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대청소를 마치고 나른한 몸을 비스듬히 기울여 쉬고 있는데 아버지의 전화가 걸려왔다. 용건인즉, 몇 달 만에 본 내 얼굴이 의기소침해 보여 괜스레 신경이 쓰인다는 거였다.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인 아버지와 그를 빼다 박은 나 사이에 '괜찮니?' '힘내라' 하는 식의 대화는 오가지 않았지만, 그 전화 한 통만으로도 당신의 마음쓰임이 느껴져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버지는 당신의 잘못이 하나도 없음에도 늘 내게 미안함을 느끼는 듯하다. 정말로 그럴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부모란 존재는 언제까지고 당신의 자식들에게 그런 부채감을 느끼며 살아갈 운명인가 싶다. 날 바라보는 눈에 실린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자, 내가 아버지에게 받은 것들. 그래서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적어보겠노라고 마음먹었다.
어느덧 30대 중반을 지나가는 내가 요즈음 가장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느 모임에 가서도 꿀리지 않은 머리숱이다. 당장 친구들만 봐도 이마가 넓어지고 정수리가 휑해진다는 고민을 털어놓는데, 거울에 비친 내 정수리는 숯검댕을 칠해놓은 것처럼 새카맣다. 게다가 모발도 굵어서 여간해서는 허연 두피가 바깥으로 드러날 일이 없을 것 같다. 40대 이후의 남자 외모는 머리숱의 많고 적음에서 8할 이상의 점수를 먹고 들어간다고 하니, 어린 시절 못생겨 겪었던 설움을 중년이 되어서는 설욕할 수 있을 걸로 기대한다.
다음으로 감사히 생각하는 것은 어린 시절의 매주 화요일이다. 당시 부모님은 내가 학교에서 받아온 성적표에 큰 신경을 쓰지 않으셨다. 내가 몸 건강히 잘 뛰어놀고 무사히 귀가하는 것만 해도 충분하다 하시면서 매주 화요일이면 나를 동네 서점에 데려갔다. 서점을 둘러보며 내가 읽고 싶어 하는 책, 혹은 아버지 당신께서 생각하시기에 내가 꼭 읽어야 할 책을 손에 쥐어주었고, 내 방에 연습장이며 이면지를 그야말로 무한정으로 가져다주셨다. '종이는 안 아껴도 된다' 말씀하신 덕분에 나는 많이 읽고 많이 쓰는 유년을 보냈다. 덕분에 그때 그 꼬맹이는 20년 뒤 단편소설로 신인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왔고, 그것을 바탕으로 인생 제2막을 열 수 있었다.
그리고... 아니, 고마운 것들을 일일이 열거하자니 이 밤이 다 지나가도 부족할 것 같으니 짧게 쓰자면
'아는 얼굴을 보면 멀리서부터 인사할 준비를 해라'
'음식을 남기지 말되, 과식하지 말아라'
'입에 음식이 든 채로 말하지 마라'
'눈물을 자주 보이지 마라'
'자기 물건을 잘 간수해라'
'항상 주변을 잘 살펴라'
'힘없는 사람을 돕고 불의를 참지 마라'
'정의롭게, 정직하게 살아라'
내가 커감에 따라 일러주신 것들. 그 모든 선물이 모여 1989년 2월 21일 오후 11시경에 태어난 양영석이란 남자아이는 한 사람 몫의 밥벌이를 하고, 때론 베풀기도 하면서 인생을 헤쳐오고 있다. 힘든 일이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 아쉬운 과거가 없다고 한다면 그 역시도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당신들 덕분에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며, 욕심에 매몰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니 부디, 미안한 감정일랑 그만 접어두시기를.
2026년의 내 바람이자 소원이다.
아! 이 글을 쓰면서 부모님의 젊었을 적 사진을 꺼내 보고 든 생각. 당신들의 미남미녀의 유전자를 왜 여동생에게만 물려주셨는지, 그 점은 좀 서운하다.
"아버지, 다른 건 다 좋습니다. 그런데 제 얼굴에도 신경 좀 써주시지 그러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