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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울음뱅이 Jun 03. 2019

<기생충>, 별 0개 아니면 5개

봉준호가 미워졌다.

*영화 <기생충>을 안 본 분들은 읽지 마세요. 워이워이 워이워이 워이워이 워이워이 워이워이 워이워이 워이워이 워이워이 워이워이 워이워이 (저는 영화를 보기 전 축구 기사 댓글을 보다가 '언제 누가 누구를 어디서 어떻게 한다'는 스포를 당했는데, 그래도 영화를 보는 데 큰 문제는 없었어요. 영화 중반도 되기 전에 '아~ 저래서 그러는구나' 납득이 되더라고요.)



0. 영화가 어느 시점을 지날 때쯤 속으로 되뇌었다. '봉준호 이 개새끼...'  


1. 영화의 초반 10분은 다소 의아했다. 지금껏 봐온 봉준호의 그 어떤 영화보다 어색한 도입부였다. 심지어 일어서다 찬장에 머리를 부딪히는 송강호의 연기마저도. 꽁트야 뭐야.. 그리고 반지하/와이파이/곱등이/피자시대 등 '가난'을 상징하는 설정들은 지나치게 작위적이라고 느껴졌다. 쉽게 말해 '에이, 오바다'라고 생각한 거다. 서울에서 이사를 13번 했지만 반지하는 안 살았다 이거지. 와이파이는 터지는 원룸에 산다 이거지. 바퀴벌레는 봤어도 곱등이는 못 봤다 이거지. 나도 모르게 나와 반지하에 사는 저 가족 사이에 선을 긋고 있는 것 같아, 그런 내가 잠시 어이없고 징그러웠다. '요즘 좀 먹고 살 만한가 보다?'


2. 송강호네 가족들이 차례로 취업을 하면서 이야기에 몰입이 되기 시작했다.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배우의 연기가 훌륭했지만 이정은, 조여정, 박소담이 특히 좋았다. 송강호가 커피 잔 든 이선균을 태우고 첫 주행을 하는 장면에서 가장 많이 웃었다.



3. 소파 위의 두 사람과 테이블 밑의 세 사람. 두 사람은 악의 없는 몇 마디로 세 사람을 모욕했고, 모욕당한 세 사람은 눈 감고 숨소리도 내지 못했다. 테이블 밑에 내가 누워 있는 것처럼 수치스러웠다. '제일 좋아하는 영화감독'이었던 봉준호에게 이때쯤부터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 사람은 왜 이런 영화를 만든 거지?'


4. 오해하지 말기를. 영화가 재미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나는 이 수치스러운 이야기에 몰입해버렸고, 웃고 긴장하고 슬퍼하며 131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몰랐다. 찝찝하고 불편해서 싫다는 얘기도 아니다. <살인의 추억>이고, <마더>고, 지금껏 봉준호가 만든 영화는 대부분 다 찝찝한데 뭘.


5. '봉준호의 악취미'에 화가 났다. 아무에게도 자랑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나조차 잊고 있던 들키고 싶지 않은 감정을 왜 굳이 영화로 만들어 세상 사람들이 알게 하는 거지? 그것도 이렇게 정교하고 집요하게. 몇 번이고 스스로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게 하면서. 코를 킁킁거리다 못해 감싸쥐는 박 사장을 보여주면서.



6. 영화 <내부자들>이 흥행할 당시 주요 인물들이 더럽게 노는 장면을 굳이 저렇게까지 직접적으로 보여줘야 하느냐는 관객들의 비판이 있었다. 그리고 '저게 현실이니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뿐'이라는 반박도 나왔다. 이러한 '자극 vs 현실' 논쟁은 사실 <내부자들>뿐 아니라 많은 한국영화에서 반복되어왔는데, 나는 보통 '불편하다'는 비판에 공감하면서도 자극적인 리얼리티를 감독의 '다소 거친 화법'으로 인정해버렸다. 중간 지대에 서서, 아닌 척 리얼리티를 즐긴 것이다. 그것이 섹스든 폭력이든. 그러나 <기생충>에서 노골적으로 재현된 가난의 리얼리티, 냄새의 리얼리티는 즐길 수 없었다. 굳이 저렇게까지 직접적으로 보여줘야 하느냐며 분노했다. 나의 '선택적 분노'는 참 인간적이고, 참 징그럽다.


7. 비현실적인 설정과 스토리로 지극히 현실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솜씨.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되새기게 만드는 '상징적인' 장면과 대사들. 평론가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네. 황금종려상 탈 만하네. 나는 이제 봉준호가 끔찍하지만.


8. 더 끔찍한 사실 하나. 누군가 트위터에 이런 뉘앙스의 글을 올렸다. "재밌게 보다가 마지막에 송강호가 갑자기 이선균을 죽여서 '뭐지?' 싶었다. 왜 그런 거지?" 사람들이 '판사님 스포 주의해 주세요'라고 댓글을 남겼기에 이름을 검색해보니 고위급 법조인이었다. 스포 지적 때문인지 지금은 글을 수정했던데, 기택이 느꼈을 모멸감을 법조인이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일견 당연하면서도 소름이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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