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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나트립 Feb 27. 2018

글렌코 계곡의 아침을 걷다

[영국여행]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여행




스코틀랜드를 여행하는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에게 하이랜드는 에든버러에서 출발하는 며칠짜리 (하이랜드) 로컬투어 여행지이고, 그 중 글렌코(Gleoncoe)는 차를 타고 지나가며 잠깐 경치를 즐기는 구간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스코틀랜드 여행에 있어서 핵심 중의 핵심 여행지였다.어쩌면 스코틀랜드 뿐 아니라 영국여행 전체를 통틀어도 이 곳이 가장 중요했을 수도 있다. 그 만큼 내게는 설렘과 기대가 한가득~ 한가득~ 한 곳, 글렌코(Glencoe)를 걸었다.





다음날의 원할한 일정을 위해서 숙소를 포트 윌리엄(Fort William)으로 잡은 탓에 버스를 타고 약 1시간 30분을 달려 글렌코 비지터 센터에 도착했다. 인근에 도보로 이동이 가능한 글렌코 마을도 있고, 글렌코 비지터 센터 캠핑 카라반에서 머물 수도 있었겠지만 내일은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높다는 벤 네비스(Ben Nevis) 산에 오를 계획이었기 때문에 그 곳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인 포트 윌리엄에서 묵어야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 것이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참을만 했고 글렌코를 향한 내 마음이 워낙 들떠서 잠이 저절로 쉬이 깨진 것도 한 몫했다.

아직 아침 이슬도 채 가시지 않아 공기가 수분을 많이 머금고 있었지만 하늘 만큼은 청명했다.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변덕을 부리는 것으로 하이랜드의 날씨는 유명하지만 이번 여행기간 내내 날씨 운이 좋았던 만큼 오늘도 부디 좋은 날씨가 계속 되기를 빌어본다.
글렌코 비지터 센터를 출발한 나는 우선은 찻길을 따라 걸었다. 숲길도 있긴 했지만 좀 더 굴곡이 있기도 했고, 되돌아가는 마지막 버스 시간까지 얼추 계산해보니 목적지까지는 가장 가까운 직선코스를 따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오늘의 최종 목적지는 Three sisters Peak 가 보이는 뷰 포인트.
마음 같아서는 Three sisters Peak 를 직접 오르고 싶었지만지만, 워낙 지형적인 특성이 독특한 곳이라서 등산화도 아니고, 등산부츠를 신지 않으면 감히 올라갈 생각조차 말아야 한다는 사전 정보를 접한 터라 아주 쉽게 마음을 접었었다. 안전을 담보하지 않은 등산은 목숨을 걸고 장난치는 일이라는 걸 잘 알기에...(오래 살고 싶어서ㅠㅠ) 더구나 이 곳 스코틀랜드의 하이랜드 날씨는 그 중에서도 종 잡을 수 없는 것으로 유명한지라 더더욱 용기 따위 집어 넣는 일은 너무 쉬워서 그냥 그 봉우리를 바라볼 수 있는 뷰 포인트까지만 걷기로 했다.

양 옆으로 펼쳐진 초원과 우뚝우뚝한 산봉우리들에게 처음부터 기세를 제압 당했지만 내 마음은 한 없이 너그러워져 있어서 마냥 흥그럽기만 했다.

초원 위에 양 떼들이 흩어져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데, 양들을 지키는 목동은 보이질 않는다. 완전한 방목이라는 것이 이런 건가 싶다.

