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내 행동을 들여다보면 모순과 불합리, 비효율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출근 시간에 굳이 먼 길로 돌아 회사까지 걷는 것이나 미용실에서 돈과 시간을 들여 한 헤어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 곧바로 짧게 쳐내는 것 같은 행동들. "왜 그러냐?" 묻던 학창 시절 친구들은 아저씨가 다 된 지금 내 별종짓에 적응해 덤덤한 반응이지만 여전히 "왜 그래요?"묻는 사람들이 있다. 행동의 이유를 찾는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니 그 물음표를 비난할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을 위해서 나는 항상 그럴듯한 이유를 생각해 둔다. 하지만 그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어제도 나는 이유를 모르겠는 행동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왜인지 모르게 기상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져 시계를 보니 새벽 4시였다. 잠시 이불을 뒤척이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근처에 있는 천변 공원은 조명이 켜져 있었지만 드문드문이라 어둑했다. 딱히 운동을 할 생각으로 나온 건 아니라 벤치에 앉아 새카만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따금 새벽을 달리는 사람이 나타나면 괜스레 시선을 바닥으로 옮기고 뜀걸음 소리가 멀어짐을 느끼고서야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는 식이었다.
'여름이었다면 해가 일찍 뜰 텐데... 하지만 어느덧 더위는 가시고 가을, 아니 초겨울에 가까운 날씨니 해는 한참이 지나서야 떠오르겠지' ... ... ... '여름엔 수박을 자주 먹었는데, 겨울이 철인 과일은 뭐가 있더라? 귤이었나? 사과였나 딸기였나?' 하는 생각에 미칠 즈음 때늦은 기상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6시 30분. 자리를 털고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 혹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면, "왜 그래요? 꼬박 2시간을, 잠도 자지 않고 아무도 없는 벤치에 앉아 보내다니. 왜 그런 거예요?" 물었을지도 모른다. 이유랄 게 없지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나는 변경거리를 생각한다. '오랜만에 시리도록 시원한 새벽 공기를 마시고 싶어서요, 그러면 속이 뻥 뚫릴 것 같으니까요' 하는 식의 대답을.
오늘은 오전 근무를 마치고 점심시간에 서점으로 향했다. 사지 않을 책들을 구경하고 거리를 걸으며 삼삼오오 둘러앉아 식사하는 사람들을 스쳐 지나갔다. 회사로 돌아갈 때는 역시 멀리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왜 그래요? 밥도 안 먹고, 쓸데없이 걷기만 했잖아요. 왜 그런 거예요?" 누군가 물을 경우에 대비해 또 한 번 핑계를 생각해 내려던 차에 문득 귀찮음을 느낀다. 다행이랄까, 요즘은 내게 물음표를 던지는 사람이 없다. 홀가분함을 느끼는 한편 서운하고 또 다른 한편에 자유를 느낀다.
돌아오는 주말 아침, 나는 1호선 지하철에 오를 계획이다. 종점에서 종점까지, 다시 종점을 오갈 계획이다. 배가 고파 오면 어딘가에 내려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또다시 지하철에 오를 계획이다. 내 가방 속엔 적당히 두꺼운 책 두 권과 노트, 그리고 필통이 들어있을 것이다. 진자가 왕복운동 하는 것처럼 끝에서 끝을 오가며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사람을 살피기도 하고 천천히 책을 읽기도 할 계획이다.
“왜 그래요? 집에 있는 멀쩡한 책상을 두고, 왜 어수선한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거예요?” 하는 질문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고. 그냥 그러고 싶으니 그럴 계획이다. 돈과 시간에 쫓기는 지독하게 평범한 삶을 살지만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이토록 많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일본 드라마 ‘중쇄를 찍자’에는 내가 좋아하는 대사가 몇 있다.
“살아있길 잘했다. 태어나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