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언제까지고 우리들이다.
"그 나이에 무슨 고민이 있냐?"
어려서부터 무수히 들어온 말이었다. 그 나이에 대체 무슨 고민이 있냐는 물음. 다시 내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괴로운 기억들 뿐이다. 지나고 보면 별 일이 아니었지만 괴로움은 남는다. 고민 없는 나이는 없다는 걸 영화 '우리들'이 아주 세밀하게 담아냈다.
11살. 초등학교 4학년의 치열한 친구관계에 대해 빼곡히 수록해 놓은 한 편의 다큐멘터리와 같은 영화로 나의 과거를 그대로 옮겨 적어 놓은 듯했다. 생생한 친구관계의 미묘한 틀어짐에서부터 선이의 감정선, 그리고 지아의 벗어나고 싶던 과거로부터 비롯된 반복된 가해. 초등학생이 무슨 고민이 있겠어?라는 어른들의 시선을 비웃듯이 초등학생들만의 치열한 친구 전쟁이 세밀하게 90분으로 기록된다. 처음과 끝이 비교되는 피구 장면은 나의 생각을 바꿔놓는데 한 몫했다.
나를 좋아하는 한 사람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운명이며 행운이라는 말과 달리 어째서 사람들은 다수의 관심과 인정을 더 중요시 여기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더불어 나도 그랬다. 그 한 사람을 등지고 다수의 관심을 쫓아 달려갔으나 다수의 관심은 그저 한순간일 뿐. 뒤늦게 돌아본 남은 한 사람은 이미 상처 받은 상태로 둘의 사이는 빠르게 뒤틀린다. 그건 본능일까?
왕따였던 선이에게 짧은 여름방학 동안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가 생겼다. 선이의 친구가 생겼다는 기쁨은 피곤한 엄마에게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하는데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났다. 더불어 지아에게 학교 놀이터에서 학교를 설명해주는 장면에선 왕따였던 선이가 개학을 기다리는 듯하는 모습도 비춘다. 그러나 개학 당일 전학생을 소개된 지아는 자리에 앉아 손인사를 하는 선이를 외면한다. 틀어진 둘의 관계에서 선은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시도한다. 영화의 전반적인 장면들은 선이의 시선과 동일시된다. 나는 번번이 실패하는 선이의 도전에 제발 이제 그만두길 바랐다. 그 정도로 했으면 기분이 상할 만도 하지 않았냐, 그렇게까지 싸웠으면 이제 그만둘 때가 되지 않았나 싶은 마음들이 무수히 반복되었다. 그러나 대망의 마지막 장면. 처음과 상반되는 피구 장면에서 나는 이 영화가 말하는 '진심'이라는 게 대체 뭔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어른이 된 뒤로부터 줄곧 외면하고 모른 척하던 진심을 말이다.
어쩌면 진심이 통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모든 진심을 뒤로하고 선택을 짓밟고 뭉개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선이의 진심이 통했는지, 아니면 다시 처음의 피구 장면으로 돌아갔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그 마지막 장면을 보고 믿고 싶어 졌다. 어쩌면 더욱 치열한 어린이들의 친구사이에서 진심이 통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상처 받은 어른들에게 위로가 전해졌으면 싶다.
부모님이 이혼하셨던 초등학교 4학년. 죽기로 결심했던 22살의 겨울. 출근길이 두려웠던 신규 때와 첫 프리셉티를 교육하던 날. 시간은 흘렀지만 나는 여전히 괴롭다. 인생은 즐거움의 연속이 아니라 어쩌면 괴로움의 연속 속에서 행복을 찾는 과업일지도 모르겠다.
그 나이에 대체 무슨 고민이 그렇게 많냐? 는 질문은 완전히 모순된 질문인 것 같다. 그 나이 때에 꼭 이뤄야 하는 성장발달이 있듯이 그 나이 때에 경험해야 할 고민들과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 발생하고야 마는 게 개인의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4학년은 훌쩍 지나버렸지만 나는 여전히 고민을 떠안고 산다. 키가 자라고 나이를 먹었지만 나는 여전히 미숙하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여전히 우리들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