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다시 언젠가

DEPAPEPE: 분명 다시 언젠가

by 양영석

이전 직장을 그만두고 출판사의 에디터로 일한 지도 2년이 다되어 간다. 아직 숙달됐다고 얘기할 수는 없지만 취재하고, 원고 쓰고, 교정하고, 자료를 정리하는 일이 적성에 맞다. 무엇보다 내가 손본 글들이 인쇄되어 사람들에게 읽힌다는 사실에 감동을 느낀다. 덕분에 하루하루 그날의 행복을 발견하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얼마 전, 담당하고 있는 소식지의 클라이언트 측에서 메시지를 보내왔다.


[우리 책, 이번 겨울호를 끝으로 지면 발행을 종료하기로 했어요. 대신 웹진 형태로 계속 제작할 계획입니다.]


사실 별것 아닌 일일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이 부상하고 4차 산업혁명이 목전에 다가온 시대. 이미 사람들의 손은 종이책보다 스마트기기에 익숙하니까. 오히려 당연하다고 볼 수 있는, 그리고 예측 가능한 변화였다. 형태가 달라질 뿐 소식지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가해자 없는 배신감과 서운함을 느꼈다. 그래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 [서운하네요. 종이책이 안 나온다니까 ㅎㅎ]하는 답장을, 아쉬움을 애써 감추는 웃음을 클라이언트에게 보내고 말았던 것이다.


신출내기 에디터인 내게 이것은 별일이다. 큰일이다. 유난스러운 감정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내 손으로 이야기의 마지막 지면을 꾸며야 한다고 생각하면 결코 소홀할 수 없다. 그래서 클라이언트가 그동안의 표지들을 활용해 발간 종료 안내문을 디자인해 달라는 요청을 해왔을 때, 고집을 부려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아카이브에는 이미 쓸만한 자료들이 있었지만, 굳이 1호부터 58호까지, 근 10년에 걸쳐 제작된 소식지의 자료를 전부 모았다. 개별 파일을 내려받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렸고 표지 이미지를 추출하고 순서대로 정리하는 데도 손이 많이 갔다. 20장의 표지를 선별하는 작업까지 마쳤을 땐 하루의 반이 훌쩍 지나버렸다. 내 주관과 여분의 노력이 개입한다 한들 더 나은 결과물이 나올 거라는 보장이 없었지만, 별난 수고를 자처한 것은 이 책을 빚어냈던 선배들에 대한 예우이자 나만의 제의였다.


그렇게 추린 자료를 디자이너에게 넘긴 후에 문득, 어떤 영화의 엔딩이 떠올랐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주인공 월터는 LIFE 지에서 16년 동안 근무한 네거티브 필름 관리자다. 폐간을 앞둔 LIFE의 마지막 표지 필름을 분실한 그는 사진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그동안 잊고 있던 꿈을 다시 떠올리고 인생의 다음 걸음을 내딛는다. 영화의 마지막에야 등장하는, 월터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필름에는 유명 사진작가가 월터를 몰래 촬영한 모습이 담겨 있었다. 어느 맑은 날의 오후, 벤치에 앉은 월터가 필름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

영화 속 주인공에 비할바는 못되지만, 나는 그의 삶을 동경한다. 월터의 모습으로 남은 인생을 살았으면 한다. 그래서 난 종이로 된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도착한 독자들이 알아줬으면 한다. 부끄럽지 않은 안녕과 재회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여기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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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제목 '분명 다시 언젠가'는 일본 어쿠스틱 기타 듀오 데파페페(DEPAPEPE)의 2006년 정규 2집 앨범 수록곡에서 따온 것임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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