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인간
더위가 채 물러가지 않은 늦여름, 카페에서 멍하니 넋을 놓고 시간을 보냈다. 실연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혹은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을 마주한 좌절감에 그랬던 것은 아니다. 다만 늘 갖고 다니던 노트를 깜빡 잊은 탓. 어딜 가든 손 닿는 곳에 펜과 노트가 있어야 나는 안심한다. 낙서든 메모든 종이에 끄적이는 것이 내 생활 가장 밑바닥에 깔린 벽(癖)이다. 그런데 노트가 없으니 내 손과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주문한 음료를 지그시 바라보며 ‘물건 하나 없다고 작동이 멈춘다면, 그건 내가 고장이 난 게 아닌가? 장애나 질병의 범주에 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노트의 부재를 계기삼아 가방 속 소지품을 찬찬히 다시 보았다.
여러 색 필기구와 샤프, 그리고 그것들을 담은 필통. 태블릿 PC와 블루투스 키보드. 그리고 책. 하나하나는 가볍지만 이것들을 한 데 넣고 보면 가방은 상당한 질량을 지니게 된다. 이따금 멀리, 그리고 오래 외출을 해야 할 때는 몇 가지를 덜어내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해 내 어깨는 항상 통증에 시달린다.
태블릿 PC에도 메모기능이 있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벽이란 그리 간단한 게 아니다. 당장에는 버릇 혹은 습관을 뜻하는 한자어지만 실제로는 그 이상의 고집과 결핍이 내재된 것이다. 액정 화면에 하는 메모는 스삭이는 소리도, 손끝에 전해오는 특유의 떨림도 없어 내 벽을 만족시킬 수 없다.
여기까지 미친 생각을. 난 기어코 쓰고 말았다. 노트도 없는데 어떻게? 카페 한편에 마련된 냅킨을 평평하게 당겨 깔고 펜으로 조심조심. 날카로운 촉이 연약한 그것을 찢어버리지 않도록. 벽은 이렇듯 집요하게 나를 물고 늘어진다. 누군가 말했다. 사람은 벽 없이 살 수 없고 벽이 있어 저마다의 항로가 정해진다고. 60억 지구인에겐 저마다의 벽이 있을 것이고 그 벽을 이유로 인생은 조금 고달파진다. 누군가는 벽을 이유로 방향타를 크게 돌리기도 했을 것이다. 지금의 나 역시 벽에서 비롯되었다. 머지않아 그 결핍이 나를 위대하게 만들어주길, 영원히 쓰는 인류로 만들어주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