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풀나풀

(2022)

by 양영석

도서관 서고를 둘러보는 건 뭐랄까... 즐거우면서도 안달 나는 일정이다. 빌리려 계획했던 책이 분명 있지만, 막상 몇 페이지 읽고 나서 제자리에 꽂아둔다. 그리고 목적 없이 책 사이를 거닐게 된다. 돈 주고 빌리는 것도 아닌데, 굉장히 오랜 시간 숙고한다. 고민할 게 뭐 그리 많은지 나 스스로도 이해 못 할 때가 많다.


2022년의 어느 날도 서고를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무심코 뽑아 든 책에서 영수증 한 장이 떨어졌다. 2018년 3월 날짜에 출력된 도서대출 영수증. 3년이 넘는 시간 잠들어 있던 그것이 책이 열리자마자 튀어나온 것이다. 손에 쥔 책이 오랜 시간 바깥공기를 맛보지 못했음을 깨닫자 애잔함이 느껴졌다.


<안녕하세요. 봉주르. 여기는 대한민국.>


그 책은 작가로의 경험담과 문장에 대한 철학을 논하는 에세이였는데, 기대했던 이상으로 흥미로웠다. 초심에 불을 지피는 문장들로 가득한 그 책이 실은 내가 선호하는 종류의 책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만남이 더 소중하게 여겨졌다. 영수증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나는 좋은 책 한 권을 모른 채 죽었을 것이다. 새삼 영수증의 주인이 누굴까 궁금했다.


내 책상엔 개인 명함이 한 통 있다. 기업의 홍보물 원고나 논술지도를 의뢰한 이들에게 보일 용으로 만든 것인데, 요즈음은 딱히 줄 사람이 없어 방치되어 있다. 한 통에 200매가 들어있던 그것은 질감이며 두께, 크기가 책갈피로 사용하기 딱 알맞다. 그런데 이제 보니 남은 것이 채 50장도 되지 않는다. 다 어디로 갔는가? 내 이름 석 자가 새겨진 그것들은. 짐작하건대 상당수가 빌려온 책들 사이에 딸려가 도서관 책장에 잠들어 있을 것이다.


읽은 책들을 기록하고 있는 덕분에 마음만 먹으면 명함을 회수하는 건 어렵지 않겠지만 부러 그러지는 않기로 한다. 혹시 아는가? 누군가 그 명함 덕에 나와 같은 책을 읽게 될지. 그리고 내게 감사 인사라도 전해 올지.

아직까지는 발신자를 알 수 없는 메시지를 받거나 전화가 걸려오거나 하는 일은 없다. 하지만 명함 중 몇 장은 분명히 내가 주웠던 영수증처럼. 어느 날, 서고에 나풀 떨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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