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쩌면 내가 미친 걸지도 모른단 생각을 한다. 미쳤다는 건 아무도 나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 상태다. 재밌지 않은가? 이제 세상 누구도 이해시킬 필요가 없으니.
꿈에 나는 고래에게 삼켜진다. 거대한 식도 근육이 사방에서 나를 압박하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기껏해야 몸부림치는 것 밖에는.
잠에서 깨면 어김없이 새벽 1시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있다. 창을 열면 듬성듬성 빛 발하는 가로등 불빛 아래로 이어진 길이 보인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소실점 너머로 펼쳐진 어둠이 마치 쩍 벌린 고래의 아가리 같다.
새벽에 할 수 있는 일은 그 길로 나서는 것뿐이다. 이미 달아난 잠은 돌아오지 않고, 터질 듯 뛰는 심장은 찬 공기를 마심으로써 진정된다. 몇 번의 반복된 경험에서 비롯된 결론이라 망설이지 않고 집을 나선다. 대로에서 한참 떨어진 골목은 한밤의 소음에서 자유롭다. 줄지은 건물의 외벽과 주차된 차들이 만든 길을 걷다 보면 내가 걷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잊는다. 만약 돌부리에 걸려 고꾸라졌다 일어선다면 나는 집이 있는 방향을 잃을 것이다. 어디로 걸어야 할지 알 수 없어 아침이 올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조심히 걷는다. 혹시 몰라 규칙도 하나 정했다. 얼마를 걷든 앞으로만 걷고, 단 한 번 뒤돌아 집으로 돌아오기로. 새벽이란 그런 규칙이 필요한 곳이다.
깜빡거리는 가로등이 보이면 나는 그 아래 멈춰 선다. 빛과 어둠이 번갈아 가며 비추는 그 자리는 마치 스포트라이트가 점멸하는 무대와 같다. 깜-빡 거리는, 빛이 없는 순간이 더 포근하게 느껴진다. 눈을 감으면 암전 된 세상에 혼자 살아남은 것 같다. 나를 해칠 어떤 것도 남지 않은 세상에 남은 최후의 인류가 된 기분이다. 그러고 보면 간밤에 꾸는 꿈은 악몽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어둡고 포근한 고래의 뱃속으로 들어가 편하게 쉬는 꿈을 꾸다가 어떤 방해에 의해 깨어나는 게 아닐까?
잠시 후 나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심장 박동 소리가 들릴 정도로 길은 조용하다. 저 멀리 소실점이, 그럴 리 없겠지만 가까워오는 것 같다.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주차된 차 아래 어딘가에서 낭랑하게 울고 있다. 녀석도 꿈을 꾸다 깼을까? 잠들 수 없는 밤에 우는 것 밖엔 할 수 없는 녀석. 조금만 더 걸어야지. 울음소리는 이제 내 등 뒤에서 들렸다. 돌아가는 길에도 울고 있다면 녀석을 집에 들이겠다 마음먹었다. 부디 울음 그치고 잠들어라. 내 방은 좁고 허름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