시간을 확인하고 알람을 맞춰 두었었지만 성급한 해가 내 알람시간보다 30분쯤이나 먼저 얼굴을 드러낸 탓도 있었다.
잠자리에서 입었던 차림 그대로 카메라만 들고 떠오르는 해를 보러 단걸음에 달려나갔다.
지평선에서 손가락 마디 하나쯤 사이를 둔 하늘에 동그란 해가 보인다. 일출은 생각보다 이글거리지 않고 차분하다. 아침을 맞느라 분주한 새들의 지저귐만이 텅 빈 사막을 채우고 뭐라도 얻어 먹을 게 있을까 싶어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야생 닭(?)만이 나와 함께 차분한 사막의 새벽을 헤집고 있었다.
해가 조금씩 지평선과 멀어지면서 사방이 서서히 밝아온다.
그리고 뜻 밖에도 이 곳의 주인장 가족을 만났다.
이른 아침의 촉촉하고 서늘한 공기 속에서 맛 좋은 풀과 나뭇잎으로 건강한 아침식사를 하러 나온 가젤 가족!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다큐멘터리 필름 속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장면을 50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맨눈으로 목격을 한다는 건 참 감동스러운 일이다.
아라비아 사막의 이른 아침 한가운데에서 사랑스러운 경외감에 젖어 마냥 행복해하는 나를 누군가가 조용히 부른다. 뒤를 돌아보니 직원이 모닝 커피를 내민다. 정말 이 순간 꼭 필요한 게 뭔지를 아는... 센스가 만점이다.
따뜻한 커피를 들고 부드러운 모래 위에 주저앉았다.
신기한 사막의 아침 풍경을 카메라에 담느라 이리저리 쏘다니며 분주하게 움직이던 나에게 가만히 이 시간을 감상할 여유를 주고 싶었다. 해는 점점 내 정수리를 향해 떠오르고 있고, 한번씩 얕은 모래가 날릴 만큼씩의 보드라운 바람이 분다. 새들은 여전히 바쁘게 지저귀다 푸드덕 하며 힘찻 날갯짓과 함께 하늘을 날아다닌다. 사이 좋게 풀을 뜯어먹던 가젤 가족은 이내 어디론가로 달려갔고 내 주변을 계속 얼씬거리던 야생 닭도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커피를 한모금씩 홀짝이면서 천천히 천천히 내 앞에 펼쳐진 풍경을 눈에 담았다. 사진으로도 찍을 수 없는 이 아침의 신선함을 마음에 차곡차곡 담아서 이후 언제라도 보고싶어질 때면 한 장, 한 장 꺼내볼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이른 아침 사막의 풍경을 한껏 즐긴 후엔 직원들이 마련해 준 아침식사를 했다. 전날 아랍식 저녁식사를 했던 바로 그 자리에서 이번엔 아메리칸 스타일의 간단한 아침이 차려졌다. 간단하다고는 하지만 그릴에서 갓 구워낸 정말로 맛있는 소제지와 구운 토마토, 스크렘블 에그, 신선한 우유와 쥬스, 그리고 빵과 시리얼 등등... 부족한 것이 전혀 없는 식사였다.
식사를 마친 후에 하룻밤이었지만 너무 깊게 정이 들어버린 캠프와 아쉬운 작별을 나누었다.
다시 또 이 곳에 올 수 있기를 바라보면서...
아침의 햇살을 받아 차창 밖으로 보이는 모래언덕은 더욱 붉게 빛나고 있었다. 어떻게 저런 빛깔을 낼 수 있는 것일까... 자연의 색채감에 감탄을 하며 달리던 중 모래언덕 위에 길다란 뿔을 달고 있는 어떤 녀석이 어딘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모습이 보였다. 얼핏... 일출 무렵 보았던 가젤인가 싶었다.
