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 100주년을 맞은 1899년, 프랑스가 개최한 만국박람회를 상징할 기념물로 건축한 철골구조물.
에펠탑을 보면 반가운 마음이 든다. 프랑스 파리에서의 좋은 추억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고, 천성이 유랑과 거리가 멀어 이 나이 먹도록 여권도 없다. 일전에 누군가 여권용 사진을 찍어보라기에 마지못해 촬영한 사진이 있지만, 지갑에 보관되어 있을 뿐 빛을 보이지 못한 채다. 당연히 대한민국 영해를 벗어난 적도 없으니 바다 건너 타국과 인연이 있을 리 없다.
그럼에도 느끼는 반가운 감정은 몇 해 전, 다대포 해변에서 비롯됐다. 아마 일주일 가량의 연휴 기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창 글공부에 몰두하던 시기라 방구석에 박혀 책 읽고 낮잠 자고를 반복했는데, 그것도 하루이틀이지 삼일째부터 좀이 쑤시기 시작했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 기분을 전환해야겠다 싶어 정한 목적지가 다대포 해변이었다. 부산 도시철도 1호선을 타고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 '훌쩍'이란 큰 마음을 먹고 떠난 곳이 고작 거기였다니. 지금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때나 지금이나 난 아주 같잖은 놈이다.
가을 초입이라 날이 선선해 걷기 좋았다. 유달리 보드라운 모래 해변을 무념으로, 코 앞의 땅만 보며 걸었다. 한참을 걷던 중 귓전을 어지럽히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저마다 다른 피부색을 한 몇 사람이 날 향해 무어라 이야기하고 있었다. 삼각대로 고정한 카메라와 카메라를 향해 서 있는 그들을 보자마자 내가 사진 촬영을 방해했음을 깨달았다.
아차, 하는 마음에 표정과 손짓으로 미안함을 표하자 그들이 웃기 시작했다. 잠시 후 까맣고 윤기 나는 피부를 가진, 좀처럼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남자가 카메라를 조작하더니 액정을 내 눈앞에 들이밀었다. 거기엔 1분가량 짧은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영상 속 그들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손가락으로 하트를 만들고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고향의 친구들에게 대한민국의 부산, 다대포 해변을 자랑하기 위한 영상이겠거니 생각하던 차에 익숙한 옆모습이 등장했다. 바닥만 바라보며 걷는 내가 카메라 앞을 지나며 그들의 모습을 가렸고 곧 안경을 축 늘어뜨린 바보 같은 표정으로 렌즈를 바라보는 것까지가 고스란히 녹화되어 있었다.
다음 순간 그들 중 한 명이 서툴지만 분명한 발음의 한국어로 내게 말을 걸었다. 자신들은 프랑스에서 온 관광객이며 여행지에서의 영상을 한 데 엮어 보관할 계획이라는 거였다. 그러면서 방금 카메라에 담긴 것. 그러니까 자신들의 촬영을 방해한 타국의 불청객이 등장한 영상을 편집해 사용해도 되겠느냐고 내게 물었다.
잠시 경계하는 마음이 들었으나 그들의 들뜬 표정에서 뜻밖의 촬영 사고조차 여행의 추억으로 간직하려는 소망이 느껴져 차마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한편으론 이역만리타국. 내가 가보지 못한 곳. 그리고 앞으로도 갈 일이 없을 곳에서 내 실루엣이, 비록 멍하니 바보 같은 표정일지라도 나의 얼굴이 재생될 거라 생각하니 설렘도 느껴졌다. 손짓과 몸짓을 섞어 가며 나는 "네 괜찮아요. Okay, all right, no problem"대답하고는 자리를 벗어났다.
시간이 오래 지났으니 그들의 기억 속에서 나란 사람은 희미하게 잊혔을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 어딘가에는 그 시절 내가 지어 보인 멍한 표정이 여전히 데이터의 형태로 남아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 프랑스를 이토록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