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목인 님의 노래 제목에서
집에서 적당히 먼 곳, 몸에 딱 맞는 책상을 찾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고즈넉한 이곳은 빈티지를 표방하며 다소 투박한 분위기라는 것 외에는 특별할 것이 없지만 왠지 모를 아늑함이 느껴지는 묘한 카페다. 책과 노트를 가져와 근래에 읽었던 책의 구절을 필사하거나, 비유와 은유로 가득한 시를 한 바닥 빼곡히 쓴다.
이곳의 조명은 지친 몸을 누이고 단잠에 빠지기에 좋다. 어느 정도 몽롱한 상태, 꿈과 생시의 경계를 아슬아슬 걷다 보면 눈앞에 어떤 환영 같은 것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 속에서 나는 펜을 쥐고 있고 맞은편의 무언가는 내 펜촉의 움직임에 울고 웃다가 마침내는 나에게 다가와 부드럽게 안긴다.
영감은 그 순간 떠오른다. 물리법칙에 둘러싸인 공간에서는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신비한 무언가가 내 영혼을 관통하고 평소엔 들을 수 없었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찾아온다. 내 펜은 주둥이를 놓아버린 고무풍선처럼 이리저리 움직이며 내 속에 있는 무언가를 쏟아내고 결국에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곳에 툭, 하고 착륙해 마침표를 찍는다. 지금 당장만 해도 그렇다. 그저 테이블에 앉아 은은한 조명에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사색을 즐길 계획이었지만, 나도 모르게 노트 한 페이지가 잉크로 가득 물들었다.
황현산 선생의 책 [우물에서 하늘 보기]에는 작가가 된다는 것에 대한 작가의 철학이 담긴 구절이 있다 작가는 의사나 판사 변호사가 되는 길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무언가로 자신을 일깨우는 계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나의 경우는 어린 시절 한 소녀와의 추억이 그 계기라고 할 수 있겠다. 전학을 가게 되어 헤어지게 된 소녀에게 한 장 편지를 쥐어주었다. 순수했던 둘만의 이야기를 고작 한 장 편지에 다 담을 수 없었지만, 소녀는 고맙게도 눈물로 그 답을 해주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때의 감정과 기억은 사라져 버렸다. 어느새 잔향조차 남기지 않고 날아가버렸다. 가수 김목인의 '뮤즈가 다녀가다'라는 노래에 등장하는 뮤즈가 그러했던 것처럼, '인생의 정말 좋은 것들은 억지로 부를 수는 없는 법'이라는 가사가 내가 느낀 무언가를 어렴풋이나마 묘사한다.
비록 옛날의 편지는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지만 뮤즈는 가까운 곳에서 갑자기, 그리고 의외로 자주 찾아옴을 깨닫는다. 길을 걸을 때, 혼자 택시 뒷좌석에 앉을 때,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힘겹게 귀가할 때, 영화가 시작하기 전 잠깐의 어둠 속에, 오래전에 들었던 노래를 다시 들을 때, 책갈피를 뽑을 때, 심지어 꿈속에서도.
때문에 나는 항상 준비된 사람이고자 한다. 뮤즈가 다녀갈 순간에 내 손엔 펜이 들려있고, 눈앞엔 낙서 투성이 노트가 펼쳐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