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는 썸
2013년 5월 7일
이 날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내 이름 세 글자 앞에 "신입사원" 이란 호칭이 붙던 날.
얼마나 뿌듯하고 설레었던지. 봄바람이 살살 불어오던 첫 출근 날, 평소 입지 않는 원피스에 재킷까지 걸치고 콧노래를 흥얼흥얼 부르며 회사 앞 까지 갔던 기억이 있다.
대한항공의 객실 승무원은 신입사원 교육 1개월, 안전 교육 2개월, 서비스 교육 1개월을 포함해 총 4개월 동안의 교육을 수료해야 정식으로 '승무원'으로서 근무가 가능하다.
객실 승무원 50명, 운항 승무원 14명 그리고 항공우주 본부 대리님 한 명.
우리 13-5차.
제일 막내가 22살 그리고 제일 언니가 28살이었던 우리와 평균 나이 35를 훌쩍 넘는 기장님들과 대리님. 그렇게 우리는 동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는 처음 만났다. 하지만 알게 된 건 아니었다.
나는 뛰어난 외모가 아니니 예쁜 애들 50명 중에 눈에 띄지 않았을 테고, 남편 또한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니 50명의 여자들 사이에서 기가 팍 죽었을 것이다.
워낙 인원이 많다 보니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렸다. 하지만 우리는 프로젝트를 함께 하고 회식자리도 갖으며 나이 차가 무색하게 금방 친해졌다. 우리는 기장님들을 '삼촌'이라 불렀다. 우리의 나이가 조카뻘이었으니 '삼촌'이란 호칭이 어색하진 않았다.
그 삼촌들 사이에 남편이 있었다. 14명 중 딱 두 명만이 총각이었는데 그중 한 명이 남편이었다. 사실 남편이 그 당시 34살이었으니 삼촌보다는 '큰오빠' 뻘쯤 됐었겠다.
회식 날, 유부남 삼촌들은 큰오빠를 누군가와 이어주려 무단히도 노력했고 그 전날 남자 친구와 헤어졌던 내가 그 '누군가'에 당첨되었다. 50명 중 내가 뽑혔으니 당청이란 표현이 맞겠지. 남편은 '도둑놈'이 되었고.
그 날부터 아무도 모르는 썸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나와 남편이 교육받는 4개월 동안, 우리는 우리만 빼고 다 아는 비밀연애를 했다. 교육이 끝나는 날, 친한 동기들에게 우리의 연애사실을 알렸을 때, 동기들이 내게 말했다.
우리 눈치채고 있었어!
친했던 동기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나와 남편만 비밀 연애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귀엽고 우스운지!
그렇게 우리는 4년을 만났고,
나의 마지막 20대였던 2017년 봄, 결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