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졸업하여 성인이 되어버린 날부터 스승의 날의 의미는 흐려지기 시작한다. 군대에 가기 전까진 친구들과 함께 은사를 찾아뵙고 맛있는 점심을 얻어먹는 날로써 의미가 있었는데, 이제는 각자가 바삐 생활하는 탓에 한 자리에 모이는 것도 쉽지 않다.
우리가 우리의 삶에 젖어 추억을 잊어가는 것처럼, 어느덧 은사 역시 당신들의 옛 제자들을 잊고 교편을 놓는 시간이 와버렸다. 이젠 농담으로라도 어리다 말할 수 없을 만큼, 우리 나이가 찼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시절 우리의 스승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실지. 궁금해하는 한편 나는 또 다른 스승을 찾아 존경하고 본받을 것을 권한다. 스승 삼을 사람을 찾기란 내가 누군가의 스승이 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 끝내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운이 조금 따라준다면 살아가며 몇 명의 스승은 모실 수 있을 것이다.
내게는 한 사람. 사회에 나온 뒤에 스승으로 삼은 이가 있다. 오래전 어른으로서 나를 이끌어줬던 직장 상사다. 함께 일하는 동안에는 '대표님, 스승의 날이라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하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입에 발린 소리 내지는 아부로 치부될까 걱정돼서였다.
내가 직장을 옮기고, 그이가 정년퇴임을 하고 난 뒤에야 난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다. 하지만 아직도 '당신이 제 스승입니다' 하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저 스승의 날 즈음하여 우리가 공유했던 과거를 함께 회상하는 것에 그친다. 다만, 최근에는 '대표님' 하던 호칭을 '선생님'으로 고쳐 부르기도 한다. 얼마의 시간이 더 지나면 '당신이 내 청춘의 스승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스승 삼아도 될지요?' 물으며 소주 한잔 청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것만으로도 내겐 큰 위로가 된다. 스승이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인다. 그분 역시 이따금 전화를 걸어오는 까마득한 후배가 있다는 사실에 마음 한 편이 든든하실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