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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론의 꽃 Jan 12. 2024

내일일은 난 몰라요


  떨떠름한 기분으로 3층을 향했다. 2층 여자병실에서 근무하던 요양보호사 한 팀이 남자병실이 있는 3층으로 근무지가 바뀌었다. 3층 근무는 요양보호사들이 기피하는 층이다. 체중이 있는 남자 환자들을 케어하기에는 힘이 달릴 뿐만 아니라 간혹 폭력성이 있는 할아버지의 발길질이나 주먹세례를 받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층 근무지로 한 번씩 순환하기 때문에 한 팀씩 자리를 바꾸자 요양보호사들의 들의 불만 가득한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익숙한 곳에서 일하다가 낯선 곳으로 가서 적응기간 동안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어차피 한 곳에서만 일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고 대상자를 골라서 일하는 것도 아니라 현장에서 부대끼며 적응해 가는 수밖에 없으니 피할 수 없으면 차라리 즐기는 마음으로 일할 수밖에......

 넓은 거실한쪽 화분 속의 나무들이 푸른 잎을 자랑이라도 하듯 즐비하고 놓여있다. 거실 한쪽에 할아버지들이 모여 장기를 두고 있다. 그 옆에서 판을 이리저리 살피며 훈수를 하는 사람, 리모컨을 들고 TV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는 사람, 운동기구를 이용하여 운동하는 사람, 자유로운 분위기는 바깥세상의 축소판 같다.

 키가 180cm쯤 보이는 덩치 좋은 남자 장00은 비교적 건강한 칠십대로 보였다. 복도를 왔다 갔다 하더니 어디로 갔는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앞방 병실 남자의 떠나갈 듯한 고함소리가 울렸다. 깜짝 놀라 뛰어갔더니 장00이 남의 침대에 드러누워서 꿈쩍도 하지 않자 그 침대 환자는 자신의 영역이 침범당했다고 생각하고 내 자리 내놓으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지나다니다 아무 방에나 들어가서 빈 침대가 있으면 드러눕는 장00은  간식이 눈에 띄면 보이는 대로 주머니에 넣어오곤 했다. 지남력 장애가 있어서 방을 못 찾고 늘 헤매면  그의 침대에 데려다주곤 했다. 그 남자의 옆 침대 최 할아버지는 그 남자가 꽤 신경 쓰이는듯했다.

 “저 사람 보기는 멀쩡해도 속은 시커먼 순 도둑놈 같으니께 친절하게 하지 말아유. 남의 물건도 잘 훔치는디 조심혀유”

하루 종일 이방 저 방 다니다가 쫓겨 오는 일이 그의 하루생활이다.  그렇게 말한 최할아버지는 칫솔을 상의 주머니에 만년필처럼 꽂고 다닌다. 장00에게 양말 잃어버릴까봐 그런지 양말을 몽땅 꺼내서 침대 시트 속에다 감춰두고 맨발로 걸어 다닌다.

 오후간식으로 바나나가 나왔다. 간식을 배식 하려고 식탁 앞에 놓아둔 바나나를 장00이 한  웅큼 집어가자

“야 이도둑놈아 너 혼자 처먹을래?” 최 할아버지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요란하다. 움찔 놀란 장00손에 들린 바나나가 금방 바닥에 떨어질 것 같았다. 휠체어를 타고 신나게 돌아다니는 K할아버지가  새가 벌레를 낚아채듯 바나나 하나를 손으로 잡아채서 잽싸게 먹어치웠다.  K할아버지는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아온 유학파 출신 전직대학교수다. 그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가끔 할머니들 병실로 돌진해서 할머니들을 놀라게 하곤 했다. 밤에도 자지 않고 휠체어로 돌아다니다가 지쳐야 잠이 든다. 자다가도 잠이 깨면 “배고파 빨리 밥 줘” 먹을 것이 나올 때 까지 소리를 질러서 같은 방 동료들을 몽땅 깨워놓기도 한다.ĺĺ 잠잘 때도 기저귀를 뜯어놓아 침대 밑이 하얀 솜으로 가득 할 때가 있었다. 그가 지닌 지식도 치매 앞에서는 포맷된 컴퓨터에 불과했고 그의 남은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구부정한 모습으로  내 옆에 앉아있던 정00은 언제나 싱글거리며 웃는 얼굴이다. 깔끔한 외모로 봐서 고생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어르신은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

 “전립선이라고 알아요?”

