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을 모르던 시절엔 사방으로 꽃이 만개한 십리 벚꽃길을 구경 다녔다. 하지만 나 혼자 즐기는 데 그렇게 많은 꽃은 필요 없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길을 걷다 유독 눈에 띄는 나무 한 그루면 족하다. 한 번은 밤길을 걷다 골목 어귀에 홀로 선 벚나무 아래 섰는데, 올려다보니 달의 위치가 절묘해서 마치 가지 끝에 벚꽃과 함께 핀 것처럼 보였다. 깊은 산 속 무리 진 나무 위로 달이 떴던들 그만큼 감미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공수래공수거' 그 꽃잎 아래에서, 달빛 아래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든 건 왜였을까.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간다'는 성어에 가까운 불교 경전 말씀이. 벚꽃은 아직 무성하여 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공수래공수거'라니. 뜬금없는 발상이긴 하지만 또 그것을 가지고 글 한 줄 적고 싶어 지다니. 인생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나이에 이토록 심오한 주제의 글을 쓰는 게 부담스럽지만, 인생사 어찌 될 줄 모르는 것이고 머지않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하직하지 말란 법이 없으니, 지금 심정을 스케치하듯 메모하는 정도는 스스로 너그럽게 이해하기로 했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벚꽃과 빈손을 동시에 떠올리는 것은. 꽃은 진 자리에 열매를 남기지만, 그 열매는 꽃의 소유라 할 수 없으니까. 아름답게 피어 뭇사람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꽃이라도 열매에게 자리를 내주고난 뒤에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채 바닥에 나뒹굴고 마는 것이니까.
그런 꽃이 벚꽃만은 아닐 것인데, 유독 봄꽃에 애정이 가는 이유는 그것이 다이어리의 첫 장. 첫 문장을 시작하는 따옴표와 같기 때문이다. 1월 1일에 해는 바뀌었지만, 새로운 시작을 망설이는 이들이 있다. 익숙한 것들을 떠나보내고 새것을 만날 용기가 없는 사람들. 나와 같은 사람들. 그래서 벚꽃은 내게 조용히 속삭였는지 모른다. 이젠 정말 새로 시작해야 한다고.
벚꽃이 지면 우린 다가올 여름과 가을을 향해 달려간다. 관성에서 자유롭지 못해 피는 꽃 하나하나를 살필 수 없고 빠르게 지나는 것들을 되돌아볼 수도 없다. 그러다 마지막, 눈꽃의 계절에 도착하고 나서야 뜀박질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겠지. 겨울 눈꽃이 피는 날에야 두 번째 나들이에 나서겠지.
그러고 보니 하얀 것으로 시작해 하얀 것으로 끝이 난다.
공수래공수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