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눈물을 흘렸다. 헝클어진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난감했다. 4남매가 있었지만 치매 걸린 아버지를 모시겠다고 나서는 자식은 아무도 없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큰아들 집에서 살던 아버지는 6개월을 버티지 못했다. 오빠는 형제들을 소집해서 가족회의를 열었다. 며느리만 보면 안아주고 뽀뽀해 달라는 아버지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올케가 더는 같이 살기 어렵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이상한 행동에 올케가 날마다 우는 것을 보기 어렵다는 오빠의 하소연을 듣고 보니 오빠 가족도 이혼 직전에 있다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둘째 아들에게 모시기를 부탁하자 부부가 가게를 하기 때문에 절대로 모실 수 없다는 답변이 나왔다. 막내 남동생도 단칸방에서 아버지를 모시는 건 어렵다고 했다.
그날 당신의 문제로 자녀들이 모여서 심각한 회의를 하는 그 시간에도 배고프다고 밥 가져오라는 아버지의 고함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아버지 방에 갔더니 속옷만 입고 빨리 며느리 들어오라고 소리치는 모습을 보고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친딸이 보기에도 납득하기 어려운 민망한 언행을 하는데 며느리가 함께 산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았다. 젊었을적 점잖고 예의 바르던 아버지의 모습은 간 곳 없고 아무 곳에나 침을 뱉고 며느리가 보건 말건 침대 위에서 소변을 보는 식이었다. 아버지가 갈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여자는 친정에 다년 온 후로 몇 날 며칠 잠을 못 잤다. 달라진 아버지의 환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민하자 남편이 여자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가장 좋은 방법은 딸이 모시는 거라면서 아버지를 모시러 가자고 했다. 아버지 처지를 생각하면 딸이 모시는 게 맞는 말이지만 나서기 어려웠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둬야 하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약 없는 희생의 날을 보낼 수도 있을 거라는 얄팍한 마음에 선 듯 나서지 못하고 망설였다. 갈 곳 없는 아버지를 모른 체하는 것은 부모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남편의 말에 중간에 못 모신다고 할 거면 처음부터 시작하지를 말자고 못을 박았다. 남편은 부모가 어린 자식 키우기 힘들다고 버린 것 봤냐며 아이 수준으로 변한 아버지 어린아이로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자고 했다. 결국 아버지를 모셔오기로 하면서 형제들에게 조건을 달았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둬야 하기 때문에 아버지 생활비를 조금씩 보내 달라고 했다. 부양의무책임을 피하게 된 그들로서는 그렇게 하겠다고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아들들 입장에서는 버리지 않고 모셔 갈 곳이 생기자 조마조마하던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이다.
처음부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했지만 현실은 그 이상으로 가혹했다. 밤에 자다가도 침대 위에서 벽을 향해 소변을 보는가 하면 옷을 입은 채로 침대 시트를 밤마다 몽땅 버려놓기도 했다. 침대시트를 교체하다가 물컹거리는 물체에 밟혀서 보면 침대 모서리 쪽에 변을 봐 놓기도 했다. 기저귀를 채워 놓으면 조각조각 찢어서 침대 위에 종이부스러기가 솜처럼 하얗게 널려 있었다. 때로는 기저귀를 빼서 머리에 쓰고 잘 때도 있었다.
밥을 먹고 난 후 다시 배고프다고 부엌에서 그림자처럼 서성거렸다. 삼겹살을 구워서 먼저 드리고 난 다음 밥을 먹으면 음식 먹는 여자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길과 마주치기가 겁났다. 왜 그렇게 보느냐고 물으면 또 먹고 싶어서 그런다는 말을 듣고 쌈과 고기를 드리면 끝도 없이 드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측은하게 바라보곤 했다. 단순히 많이 드시고 옷에 변 본다고 먹는 것까지 제한하려 한 자신을 질책하다가도 아버지의 이상행동에 울컥울컥 화를 내기 일쑤였다. 생활리듬이 깨어지자 마음도 몸도 서서히 지쳐갔다. 여자 혼자 감당하기에는 한계점에 다다랐다. 몸이 힘든 건 그런대로 참을 수 있는데 딸을 여자로 보는 데에는 참을 수 없는 분노에 가까운 울화통이 터져 나왔다.
“너하고 하룻밤 자면 참 좋겠다.”라고 상상도 못 했던 그 말에 제정신이 아니라 돌아버릴 것 같았다.
밖에는 비가 추적거리며 내리고 있었다. 한없이 우울해진 마음을 가누기 힘들었다.
“어머니, 아버지를 두고 왜 그렇게 빨리 돌아가셔서 나를 이리도 힘들게 하나요?”
소주 한 병 가까이 마시자 울컥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퇴근한 남편은 흐트러진 소주병과 눈물로 얼룩진 아내 얼굴을 보며 아버지한테 무슨 일 있었냐고 물었다. 아버지 모시는 건 내 힘으로는 못하겠다고 말하자 그런 각오 없이 모실각오 했느냐며 남의 말하듯이 하는 남편에게 불덩이 같은 분노를 쏟아내었다.