 “여자한테 없는 전립선을 어떻게 알아요?”

 상황에 따라서 예민한 말이 나올 것 같으면 미리 연막을 쳐놓는다.

밑도 끝도 없이 전립선이 안 좋아서 입소했단다. 멀쩡해 보여도 병원에 간다며 옷 보따리를 매일 싸놓는다.  

  “어르신 젊어서는 무슨 일 하셨어요?”

 “국회위원J씨 비서했어요.”

 “국무총리까지 지낸 J씨 비서 했다고요? 비서하기 전에는 뭐 하셨는데요?”

 “대학교 다닐 때 깡패질 했지요.”

 깡패질 한 사람이 어떻게 국회위원 비서 할 수 있냐고 반문하자 그 시절에는 가능 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며칠 있다가 예약한 날에 병원에서 전립선 수술 받으러 간다고 말했다. 식사 시간에는 동료들 마실 물을 따라놓고, 혼자 힘들게 휠체어로 이동하는 할아버지들을 밀어다 주는 일도 하는 봉사정신이 투철한 할아버지다. 가족과 떨어져서 고생한다며 위로해 준 요양보호사 G를 잘 따른다. 아무도 안 볼 때 빵을 가져다 G손에 슬쩍 쥐어주며 씨익 웃고 가곤 한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누군가를 계속 찾는  K할아버지는 “도우미 여기가 어디요. 내가 왜 여기 있어요. 나는 언제 집에 가요?”

요양보호사를 도우미라고 부른다. 큰 체구에 목소리도 크다. 말을 하는 그는 지치지도 않은지 누군가를 연신 불러댄다.

지저귀착용하고 있는 것을 인식하지 못 하고 소변처리가 걱정 된지 “도우미 나 오줌을 누어야 하는데 어떻게 누어요?”  

 “니 마음대로 하세요.”

 듣기가 지겨운지 지나가던 기억력이 오락가락한 옆방 할아버지가 쏘아주듯이 한마디 툭 던졌다.

 거실에서 자전거용 운동기구를 사용하던 할아버지는 ‘가요무대’ 프로그램을 보고는 TV앞으로 가더니 트로트가수가 부른 노래에 맞춰서 큰 소리로 흘러간 유행가를  흥겹게 따라 부르고 있다. 활짝 핀 꽃처럼 환한 모습으로 노래 부르는 그의 모습은 그가 누릴 수 있는 권리이며 가장 기본적인 작은 행복이다.

거실 한쪽에  입소한지  한달 된  혼자  앉아있던 할아버지는 눈을 지긋 감고 기도 하듯이 가스펠송을 부르고 있다.  독실한 크리스찬인 그가 마음을 다스리는건 찬송가를 부르며  마음의 위로를 받는것 같다.



 미국의 목사이자 작곡가인 아이라 스탠필작사의  '내일 일은 난 몰라요'를 슬프게 부른다. 내일을 알수없는 자신의 운명을 노래로 표현한다.


내일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불행이나 요행함도 내 뜻 대로 못해요

험한 이길 가고가도 끝이 없고 곤해요

주님예수 날 붙드사 내손 잡아주소서

내일일은 난 몰라요 장래일도 몰라요

아버지여 날 붙드사 평탄한길 주옵소서.


 가족과 떨어져 내일 일을 알 수 없는 그는 평탄한 길을 가고픈 소망을 노랫말로 표현한 것일까? 그렇다 내일일은 아무도 모른다. 요양원은 그들 스스로 선택한 곳이 아니다. 다만 현실과 과거를 구분하지 못하고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 분들이 함께 사는 공동체에서 잉여부분의 삶을 이어가는 요양원이라는 시설에서 벌어진 일들의 한 단면이다.

그들은 별나라에 온 것도 아니고 이상한 사람들의 모여 있는 수용소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가장 원초적인 생각과 꾸밈없는 모습으로 거침없이 살아간다. 누구를 속이지도 않고 포장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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