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으로 태어난 죄, 모두 유죄

태어나는 순간부터 죄를 선고받는다면,

by 남다름

제 죄가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부모 자식으로 태어난 죄라고 하겠습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여유가 생겼다. 방황했던 어린 시절에는 없던, 나이테에서 오는 희한한 편안함이었다. 일을 처리할 때도 그렇고, 나에게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도 '어찌 되었든 시간이 약이다.'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깔려있던 적도 있었다.


나는 한 살, 한 살 나이 먹는 게 좋았다. 좀 더 빠르게 성숙해졌으면 했다. 주변 내 또래 친구들은 죄다 나이 먹는 걸 싫어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루하루 근사해지길 바랬던 나의 바람이었던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오는 부작용은 하나도 생각하지 못했던 내 지난날의 과오였다.





고집불통에 과하게 가부장적이던 아빠가 어느 날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내게 전화를 걸어온다. 대체적으로 점심은 먹었냐, 지금 뭐하냐, 바쁘지 않냐와 같은 보통의 안부인사였다. 처음에는 전화를 받아 밥은 이미 먹었다, 나는 지금 밖이다 와 같이 내 근황에 대해 설명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게 귀찮아졌다. 그러나 언제고 한 번은 만나야 한다는 어떤 압박감에 시달리다 이내 아빠와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아빠와 만남 하루 전날에는 그게 하도 신경이 쓰여 꿈도 꾸었다. 꿈은 불과 십여 년 전의 이야기로 아빠에게 당했던 수모와 피눈물 흘리며 힘겨웠던 시기로 생생하게 되돌아가 있었다. 꿈에서 깨어나서도 한참 찜찜해했다. 나한테 이랬던 사람하고 내가 만나야 된다고? 싶은 뒤틀린 마음도 도사렸다.


오후 1시. 아빠와 만나기로 한 시간. 우리 집 아파트 1층에서 기다리겠다고 한 아빠와의 만남을 위해 일어나 씻고, 빨래를 돌리고, 설거지를 하고, 선크림을 바르고 등등.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하던 모든 게 귀찮아졌다. 조금 더 느긋하게 맞이할 수 있었던 아침을 어딘지 모르게 방해받는 느낌이었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12시 46분. 대충 준비를 마치고 옷을 챙겨 입었다. 가장 편안한 차림으로 갈아입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추적추적. 벚꽃이 예쁘게 피어오른 것과 상반되게 날은 추웠고 촘촘한 비가 내릴락 말락 하며 성가시게 굴었다.


차를 타고 예전에 갔던 칼국수집에 갔다. 저수지 변두리에 있는 칼국수집. 아빠가 좋아하는 식당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빠 입맛에 아주 딱 맞아떨어지는 듯했다. 나는 별다른 의견 없이 그러자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머리로는 시간을 계산했다. 아빠와 헤어지고 나서 남은 시간에 학원에 가고 틈이 나면 여유롭게 커피 한 잔을 하던가 집에 가서 드라마를 보던가 해야지. 날씨가 추우니까 PC방에 가서 죽치고 게임이나 한 판 해볼까와 같은 생각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런 나와는 달리 아빠는 내 근황과 별 일 없냐는 물음을 끊임없이 이어나갔다. 그리고 그 끝에는 항상 그러했듯이 오빠에 대한 물음으로 마무리됐다. 오빠와 아빠의 사이가 틀어진 지 거진 1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었다. 나는 오빠 이야기가 나오면 항상 말을 얼버무렸다. 그냥저냥 똑같이 지내죠, 뭐. 내 답을 들은 아빠는 평소와 달리 한마디를 더 얹었다. '통화 안 한지 1년이 다 되어 가네.' 아빠의 말에 내가 답했다. '그냥 한 번 해봐요.' 그러자 아빠는 '뭐하러.' 그렇게 이야기는 마무리되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오빠가 먼저 전화해주길 바라는 듯했다.


저수지로 가는 내내 나는 졸렸다. 자도 자도 피곤했다. 날씨의 영향도 있었다. 아빠는 흐린 하늘을 바라보며 부침개 먹기에 좋은 날이라고 했다. 부침개라면 환장하는 부녀였다. 이런 날에는 집에서 김치부침개를 해서 먹으면 맛있겠다고 화답하자 아빠가 아빠집에 가면 해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때도 입을 다물었다.


40대 때의 아빠는 고집불통이었고, 가부장적이었다. 손에 물이 닿으면 죽기라도 하는 듯이 설거지며 어쩔 수 없이 하는 라면을 제외한 모든 요리를 기피했다. 물 한 잔 떠오는 것조차 내게 시키던 당신이었다. 그랬던 아빠가 부침개라니. 어울리지 않았다. 혼자가 되면 그만큼 능력치가 생기는 걸까. 밤에 겪었던 꿈속의 수모 덕에 부정적인 생각이 날씨처럼 머릿속에 먹구름으로 엉켜 붙었다.