가까이 다가가 카메라를 들이대니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거슬렸는지 내 쪽으로 시선을 보내는 녀석.
염소와 양의 중간쯤으로 생긴 이 녀석이 한참을 바라본다. 양들은 원래 겁이 많아서 낯선 사람을 보기만 해도 줄행랑을 친다는데, 이 녀석은 호기심 대마왕처럼 나랑 내내 눈싸움이라도 할 기세였다. 결국 먼저 돌아선 내가 졌다. ^^

도로 중간중간 쯤엔 뜬금없는 주차장이 나오곤 한다.
대단한 뷰포인트에서는 당연하고 볼 것 별로 없는 어느 쯤에서도 작은 주차장들이 있다.
그런데 딱 주차장만 있다. 휴게소도, 식당도, 매점도, 심지어 화장실도 없이 그냥 딱 주차장만!
워낙 인가도 뭣도 없는 구간이 한참 지속되는 탓에 졸음운전이라도 할까봐 만들어 놓은 것인가 싶은데, 저런 간이 주차장을 보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이런 경치를 두고 어떻게 잠이 올 수 있지? 였고,
두번째는 우리나라 같았으면 이 일대가 벌써 ㅇㅇ가든, XX산채비빔밥 등등의 간판으로 도배가 되어 있을텐데...
하는 거였다.
우리나라도 개발이라는 이름의 훼손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를 지키는 마인드를 장착했으면 하는 강한 아쉬움도...




낙석주의 표지판과 함께 천천히 달리라는 길바닥의 글씨...

10마일 앞에 낙석에 주의하라는 표지판이 있길래 그냥 그런가보다 했더니...

ㅎㅎㅎ
정말 엄청난 바위가 곧 길 쪽으로 떨어질 것만 같은 포즈로 떡 하니 서 있다. 물론 저 바위가 떨어질 거라는 말은 아니겠지만, 그냥 대충 얹어져 있는 게 아니라 바닥에 깊이 뿌리가 박힌 것이겠지만, 이렇게까지 있는 그대로를 지키는 건가? 싶어 좀 과하다 싶기도 하고 그냥 재미있다 싶기도 했다.
어쨌든 단조롭지 않은 경치를 이루어내는 데는 꽤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얼마간을 걷다 보니 An Torr Forest Walk 구간 표지가 보인다.

An Torr 트래킹 코스는 위 사진의 왼쪽 하단에 보이는 입구로 들어서서 걷는 일종의 산책코스다.
걷다보면 깊은 숲과 작은 하천들이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주겠지.
내가 가려는 Three sisters Peak 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었으니 이 트래킹 코스도 탐은 나지만 패스~

그냥... 길을 걷다가 뒤 돌아서, 옆으로 눈길을 돌려서 카메라를 들면 앵글이 잡힌다.
멋진 사진을 찍겠다고 대단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더라도 그냥 찍기만 하면 되는 이런 기막힌 길이라니...

도로 옆을 조금 벗어나 안쪽으로 들어오니 풀숲에 난 작은 길이 어여쁘다.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글렌코 비지터 센터에서 이 곳까지 1시간이 넘게 걷는 동안 나처럼 걸어서 이 길을 지나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만나지 못했는데... 차 없이는 동네에서 동네로 마실을 가는 것조차 불가능한 이런 곳에서 이 작은 풀숲을 걸어가는 사람이 과연 있긴 할까 싶다.

참 맑은 스코틀랜드의 계곡!
물 흐르는 소리가 어찌나 좋던지, 보지 않고 소리만 들어도 이 물은 구슬처럼 맑겠구나 하는 걸 저절로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대략 1시간 조금 넘게 걸었을 때쯤 도로에서 안쪽으로 접어드는 돌담길이 나오고, 이 돌담의 끝에는 작은 하천을 가로지르는 다리 너머로 안 쪽에 숨겨진 1차 목적지가 있다.

그림처럼 예쁜 집.
Achnambeithach Cottage.

발음하기도 어려운 Avhtriochton 호수(Loch Avhtriochton)가 감싸고 있고, Three sisters Peak 끝 봉우리쯤이 뒷산으로 버티고 있는 이 멋진 공간에 들어앉은 저 집은 글렌코 계곡의 명물이기도 하다. 역시나 이 곳도 내셔널 트러스트 스코틀랜드가 관리하고 있다.

