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살고 싶었습니다.
지금 자살을 생각하고 있습니까?
22살 겨울이었다. 우울증이 심해져 참다못해 병원에 갔다. 그 긴긴 겨울을 도무지 혼자서 견딜 자신이 없었다. 그 시기에 나는 늘 거실 베란다를 바라보며 떨어지는 상상을 했고, 목을 매는 상상을 하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수도 없이 했다. 그게 무수히 반복되자 어느 날부터는 죽음이 두렵지 않게 되었다. 그만한 통증이 동반되더라도 참아낼 용기가 생겼던 것 같다. 아니면 허황된 꿈이었거나. 나는 날을 꼽고 있었다. 죽기 적당한 날, 남들한테 피해를 최소한으로 주면서 죽을 수 있는 날. 나는 죽을 각오가 되었음에도 동시에 남들을 생각했다. 떠날 내가 아닌 오로지 남는 사람들만을 생각했다. 결국 나는 죽지 못했다. 그러므로 여전히 살아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줄곧 우울함을 달고 살았다. 대체 언제부터 그랬느냐고 묻는다면 그게 정확히 언제라고 답할 수 없을 만큼 아주 오래된 나의 동반자였다. 어려서부터 목격한 폭력의 상흔은 늘 그렇듯 불안의 형태로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들었다. 머지않아 제가 손님인 줄 새까맣게 잊은 채 마음의 안주인이 되기 위해 갖은 행패를 부렸는데 그게 바로 무기력이었다. 증세가 극심해지기 시작한 건 대학 입학에서부터였다. 수능이 끝났다. 열과 성을 다해 공부를 한 적은 없지만 열과 성을 다해 고3 수험생의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독서실에 틀어박혀 공부 대신 조용히 책을 읽는 걸 좋아했던 나였다. 그렇더라도 긴긴 수험생활과 고3의 명분 아래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란 대한민국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었다.
사는 동안 간호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나에게 수능성적에 맞춰 전문대 간호과에 진학하라는 부모의 강요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성적에 맞춰 입학하게 되었다. 그곳은 말 그대로 고등학교의 연장선이었다. 마치 간호사를 배출하기 위해 세워진 교육소처럼 월요일에서부터 금요일까지 고등학생만큼이나 빡빡한 시간표가 날 숨 막히게 만들었다. 2학년에 들어서부터 여전히 뻑뻑한 시간표와 함께 실습을 돌기 시작했다. 멋모르던 시기가 지나자 병원 실습이 미쳐버릴 것처럼 싫은 시기가 찾아왔다. 2주간의 실습을 할 때면 정말 이대로 세상이 끝났으면 싶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겨우겨우 살아내어 겨울방학에 도달했다. 겨울방학이 되기 몇 주 전부터 나는 동기 언니의 추천으로 교내에서 지원하는 심리상담을 등록했다. 결과적으로 그 심리상담은 날 지옥 끝으로 내몰았다.
방학에 들어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생활이 무너져 내렸다. 밤낮이 순식간에 뒤바뀌었고, 모든 게 귀찮아졌다. 하루 종일 누워있거나 밤에 겨우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아 무의미한 시간을 보냈다. 식욕은 바닥이었다. 몰골이 흉하게 일그러지는 것 또한 순식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자리를 펴고 앉아있던 내가 미칠 듯한 불안에 숨도 못 쉬고 바닥을 기었다. 어디서 기인한지도 모르는 그 불안이 날 잡아먹을 것 같아 뒤척거리고 소리 없이 핏대를 세우며 기침을 토하고 아우성을 쳤지만 누구도 내 방문을 열고 들어오진 않았다. 그 날 새벽은 참 길었다. 영원처럼 느껴질 만큼.
학교에서 진행하던 심리상담은 처음 심리상담을 받는 나에게 동아줄을 내려주었다. 이 상담이 끝나면 나는 모든 과거를 털어내고 조금은 평화롭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적잖은 희망을 가졌었다. 첫 상담이 시작됐다. 어째서 이곳을 찾아왔는지를 시작으로 나는 내 과거를 아주 거대하게 풀어냈다. 남에게 내가 왜 그토록 힘겨워하는지에 대해 처음으로 세세하게 이야기하던 순간이었다. 내 앞으로 휴지 뭉텅이가 산처럼 쌓여갔다. 그렇게 울고 싶었던 순간에는 나오지도 않던 눈물이 손쓸새 없이 터져 나왔다. 말하는 내내 마음은 너덜너덜할 만큼 찢어질 것 같았다. 고통스러운 순간이 65분간 끊임없이 이어졌다. 날 괴롭게 만드는 상담은 몇 번 더 이어졌다. 선생님의 답변은 늘 비슷했다. 내가 솔직해지면 된다는 거였다. 솔직하게 가족에게 내 상황을 털어놓고, 솔직하게 과거로부터 짊어지고 온 나의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이야기하라고. 그래, 결국 모든 게 내가 솔직하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나는 그대로 상담을 끝냈다. 상담을 끝내고 학교를 벗어나는 길, 나는 그 먹구름에 치여 죽고 싶었다. 삶이 그대로 끝났으면 바랬다. 내가 쥔 동아줄이 썩은 동아줄이었음을 깨달았다.
