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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념 Jul 05. 2023

여름, 우울

만사 귀찮다

이전 직장을 그만둔 지 반년이 지났다.

나름대로 정한 휴식기간이 끝났지만 하루하루 재취업을 미루고 있다.


그동안 자격증도 따고 학생 때 하지 못한 영어공부도 했기에 마냥 놀기만 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 제약 없는 삶에 몸과 마음이 절어버린 탓인지 다시 직장생활을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몇 번의 합격 통보에도 입사를 고사했고, 이를 후회해 다시 구직활동을 하면서도 무력감이 가시지 않는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중에도 고민 생각이 깊어진다. 애초에 난 아무것도 아닌, 무용한 존재가 아닐까 하는 부정적 감정이 머릿속일 이리저리 헤집는다. 쉽사리 가시지 않는 부정적 감정 때문일까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있다.


모든 인생에 몇 번씩 찾아온다는 우울감이 이런 것일까,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지만 곧 다시 주저앉고 싶을 뿐이다.

그럼에도 마음을 다잡고 뭐라도 해보자 결심할 수 있는 건

곁을 지켜주는 여자친구 덕분이다.


내 무력감과 우울을 그녀 앞에서 결코 드러내지 않으리라 다짐했고, 그 다짐을 잘 지키고 있다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그건 아닌 듯하다.


최근 그녀는 이전보다 활달해졌다. 기분전환이 필요하다며 커플링을 맞추자 하고

내가 좋아하는 공포장르 영화가 개봉하는 날엔 '난 못 보니까 혼자라도 보고와' 하며 영화티켓을 선물한다.

이따금 아무 이유 없이 내 머리를 쓰다듬기도 한다.


오늘, 백화점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던 중에 그녀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오가는 사람 많은 그곳에서 우린 잠시 에티켓을 어기고 버드키스를 나눴다.


집에 돌아오니 또 한 차례 눈물이 흐른다. 하지만 평소처럼 우울감만 가득한 눈물은 아니다.

미안하고 고마워서, 그리고 사랑스러워서 흘리는 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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