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기록
내가 미국 비행 스케줄 중 가장 좋아했던 도시 중 하나다.
나는 미국 동부 보단 서부 쪽 비행을 선호했는데 그 이유는 단 두 가지, 날씨와 비행시간 때문이었다.
그중 날씨가 거의 항상 좋은 로스앤젤레스, 쇼핑과 카지노만으로도 며칠을 보낼 수 있는 라스베이거스 그리고 비행시간이 10시간 정도로 적당하고 (동부는 길게는 15시간까지 걸린다) 매력 있는 도시 샌프란시스코가 나의 미국 Best 3 도시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남편을 따라 샌프란시스코에 갔다. 3년 만이었지만 마치 며칠 전에 왔던 것처럼 익숙하게 호텔에서 버스를 타고 로 향했다. Pier 39는 내가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유명한 스폿 중 하나이면서 내가 좋아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연안에 세워진 쇼핑센터인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쇼핑센터와는 다르게 여유가 넘치는 곳이다. 금문교도 저 멀리 보이고, 바다사자를 떼로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Pier 39는 아직도 나의 추억 속에 아름답게 자리 잡은 곳이다. 승무원으로서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모든 게 새롭고 처음이던 시절 이 곳에서 먹었던 클램 차우더(Clam chowder)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날씨가 꽤 쌀쌀했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언니들은 골목 이곳저곳을 헤치며 클램 차우더 맛집이라는 곳으로 데려갔다. 줄이 꽤 길어 한 20분 정도 기다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기다림 끝에 받아 든 클램 차우더 맛이 얼마나 맛있던지. 앉을자리도 없어 밖에서 서서 호호 불며 후루룩 마시듯 먹었던 그 기억은 아직도 나를 웃음 짓게 만든다.
얼마나 맛이 있었는지 그곳에 나와 내 바로 윗 선배는 여권을 놓고 온 것도 모르고 이곳저곳을 구경하다 나중에 여권이 없어진 것을 알고 너무 놀래서 허겁지겁 뛰어갔는데 다행히도 제자리에 있었다. 승무원에게 여권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학생이 가방을 놓고 학교 가는 것과 똑같은 일 일 것이다. 그 당시엔 너무 놀랐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도 다 추억이다.
남편에게 나만 따라오라며 위풍당당 큰 소리를 쳤다. 남편에겐 첫 샌프란시스코였다. 애송이라고 비웃으며 데려갔는데 내가 생각했던 그 클램 차우더의 맛이 아니었다. 관광 스팟이 된 나머지 예전 그 맛을 잃어버린 듯했다. 이상하다. 난 이미 여기 세 번도 더 왔는데. 아니, 내 입맛이 바뀐 걸까. 아니면 여행 초보였을 그 당시엔 무엇이든 맛있게 느껴졌던 걸까? 남편이 나를 비웃었다.
여기가 맛집이라고?
남편의 기종은 B777(주로 미국과 유럽을 많이 간다)인데 아직 얼마 되지 않아(그 전까진 B737-주로 국내선과 단거리를 많이 운행함) 같이 가면 남편에겐 처음이고 나에겐 익숙한 곳이 많다. 언젠가 남편은 내게 물었다.
이미 와 봤던 곳인데 또 오면 지겹지 않아?
사실, 하나도 지겹지 않다. 남편과 함께면 갔던 곳도, 이미 먹어봤던 음식들도 새롭다. 여행은 누구와 가는가, 그곳에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내가 세 번 이상 먹었던 클램 차우더도 팀원들과 음료수와 함께 먹었을 때와 남편이랑 맥주와 함께 먹었을 때가 다르고(실패였지만), 같은 금문교도 몇 시에 보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곳이 된다.
나는 이미 가봤던 곳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도 남편과 함께 경험해보고 즐기고 싶다. 남편과 함께 새로운 그리고 특별한 추억을 함께 만들어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