학교 상담을 끝내버리고 나는 그 불안에 시달리기가 두려워 결국 동네에서 조금 벗어난 병원으로 향했다. 처음 간 정신과였다. 의사 한 명과 간호사 한 명이 내 이야기를 들었다. 몇 번을 해도 지치지 않을 만큼 눈물을 쏟아냈다. 그리고 의사가 물었다. "자살을 생각하고 있나요?" 그 물음에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씻을 수 없는 수치심을 느꼈다. 상담은 그걸로 끝이었다. 배웠던 것과 달리 단도직입적인 질문을 마주하자 나는 오물을 뒤집어쓴 기분이었다. 그 물음에 그렇다 답을 하자마자 세상이 날 비웃는 것 같았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나는 그렇게 약을 처방받고 한동안 상담이라면 기피했다. 겨울 내리 받았던 상담들이 날 모욕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자살기도를 했다. 처참히 실패했다.
목에 가느다란 실선이 생겼다. 붉은 줄이 얇게 두어 개 드문드문 피부에 덧그려져 있었다. 고개를 숙이자 머리카락이 쏟아져 내려오며 목이 드러났다. 오빠가 그걸 보고 목에 뭐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게 끝이었다. 내가 원했던 건 뭐였을까. 그 당시에는 난 모든 게 다 수치스럽게만 느껴졌다. 마치 살아있는 나를 보고 이름 모를 다수가 낄낄거리며 비웃고 모욕을 하는 것처럼. 그러나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죽고 싶었다. 추운 겨울을 혼자 보낼 여유가 없었다. 그 긴긴 겨울을 동면하듯 잠들고 싶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간절하게 살고 싶었다. 밤을 지새우게 만드는 불안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고, 날 좀 먹는 우울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겨울의 우중충함과 더불어 내 눈에 보이는 세상은 회색빛 그 자체였다. 어떤 색도 입지 않은 먹구름만 잔뜩 낀 회색이었다. 어느 하루도 빠짐없이 먹구름 가득한 나날들만 이어졌다. 삶의 희망이라고는 좀처럼 보기 힘들게. 나는 그 세상을 그만두고 싶었을 뿐이었다. 애증 하는 가족을 떠나보내는 게 아니라, 가닿지 못한 세상을 등져버리는 게 아니라. 이 병마로부터 나 자신을 구해내고 싶었다. 그게 애석하게도 자살이 유일하다 믿었다. 나는 결국 떠날 내가 아닌 남을 나를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간절히 살고 싶었다. 살고 싶다고 온몸으로 날 좀 구해달라 외치고 있었다. 단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을 뿐이었다. 운이 드럽게 없었다.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 하루를 아주 바쁘게 보내는 걸 무수히 반복했다. 밤낮이 바뀌지 않도록 노력했고, 아침이 되면 세수를 하고 샤워를 했다. 저녁마다 공원으로 산책을 나섰다. 우울한 노래를 듣더라도 산책을 했다. 울고 싶을 때는 방문을 잠그고 펑펑 울어댔다. 죽고 싶다고 오빠에게 털어놓았다. 그게 날 우울에서 구원해줬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나는 여전히 우울하다. 이따금 내가 견딜 수 없을 만큼 지칠 때면 나는 항상 얼른 삶을 끝마치고 편히 쉬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가끔은 그때 내 삶을 마감하지 못한 것에 대해 사무치게 후회하는 때도 있다. 나는 언제 이 삶을 포기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여전히 한다.
사람들이 말하는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떠나는 내가 아닌 남는 그들과 나 자신을 위해 사는 것 말이다. 그러므로 나한테 있어 그 문장은 다시 정정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 같다. 죽지 못해 산다. 그게 아니라 죽기 위해 산다가 더 어울릴 것 같다. 나는 오늘도 그렇게 살아간다. 나의 아름다운 죽음 앞에 내 삶은 그러했노라고 오늘도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 양귀자 선생님의 소설 <모순>에는 이런 문구가 나온다.
"나는 나인 것이다. 모든 인간이 똑같이 살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똑같이 살지 않기 위해 억지로 발버둥 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나를 학대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더 이상 나를 학대하지 않기로 했다.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