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을 이야기하자면 이렇습니다.

by 양영석

2014년,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우리 가족은 흩어졌다.

아버지는 충청도로 일자리를 옮기셨고 우리 남매는 부산에 남았으나 동생은 외할머니 댁에서, 나는 월세방을 얻어 따로 살게 됐다.


어머니의 투병이 길었던 탓에 치료비 일부와 생활비 대출금 2천만 원이 내 몫의 빚으로 남았다. 갓 대학을 졸업한 인문학도가 평범한 직장생활로 감당하기엔 아득한 금액이었다. 어쩔 수 없이 취업 공부를 미루고 인테리어 철거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에 들어가 막일을 시작했다. 평일에는 오래된 집의 실내를 부수고 주말에는 시 외곽에 위치한 공장이나 비닐하우스에서 잡일을 하며 돈을 벌었다.


첫 월급날, 적잖은 돈이 들어온 통장을 보고 들떠서 월급의 대부분을 상환했는데 이게 실수였다. 아직 셈에 서툴렀던 나는 내 한 몸을 건사하는데 꽤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걸 알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머니가 비었고 보일러 기름이 떨어져 한겨울임에도 냉수로 샤워를 해야 했다. 수중에 남은 돈 삼천 원으로 보름을 버텨야 하는 상황에서 근처 사회복지관을 찾았다. 한참을 망설이고 쭈뼛대다 들어간 그곳에서 사정을 설명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물었다. 인적사항을 기입하고 상담을 받았지만 어찌 됐든 소득이 있던 탓에 지원대상이 될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에서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서러움이 먼저, 그리고 스스로 한심스러운 마음이 뒤따랐다.


그날 저녁, 누군가 내가 사는 월세방의 문을 두드렸다. 복지관 한편에 앉아있던 40대 중후반쯤 돼 보이는 사회복지사였다. 내 안색을 퍼뜩 살핀 그는 즉석밥과 3분 카레, 라면 따위가 담긴 봉지를 내밀었다.

“전자레인지는 있죠?” 지원하고 남은 것들을 좀 가져왔노라고, 그는 말했다. 당시엔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지만 지금은 편의점 봉투에 담겨 있던 한아름 먹을거리가 당신의 사비로 장만한 것임을 안다. 꼬박 1년. 그곳에 사는 동안 이따금 문 앞에는 즉석밥과 라면이 박스째 놓여 있었다. 떠나던 날, 사회복지관 문 앞에 감사편지와 생크림 케이크를 두고 왔다. 쑥스러워 인사를 직접 하지 못한 것을 가끔 후회한다.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일. 모든 것에 서툴던 시절의 고생담을 구구절절 이야기 하는 까닭은 지난겨울, 여윳돈 중 일부를 기부하겠다는 내게 누군가 걱정과 질책이 섞인 질문을 했기 때문이다.


월급도 얼마 안 되는데, 괜한 일 하는 거 아냐?


이야기 한 바와 같이 나는 비빌 언덕이 없는 1인 가구 청년으로 사회에 나왔다. 서른여섯 살인 지금도 세상에 홀로 서는 외톨이를 자처한다. 집 없고 돈 없는 설움을 이른 나이에 겪은 덕에 돈이 얼마나 귀한지, 또 얼마나 무서운지 안다. 그래서 악착같이 돈을 벌어야겠다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한편으론 생면부지의 남을 위해 기꺼이 사비를 털어 음식을 마련해 준 사회복지사의 따뜻한 마음을 잊지 않는다. 덕분에 나는 그해 겨울 얼어붙지 않았다. 바라건대, 이름을 밝힐 수 없는 그 사회복지사 선생께서도 내가 느낀 온기를 똑같이 느꼈으면 한다.


어깨를 짓누르던 빚을 청산한 뒤에는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결국 취업 공부는 따로 하지 못해 목표하던 바를 미뤄야 했지만 생활은 점차 안정궤도에 올랐다. 운 좋게도 내 취미이자 특기는 읽고 쓰는 것이 전부라, 적은 월급을 가지고도 남들만큼의 저축을 할 수 있었다. 얼마의 여유가 생기고부터는 글공부를 시작했고 2년 만에 신인상을 받았다. 가끔 '내가 지금 뭐 하고 있지? 잘 살고 있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 때면 서점 홈페이지에 내 이름을 검색해 본다. '현대문학가 > 소설가'로 분류된 이름 석 자를 보면서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뭘 해야 하는지 되새긴다.


처음 글을 써서 번 돈은 100만 원 남짓이었는데, 그 전부를 다른 이를 위해 썼다. 일부는 암투병 중이던 고모부께 드렸다. 조카가 힘들게 번 돈을 받을 수 없다며 미안해하는 고모에게 '이 돈 연말 보너스예요.'하고 거짓말한 것은 아마 용서해 주시리라 믿는다. 용서의 대가로 글 써서 번 돈 일부를 따뜻하게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재능이란 것이 원래 내 것이 아니라 여긴다면 내 작은 나눔은 그리 대단한 일도, 억울한 일도 아니다. 아직 유명 작가가 못 되어 나누는 게 적지만, 인생 항로가 결정되었고 주제에 비해 큰 행복을 누리고 있으니 내 오지랖은 충분히 값나가는 것이라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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