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의 파편 : 죄책감

눈물로 얼룩진 입학식

by 남다름
어쩔 수 없단 말로 살며 몇 번이나 당신을 속여 보셨습니까?



중학교 입학식이었다. 3월의 푸르른 햇살 아래 강당에서 옹기종기 이제 막 중학생이 된 14살의 아이들이 어색한 공기 속에 뒤섞여있다. 이제 막 중학생이 된 입학식이기에 부모님들이 꽃다발을 들고 강당 뒤편에 서서 자식들을 대견하게 바라보고 있다. 6년 내리 초등학생이었던 것과는 달리 중학교는 강당에서부터 다른 향을 물씬 풍겼다. 입학을 축하하는 인사말이 마이크를 통해 강당을 울린다. 초등학교에서 함께 학교를 진학한 친구가 물었다.


"부모님 오셨어?"

"응. 오셨어. 너는?"

"나도. 어디 계셔?"

"몰라."


그 당시에 핸드폰이 없었기에 어디쯤에 누가 서있는지 몰랐다. 그저 입학식이라고 얘기를 해두었고 아빠는 바빴기에 당연히 오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았다. 마음이 불안했다. 그리고 강당 저 끝에 아줌마가 서있었다. 환히 웃으며 내 쪽으로 손을 흔들었다. 누군가 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에 안도했다. 나는 친구에게 내 쪽을 바라보며 환히 웃는 아줌마를 가리켰다.


"저기!"


하얀 옷을 입은 아줌마가 내 입학식에 참여했다. 전날까지 오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던 것과는 달리 막상 강당에서 아는 얼굴을 마주하니 새삼 반갑기는 했다. 더불어 혼자 꽃다발 하나 없이 입학식을 맞이해야 한다는 생각에 심란하던 참이었다. 강당에서 모든 일정이 끝나고 각자의 반으로 이동하는 와중에 부모님들과 뒤섞인 아이들의 응석이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나는 어색하게 아줌마에게 다가갔다. 아줌마는 여전히 환히 웃으며 말했다. 세상 쿨하기 그지없이 단 한 마디를 건넸다.


"이따 보자."

줄을 지어 교실로 이동하는데 1학년 6반 앞 복도에 익숙한 사람이 어색하게 창가에 서있었다.


"......"

"......"


엄마였다. 실로 오랜만에 마주한 얼굴이었다. 마가 긴장으로 굳었는지 어색하게 웃으며 내 이름을 불렀다. 옆에 있던 친구가 물었다.


"누구야?"


나는 그 물음에 답할 수 없었다. 어색하게 반 앞에 멈춰 엄마와 마주했다. 엄마는 섭섭한 티를 내며 말했다.


"왜 그래? 엄마 온 거 싫어?"

"있잖아. 사실은 아까 강당에서......, "


입학식이 한참일 때 강당에 아줌마가 왔다고 전했다. 나는 친구에게 아줌마를 엄마라고 소개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모든 게 다 엉망이었다. 엄마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굳은 얼굴, 좀 전보다 더욱 뻣뻣해진 얼굴로 날 쳐다봤다.


"갈게."


엄마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뒤돌아 섰다. 계단을 내려가는 엄마를 차마 부를 수도 없었다. 엄마!라고 부를 수 없는 소개를 이미 끝마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모든 게 엉망인 입학식이었다. 아는 얼굴이 왔지만 꽃다발을 받지도 못했고 칭얼거리지도 못했다. 나는 죄책감을 품에 안고 반으로 들어섰다. 그대로 펑펑 울고 싶었다.


나는 아직도 그 날 입학식이, 서늘한 봄이 되면 한 번씩 생각난다.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식은 떠오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 날의 기억은 좀체 지워지지 않는다. 나는 왜 하필 그 날 거짓말을 했을까, 아니 나는 그 날 그 아줌마를 어떻게 소개했어야 했을까. 나는 왜 엄마에게 엄마라고 부를 수 없었을까. 엄마는 그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왜 나는 솔직하게 털어놓아 엄마의 마음에 거대한 웅덩이를 만들어 버렸을까. 죄책감은 여전히 가시지 않는다. 그래서 그 입학식이 아직도 떠오르는 것 같다.


나는 그 날 입학식에서 단 한 번도 엄마라고 불러보지 못했다. 곳곳에서 엄마! 하며 달려가는 또래들과는 달리 어색하게 그 여자의 앞에 다가갔고, 어색하게 강당을 빠져나와 어색하게 엄마를 마주했다. 그 날 내가 엄마의 마음에 비수를 꽂은 것처럼 내 마음에도 커다란 구멍이 자리한다. 곳곳이 훤히 뚫린 구멍이 샘을 만들어낸다. 그 날이 떠오를 때면 아무 용건도 없이 엄마에게 엄마라고 크게 불러보곤 한다. 영원히 꺼내지 않을, 그러므로 평생 사과할 수 없는 일을 마음에 묻어둔 채로. 묻힌 그 마음의 웅덩이에서는 쉴 새 없이 샘이 솟구친다. 가물 날 없는 샘.


중학교 입학식. 그 날로 되돌아가고 싶다. 시린 겨울의 끝을 알리듯이 조금은 따뜻해진 바람의 품결에 엄마! 하고 반갑게 창가에 어색하게 서있는 엄마를 불러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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