드라이버가 오릭스라고 알려준다. 노란색 바탕에 검은색 줄무늬를 가진 가젤과 달리 오릭스는 몸 전체가 하얀색이고 뿔이 가젤의 것보다 더 길고 뾰족하다. 당당한 기품이 느껴지는 오릭스의 자태에 흠뻑 빠져 넋을 놓고 보고 있는데 천천히 움직이던 차가 이내 멈춘다.
맙소사! 바로 이어서 오릭스 대가족이 등장했다. 차 안에서 창밖을 통해서만 열심히 사진을 찍어대는 나를 위해 드라이버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차에서 내리도록 허락을 한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동물들이 놀라기도 하고, 그래서 공격을 당할 수도 있으므로 주의를 당부하는 말과 함께...
이게 정말 현실일까?
저 신기하게 생긴 녀석들과 불과 열걸음 정도의 거리만을 둔 채로 아무런 장애물 없이 마주할 수 있다니... 참 비현실적인 순간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오릭스 대가족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다시 차에 올라서 얼마를 달렸을까, 이번엔 드라이버가 반대편 창을 보라고 손짓한다.
가젤이다. 어쩌면 아침에 보았던 그 가족일런지도 모르겠다. 우리와 눈이 마추친 녀석들은 겁쟁이처럼 종종거리며 달아나고 있었다. 평화로운 시간에 불편을 끼친 것 같아 살짝 미안하면서도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눈을 뗄 수가 없다.
귀여운 가젤 가족과도 멀어져서 차는 또 오래지 않은 시간을 달렸고, 곧 드문드문 나무와 풀이 있는 지대로 접어들었다.
나무가 만드는 그늘과 나무가 자랄 만큼의 수분이 확보된 공간일테니... 동물들의 휴식처 내지는 보금자리 정도가 되는 것 같다. 많은 무리의 오릭스떼를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었다.
이 곳은 사실 오버나이트 사파리를 운영하는 현지 업체가 독점적인 사용권을 가지고 있는 일종의 반 국유지인데 이 곳의 환경을 최대한 자연 그대로 청정하게 유지, 관리하는 책임도 함께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적당한 장소에 동물들이 먹을 수 있도록 먹이인 나뭇잎과 물을 놓아두기도 하는데 바로 여기가 그런 포인트다.
그런데... 서울에서 대전까지의 거리 정도가 이 업체가 관리하는 사막의 지름에 해당한다고 하니, 그 크기가 상당하다.
조금 부지런한 녀석들은 그늘도 마다 않고 풀과 물이 있는 곳에서 열심히 먹이활동 중이고,
게으른 녀석들은 먹는 일도 마다하고 나무 그늘 아래에서 마냥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우리를 내내 안내해 준 가이드이자 드라이버가 땅 위의 무언가를 가리킨다.
설명을 들어보니 죽은 오릭스의 머리뼈 일부분이다. 그의 추측에 의하면 이 머리뼈의 주인공은 수컷이고 암컷을 차지하려는 싸움에서 진 패자일 거라고 한다. 이들은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서 싸울 때에는 서로의 머리와 뿔을 부딪혀 싸우는데 뿔 한쪽이 부러져 있는 것으로 보아 그런 싸움이 있었을 거라고 한다.
평화로워 보이기만 했던 조용한 사막의 풍경이 갑자기 치열한 삶의 전쟁터처럼 느껴졌다. 사랑을 위해 목숨도 버릴 각오를 하지 않으면 살아낼 수 없는 곳이라니...
짧은 시간이었지만 사막의 아침은 내게 참 많은 것을 보여주었다.
고요하게 떠오르는 아침 해와 새들의 맑은 노랫소리와 잔잔한 바람과 선선한 공기, 그리고 이어진 강렬한 태양의 힘과 야생동물들의 순한 얼굴과 그 뒷면에 숨겨진 치열함까지...
살면서 꼭 한 번은 사막에서 잠들고 사막에서 눈을 떠 볼 일이다.
거창하게 화려한 리조트여도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더욱 좋을 것 같다.
그 어느 곳에서도 느낄 수 없는 평온함과 만족감이 이유 없이 문득문득 가슴을 적셔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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