B&B로 운영하는 집이어서 글렌코에서 숙박을 하려는 사람이라면 꼭 추천하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해지고 나면 사위가 죽은 듯이 캄캄할테니 무척 심심할테지만, 나처럼 심심한 시간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정말 안성맞춤인 숙소다.
게다가 이런 곳에서 아침 해가 뜨고 노을이 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1박의 가치는 충분하리라.
이런 곳에 저런 게스트하우스를 지을 발상을 하다니... 정말 멋지다... 하면서,
또 우리나라랑 비교질을 했다.
우리나라였다면... 저렇게 저 집 하나만 오롯이 엽서같은 이 경치에 머무르게 하지 않았겠지, 옆에도 앞에도 또 그 옆과 그 앞에까지도 온통 팬션, 모텔, 리조트 등등등... 산보다 지붕이 더 많이 보였을테지... 생각하니 조금 속상하다...

겨울에 폭설이라도 내리면 완전히 갇혀버릴 수도 있겠다 싶긴 한데, 아마도 그럴 때즘엔 이 곳은 비워둘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집도 풍경도 참 예쁘긴 하다.
이런 곳에서 요즘처럼 꽃피는 계절에 딱 한달만 살아봤으면~~~

Achnambeithach Cottage 앞,  Avhtriochton 호숫가 주변에도 역시나 풀을 뜯는 양 한떼가 한가롭다. 세상 걱정 하나 없이, 하루종일 풀 뜯어먹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일도 없을 것 같은 녀석들...

아무리 집이 예뻐도 그래도 남의 집인데 너무 오래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것 같은 마음에 누가 뭐라 하지도 않는데 공연히 찔려서 서둘러 발길을 되돌려 나왔다.
그러면서도 주변 풍경에 마음과 눈을 빼앗기는 건 너무 당연한 일!

Achnambeithach Cottage에서 정면으로 바라다 보이는 곳도 역시 산이다. 뒤에도 산이 있고 앞에도 산이 있다. 차들이 쌩쌩 내달리는 저 길이 없었다면 이 곳은 정말 첩첩산중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곳이었겠다.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를 흐르는 계곡물만이 바깥 세상을 만날 수 있었던 시절도 있겠지. 지금 내 눈에는 더 없이 아름답지만, 오래 전 누군가에겐 참 갑갑한 곳이었을 수도 있었겠다.


시냇물을 건너서 Achnambeithach Cottage를 다시 바라보았다.
집 뒷편 봉우리 사이로 쏟아지는 아침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시냇물이 주변 경치에 한층 빛을 더한다.


다시 길은 평탄하다.
풀숲이 바람에 일렁이고 양 옆으로는 까마득한 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줄지어 서 있다.


작은 호수는 산과 들판과 또 작은 집을 더욱 잘 어울리게 해준다.
역시 다시 돌아봐도 Achnambeithach Cottage가 서 있는 자리는 더 할 수 없이 안온하다. 마치 아가가 엄마의 품에 쏙 안긴 것 같다. 어쩜 저런 자리에 집을 지을 생각을 다 했을까... 참 근사하다.


길은 다시 직선으로 향했다가 구부러졌다가를 반복하며 앞으로 뻗어 있고, 그 길을 옆으로 두고 나 역시도 굽어들기도 하고 직진을 하기도 하며 걸었다.
마주치는 광경은 매순간이 감탄스럽다.

그렇게 걷다가 아주 가끔 풀, 나무, 자동차 외에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겨우 반나절 정도 혼자 길을 걸었을 뿐인데 그 동안에도 외로웠던 걸까. 사람을 보니 반가운 마음이 든다.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께서 얼마나 렌즈에 집중을 하시는지 내가 제법 가까이 다가가서 자신의 뒷모습을 향해 셔터질을 하는데도 꼼짝을 안하신다. 인기척을 못들으셨거나 들었어도 상관을 안하시는 것이거나... 어떤 쪽이어도 조금 서운하다. 눈이라도 마주치면서 미소라도 주고 받고 싶었는데...

