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이름의 폭력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새벽 6시. 안방과 마주한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라 일어나 대충 얼굴을 쓸어내리고 방문을 열었다. 뜨거운 안방과 달리 차디찬 부엌에 할머니가 앉아 제사를 준비한다. 방에서 나온 날 보고 이제야 일어났냐는 듯이 방석을 가져와 앉으라 한다. 바닥은 그야말로 냉동창고처럼 차갑다. 추워 온 몸이 절로 덜덜 떨린다. 내가 얼마나 추운 곳에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하아 입김을 불어 본다. 뿌연 입김이 부엌에 퍼진다. 꼭 밖에 있는 것처럼 시린 냉기가 발끝부터 천천히 정수리로 타고 흐른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자리에 앉아 전을 부친다. 일과가 시작된 거다. 추석이라는 열정 페이를 요하는 일과가.
전을 미친 듯이 부친다. 기름내가 구질구질한 잠옷에 스며들 때까지 전만 부친다. 할머니는 연신 왔다 갔다 하며 이것저것을 옮긴다. 뜨거운 기름이 튀면 운이 나쁜 거다. 그렇다고 악 소리를 내어서도 안 된다. 안방에는 오빠와 아빠가 자고 있으므로 나는 입을 닫고 전만 뒤집어야 했다. 8시가 되기 전까지 그렇게 전만 부친다. 쪼그리고 앉아 전을 부치다 보면 아빠가 일어나 문을 열고 나온다. 그제야 할머니는 춥냐 묻는다. 아빠가 그렇다 답한다. 곧 보일러가 돌아간다. 엉덩이가 따뜻해진다. 속이 홧홧하다. 정수리는 차가운데 양 손은 뜨겁다. 젓가락을 던져버리고 싶을 만큼 뜨겁다. 15분 뒤 아빠가 오빠를 깨운다. 방에서 나온 오빠가 내 옆에 쪼그리고 앉아 새벽 나절부터 미친 듯이 뒤집어댄 전을 집어먹는다. 할머니가 묻는다. '맛있냐?' 오빠는 맛있다 웃으며 전을 집어 먹는다. 아빠가 저 멀리서 상을 가지고 안방으로 들어간다. 오빠는 일어나 대충 씻고 제사를 준비한다. 준비된 음식을 몇 가지 나르는 오빠의 등을 쓰다듬으며 할머니는 말한다. '아주 다 컸네, 다 컸어.'
대접에 국을 퍼 상으로 옮기기까지 할머니는 뭔가가 못마땅한지 계속 내게 요구한다. '그 그릇 말고 이걸로 가져가라.', '할아버지 국은 여기다가 담아라.' 등등. 주문이 쉴 새 없이 이어진다. 8시 30분. 향이 피어오른다. 추워 죽겠는데 창문을 연다. 아빠가 옷을 갈아입으라고 닦달한다. 옷을 갈아입고 나왔는데도 기름 냄새가 코끝을 시큰하게 찔러온다. 광대 부근이 뻐근하다. 뻣뻣해진 광대 부근 탓에 괜히 날 툭툭 쳐가며 장난을 치는 아빠의 행동에 웃음이 일지 않는다.
제사가 끝나고 창문을 닫고 늦은 아침을 먹는다. 고봉밥마냥 쌓인 밥 한 그릇이 내 앞에 도달한다. 그 앞으로 '너 김 좋아하지?' 하고 김이 그 앞으로 놓인다. 먹은 게 아무것도 없는데 배가 고프지 않다. 입맛이 없어 절반도 안 먹고 숟가락을 내려놓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더 먹으라는 재촉이 귓전을 때린다. 싫다 얘기해도 소용없다. 내 몫을 먹지 않으면 찬밥이 되므로 나는 이 밥을 다 먹어야만 한다. 꾸역꾸역 입에 깔깔한 밥알을 욱여넣는다. 갖다 버리고 싶은 음식들을 맛있다는 양 이것저것 집어먹는다. 죄다 맛은 거기서 거기다. 시금치에서도 기름 짠내가 나고 전은 쳐다도 보기 싫다. 김가루에서는 이상한 꿉꿉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다 먹기 싫어 국에 밥을 말아 겨우 다 먹으면 한 공기 더 먹으라 종용한다. 그때 강력히 싫다고 내 의사를 표하고 나면 잔소리가 흘러들어온다. 아빠까지 합세해 한 그릇 더 먹으라고 강요한다. 토 할 것 같은 아침 식사가 끝나면 아빠가 날 한 번 쳐다본다. 능글맞게 웃으며 묻는다.