“차라리 아버지에게 소리라도 지르고 욕이라도 하라고. 아버지의 이상행동에도 당신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어. 내가 이렇게 힘든데 무관심에 가까운 당신은 도대체 뭐야”
“당신 힘든 걸 내가 왜 모르겠어? 내가 부녀 사이에 시시콜콜 끼어들면 당신 마음이 편하지는 않겠지. 아버지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갈 곳 없는 아버지를 못 모신다는 것은 자식의 도리를 저버리는 행위 아니겠어? 당신 고생한 것 알면서도 내가 나서서 당신 편에 서서 환자인 아버지에게 대적하면 당신 마음이 편하겠어?”
“아버지가 죽기 전에 내가 먼저 죽을 것 같아” 울부짖는 아내 어깨를 껴안은 남편의 팔을 거세게 뿌리쳤다. 세상 사람들은 다 행복하게 사는데 왜 자기만 무거운 짐을 지고 비틀거리며 힘겹게 살아야 하는지 억울하고 분했다. 이렇게 힘들게 사느니 차라리 세상 끝내버리자 하고 약국을 돌아다니며 수면제를 사서 모았다. 마지막으로 아버지 얼굴이라도 보려고 방문을 열었다. 침대 위에서 세상모르고 평화롭게 자는 아버지의 모습은 어린아이 같았다. 어린 딸을 끔찍이도 사랑하던 아버지, 외동딸이라고 끝없이 사랑해주던 아버지와의 추억이 바람처럼 스쳐갔다. 볼에 뽀뽀해 주고 쓰다듬어 주던 옛 모습이 떠올랐다. 제풀에 꺾여 현실을 도피하려고 죽음을 선택하려는 어리석음을 느끼는 순간 냉정한 판단이 들었다. 생각다 못해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정신과의사는 부친이 정상적인 사고가 아니라 아이 같은 상태에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성욕만 남아있기 때문에 환자에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으니 크게 상심하지 말라고 했다. 그제야 냉정을 되찾고 환자인 아버지와 정상인 아버지의 사이에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아버지께 인사 온다고 집에 형제들이 가끔 모였다. 오빠와 동생들은 몇 달 동안 잘 보내주던 생활비를 언제부터 안 보내기 시작했다. 집에 올 때는 과일 한 상자 사 온 걸로 끝내려 한 것도 여자는 섭섭했다. 그들은 놀러 오듯이 얼굴을 내밀고 가지만 형제들이 방문하면 식사준비를 해야 하는 가사노동의 강도는 높아가고 몸은 지쳐갔다. 그날도 아버지는 따뜻한 햇볕이 내리는 아파트 벽 앞에 서서 볕을 쬐고 있다가 사람들이 지나가는 길목에서 바지를 내리고 아파트 외벽에 대고 방뇨했다. 이를 지켜본 주민이 이런 지각없는 행동으로 인해 주변이 지저분해지면 아파트값 떨어진다고 소리를 지지르는 바람에 주민과 남동생이 싸움이 붙었다. 사람 사는 동네에 치매로 분별력 없는 분이 소변 좀 보았기로 집값이 떨어지면 얼마나 떨어지냐며 따지고 들었다. 하지만 소변을 본 잘못을 저지른 아버지는 두 사람 싸우는 걸 남의 불난 집에 불구경하듯 지켜보면서 재미있는 표정으로 아들과 싸우는 여자 얼굴 한번 아들 얼굴 한번 번갈아 보며 실실 웃고 있었다.
그 무렵 사촌 언니가 작은아버지를 뵙겠다고 집에 들렀다. 몸도 마음도 어린아이로 돌아간 아버지의 모습을 본 후 언니는 돌아가면서 자꾸 씩 웃는 게 아닌가. 언니에게 무슨 좋은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작은아버지 아직도 건강한 것 같아. 나를 보더니 뽀뽀 한 번만 해주고 안아 달라고 조르더라. 내가 아직 남자를 몰라서 뽀뽀 못한다고 했더니 너는 남자를 모른다면서 시집가서 애도 낳고 잘 살면서 그까짓 뽀뽀 한번 안 해주냐고 섭섭해하시더라.”
여자는 그 후로 도덕적 관점에서 바라보던 아버지를 환자의 관점으로 보기 시작했다. 며느리에게 뽀뽀해 달라고 조른 것도, 딸이 아닌 여자로 본 것도, 조카에게 안기고 싶어 한 것도 관심을 받고 싶은 사랑에 목마른 환자였다는 사실에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여자는 아버지가 아닌 환자와 동거 중이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
정신줄을 놓고도 비교적 건강하던 아버지는 노환으로 병석에 누웠다. 세상떠날 준비를 하는 아버지는 생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딸의 손을 꼭 쥐고 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임종을 기다리는 자녀들 앞에서 하늘나라로 긴 여행을 떠났다. 아버지는 여자에게 고통만을 주고 가신 게 아니었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가 생기전 아버지는 세상짐을 벗고 가족이라는 따뜻한 마음을 선물로 주고 하늘나라로 홀연히 떠났다. 마침내 여자에게 자유를 허락했다.
“아버지! 이제는 아버지를 이해합니다.”
지난날을 회상하는 여자의 얼굴에 한때는 자신을 힘들게 했던 아버지를 그리는 애잔한 마음에 눈가에 이슬이촉촉이 내린다.
*이 글은 '노인장기 요양보험' 제도가 생기기전 동료요양보호사 K씨가 아버지를 모실때의 일을 구술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