그런가 하면, 찻길에서도 자동차가 아닌 바이크를 타는 사람을 보면 조금 반갑다. 쇳덩어리 네모상자가 아닌 사람을 볼 수 있어서 그랬었나 보다.

그렇게 혼자 노는 걸 좋아라 하면서도... 역시나 사람에게 사람은 항상 그리운 존재인가 보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보니 어느새 슬며시 배가 고프다. 흠칫 놀라 시계를 보니 벌써 낮 1시가 되어가려 한다. 아침부터 내도록 걸었으니 배가 고픈 것도 당연하다.


카페도, 레스토랑도 없는 이 곳에서 허기를 면하려면 당연한 얘기지만 도시락을 먹는 수 밖에 없다.
적당히 밥 먹을 자리를 찾아보는데 온통 사방이 풀밭이라 그냥 아무데고 앉으면 그만일 듯 하다.

무심한 양들이 나에게 살짝 호기심을 보이는 그 앞에 내가 싸온 도시락을 펼쳤다.
도시락 메뉴는......


바로!!!!!  신라면 큰사발!!!!!!!!!!!!!!!!
어제 포트 윌리엄 기차역 앞에 있는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발견한 한국 컵라면 되신다.
세상에~~ 포트 윌리엄에도 한국 여행객이 많이 오는 건지, 내가 머물렀던 그 때에는 한 명도 마주치지 못했는데...
아무튼, 신이 나서 쇼핑질을 했더랬다. 나름 과소비까지 했는데 품목은 다양하다. 끓여먹는 라면 두 개와, 컵라면 두 개, 그리고 쵸코파이와 새우깡까지...
그렇게 전날 저녁에 의기양양하게 득템한 컵라면을 보온병에 담긴 뜨거운 물과 함께 담아 베낭에 넣어 온 나는 스코틀랜드의 글렌코 들녘 한복판에서 뿌듯하게 흡입하는 행복을 맛보았다.


스코틀랜드의 바람을 맞으며 목으로 넘기는 얼큰한 라면 국물 맛이란 말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면발 하나, 국물 한방울조차 남기지 않고 모조리 싹~~ 해치웠다.
오랜만에 맛보는 한국음식 맛에 뭐 하나 남길 수도 없긴 했지만, 쓰레기통 비슷한 것도 없는 이 곳에 아무것도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맑은 들판을 더럽히고 싶지 않아서 음식물 쓰레기가 될 만한 것은 몽땅 내가 먹어치우고, 마른 쓰레기로 만들어 모두 다시 가방에 넣었다. 나는 자연을 사랑하는 좋은 사람이니까... ^^  


대용량 컵라면에 귤까지 하나 까 먹고, 커피까지 타서 마신 후에 든든해진 배를 두드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사이 들판의 색이 바뀌어 있다. 점심을 먹으려고 자리에 앉았던 그 때보다 한층 짙어진 햇빛 때문이다.



Three sisters Peak의 세 봉우리가 한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제 곧 뷰 포인트가 나올 모양이다.
햇빛을 받아 진한 황금색으로 변해가는 풀숲이 눈이 부시다. 고맙게도 하늘은 여전히 맑다.

조금 피로했을 다리도 쉬고, 허기진 배도 채웠으니 다시 힘차게 걸어야 할 시간이다.


(겉으로만) 무뚝뚝하고 선이 굵은 스코틀랜드 사람들과 글렌코는 참 많이 닮아 있다.
아기자기한 경치보다는 웅장하고 남성적이어서 잔재미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깊이 빠져들게 되는 글렌코는 내 기대보다 훨씬 더 멋진 곳이었다.
그렇게 멋진 글렌코와 함께 지낸 아침시간이 너무나 빠르게 흘러가 버렸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오후의 시간도 아낌없이 보내야 한다.
생각하면 다시 또 아쉬움만 남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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