"설거지는 네가 할 거니?"
그때 안 한다고 하면 나쁜 년이 되는 거고, 선심 쓰는 체하며 한다고 하면 호구가 되는 거다. 아침 6시부터 일어나 하기 싫어 죽겠는 일들을 억지로 한 탓에 이미 인상이 찌푸려질 대로 찌푸려졌다. 광대에서 볼 언저리까지 뻣뻣하다. 설움이 그득 찼기 때문이다. 거기서 툭 치면 곧장 눈물이 터질 것 같다. 할머니는 하지 말란 말을 하지 않는다. 내가 했으면 은근히 바라는 눈치다. 며느리 대신 손녀다. 나이 불문, 그 딴 게 무슨 소용이랴. 내가 뚱해있자 할머니가 일어난다. 설거지를 하러 가는 할머니의 등을 보고 아빠가 날 채근한다. '가서 네가 해라.' 장난으로 통하지 않자 이번에는 권위를 내세운다. 불만이 정수리 끝까지 치솟으니 그런 게 들릴 리 없다. 여전히 안방에 붙어 앉아있다. 그다음은 화를 낸다. '할머니 도와드리는 게 그렇게 불만이냐.' 성을 내는 아빠의 울려 퍼지는 고함은 11살의 내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잊고 있을까 다시 한번 적는다. 턱턱 막히는 이 상황은 11살의 내가 설움을 참아 내고 있는 광경이다.
결국 설거지 대신 커피 타기를 선택한다. 그마저도 하기 싫어 죽겠는걸 대견하게 참아내고 커피를 탄다. 커피를 타서 안방으로 들어가자 날 놀리듯 아빠가 웃고 있다. 딸이 타 준 커피가 역시 맛있다며 좋다고 커피를 들이켠다. 모든 게 다 꼴사납다. 몇 시간 뒤 고모들이 온다. 적게는 3~5살, 많게는 9살 차이가 나는 친천 동생들도 함께 온다. 손자 손녀가 왔다고 할머니는 기뻐한다. 저녁상이 차려진다. 나는 그제야 내 나이답게 안방에 앉아 친척동생들과 논다. 모든 관심은 다행스럽게 어린 막내에게 돌아간다.
상은 두 개가 차려진다. 진수성찬의 상 하나와 진수성찬을 담고 남은 끄나풀로 채워진 나름의 진수성찬 상이다. 그 거대한 상에는 이모부들과 아빠, 오빠가 둘러앉는다. 나는 당연하게 작은 상 앞에 앉는다. 밥을 다 먹고 설거지를 하는 막내 고모에게 상을 치우며 접시를 나르는데 고모가 나에게 한마디 한다.
너 상전이다?
나는 그 한 마디에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제야 설움이 녹아 마음에 응어리진다. 엄마가 보고 싶다. 동시에 엄마가 이 자리에 없어 너무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엄마가 날 안아줬으면 좋겠다. 나에게도 엄마가 있다고 소리 지르고 싶다. 엄마의 존재를 지워버리듯 다들 날 엄마 없는 사람 취급을 한다. 그 칼날, 툭 내뱉는 말 한마디의 칼날이 무참히 날 찌르고 지나간다. 나는 수도 없이 생각한다. 내가 좀 더 뻔뻔한 아이였다면 거기서 바락바락 대들었다면, 그랬다면 이렇게 마음이 찢어지진 않았을 텐데. 후회한다. 그러나 참는다. 가족이라는 명분으로 나를 휘두르는 그들을 나는 가족이라고 생각했기에 나 혼자 억울해하고 만다.
이제와 후회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늘 그 순간을 후회한다. 매년 명절 때만 되면 그때의 일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걸 보면 11살의 내가 받은 충격이 얼마만큼이었는지 가늠할 수 없다. 반갑다 모여드는 명절에 왜 나는 당신들의 가족이 되지 못했는지 난 아직도 모르겠다. 내가 남자였다면, 내가 고모의 딸이었다면 그랬을까. 나는 어째서 당신들의 가족이 되지 못했는지. 그런 과거를 두고 싹 다 없는 일로 셈해두며 날 애타게 그리워한다 되지도 않는 눈물을 흘리는 당신들을 이제는 내가 가족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러니 내게 용서를 바라지 말라고, 그러니 내게 왜 그러느냐고 묻지 말아 달라고. 나는 아직 가족의 정의를 내리기에는 그다지 성숙하지 못하므로 외면하는 걸로 대신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