칼국수를 먹으면서 아빠는 계속해서 버섯과 미나리, 면을 내 그릇에 담아주었다. 나는 괜찮다고 알아서 먹겠다고, 그러니 아빠 드시라고 권했지만 여전히 내 그릇은 쉴 틈 없이 넘쳐났다. 점심을 다 먹고 나서 아빠가 웬일인지 카운터 옆에 있는 아이스크림 냉장고를 빤히 쳐다봤다. '너 저거 먹을래? 천 원이래. 아이스크림 좋아하잖아.' 나는 이 날씨에 무슨 아이스크림인가 싶어 괜찮다고 했다. 그러나 아빠는 계산을 하고 나서 굳이 아이스크림 하나를 꺼내 계산했다. 그리고 그 막대를 내게 건넸다. 기세 등등한 얼굴이었다. 시린 바람이 불었다. 마지못해 받아 들었다. 차에 타서 덜덜 떨면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어려서 내가 열광했던 식당 카운터 옆에 있는 아이스크림. 하나에 300원 내지는 500원에 달하던 아이스크림. 그렇게 먹고 싶었던 맛을 어른이 되어서 먹으니 새삼 묘했다.


아빠가 시동을 걸었다. 이대로 집에 가기 아쉬운 눈치였다. 주위에 저수지나 한 번 둘러보자고 내가 제안했다. 아빠가 빠르게 주차된 차를 후진시켜 도로를 내달렸다. 내심 신이 난 것 같았다. 그러나 봄이었다. 벚꽃을 겨우 피우자마자 시샘한 추위가 불어닥친 봄. 도착한 저수지를 돌기엔 몹시 추웠다. 아이스크림이 내 속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저수지를 돌지도 못하고 나는 그대로 차에서 내리자마자 곧장 차문을 열고 다시 차에 올랐다. '너무 춥네.' 아빠가 따라 들어와 차를 돌렸다. 차는 고속도로를 쭉 내달려 내가 사는 동네로 진입했다. 집 앞에 다다를 즈음에 아빠가 물었다.


아빠 차 타고 가본 곳 중에 어디가 가장 기억에 남니?


나는 그 물음에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아빠 차를 타고 다녔던 곳은 아주 많았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타고 다니던 장수하고 노쇠한 차였다. 그러나 끝내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가 번뜩 떠오르지 않았다. 안전 운전하시라는 인사를 남기고 차에서 내리려는데 아빠가 말했다. 날짜 두어 개 추려서 보내봐, 언제 먼저 만나자고 좀 하고 그래 봐. 그래서 나는 그저 우스갯소리로 32일이나 35일에 봬요.라고 답했다.


집에 와서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곧장 PC방으로 달려가 글을 쓴다. 나는 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에 대해 말하지 못했을까.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가 있다. 과천을 내달리던 도로, 그 옆으로 경마장의 새하얀 불빛. 나는 왜 그 도로를 지나칠 때마다 유난히 가슴이 뛸까. 이유를 모르겠다. 그런데도 그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아마 아빠는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때 바빴던 아빠가 날 데리고 간 경마장. 그 경마장에서 신이 난 아빠의 얼굴과 달리는 경주마들, 주변의 사람들의 아우성. 왜 그런 소소한 것들이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나는 왜 아빠한테 좀 더 살갑게 시간 조율해서 봬요.라고 하지 못했을까. 나는 왜 연민이 생겨 아빠를 용서하기로 해놓고 마음 한 편으로는 증오에 사무쳐있을까. 반대로 물어봤어야 했다. 아빠는 어디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러면 그곳은 어디일까. 날 데리고 처음 갔던 바다일까, 아니면 아빠가 회사생활을 하던 그 잘 나가던 시기에 갔던 경치 좋고, 풍경 멋진 곳일까. 아니면 아주 먼 언젠가 4명의 가족이 갔던 저수지였을까. 그도 아니면 내가 아이스크림 따위에 울고불고하던 오래된 식당일까.


나이가 들어감에 여유가 생겼다고 착각했다. 마주할 이별이 앞으로 얼마나 많을지도 모르고. 여유 따윈 어디에도 없이 나는 아득한 미래가 무섭다. 그런데도 내 손가락은 아빠에게 조만간 만나 근사한 점심을 대접하겠다는 말을 하지 못한다. 어째서 자식이란 이런 걸까. 어째서 나이 든 부모는 현재의 나는 잘 모르면서 과거의 나만 뚜렷하게 기억할까. 왜 나는 그런 당신에게 분노하고 또 당신이 없는 곳에서 과거의 날 기억하는 당신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는지. 도통 자식이라는 역할에 대해 나는 아마 평생을 가도 이해할 수 없을 듯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불효자다.


하고 싶은 말을 마음속에만 담아두기로 했다. 아빠를 만난 오늘 하루도 그랬다. 다음을 기약하는 아빠에게 다음의 기약 없이 차에서 내렸고, 조금 더 나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아빠를 두고 나는 오늘 내 하루를 마무리할 생각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나와의 추억을 회상하는 아빠를 두고 나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왜 가족이란 멀어져야만 소중함을 깨닫는지. 오늘도 나는 표현을 줄인다. 속으로만 수없이 되뇐다. 닿지 않을 외침, 언젠가 뼈저리게 후회할지언정. 자식이란 이다지도 이기적인 동물들이다. 그래서 나의 죄가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답할 수 있는 건 답은 단 하나다.


나의 죄, 태어나면서 당신의 자식으로 태어난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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