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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론의 꽃 Jan 19. 2024

할머니의 곰 인형

 "할머니 뭐 하세요?"

 "응 우리 딸이 배고파하기에 젖 먹이고 있어"

 할머니는 오늘도 곰 인형을 끌어안은 채 가슴을 풀어헤치고 젖을 먹이고 있다.

치매 할머니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에 민감하게 대하거나  그게 아니라고 현실을 일깨우기보다는 때로는 눈높이를 할머니들에게 맞춰 말벗이 되어 주면 할머니들이 편안해할 때가 많다. 삶의 끝자락에서 어쩔 수 없이 요양원에 맡겨진 채, 과거 속에서 헤매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다. 가족들과 같이 생활하다가 서로 회복할 수 없는 많은 상처를 가슴에 안고  살아가고, 가끔씩은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놓고 끄는 것을 잊어버려 화재의 위험에 노출된 일도 더러 있다. 무심코 집을 나섰다가 길을 잃고 헤매다 파출소에서 온 연락받고 한밤중에 찾아온 보호자들도 가끔씩 있다. 도저히 관리가 안 되면 마지막 종착지가 요양시설이다.

 할머니는 발병하시기 전에 기록했던 일기장을 항상 가슴에 품고 다닌다. 물리치료받으러 갈 때는 병실에 놔두고 가자고 하면 "이 장부 잃어버리면 큰일 나, 외상장부라서 잃어버리면 외상값 못 받아” 도대체 무슨 노트 길래 그런가 궁금해서 내용을 살펴봤다. 치매 앓기 전에 기록한 일기장이었다.

 대상자들을 돌보는데 환자들의 생활을 어느 정도 알면 돌보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예민한 부분이 아니면 조금씩 물어보기도 한다. 남의 일기를 보는 것은  할머니께는 죄송했지만 할머니의 어느 정도의  과거를 알면 감정소통이 원활하고 할머니 마음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스스로 자기 합리화를 시켰다.


 남편이 돌아가신 지 20년도 넘었고 혼자 생활하시다가 요양원으로 오시게 됐다는 아들의 얘기를 들었지만, 할머니는 지금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것 같았다. 이미 밝혀진 비밀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한글보다는 한문을 많이 사용했고 항상 현실에 감사하는 내용으로 글을 썼다. 젊어서는 주변 분들을 잘 챙기고 많이 베푸는 마음이 따뜻한 분 같았다.

 할머니는 휠체어를 타고 혼자서도 잘 다니셨다. 병실 복도에 나왔다가 만나는 사람을 붙들고 우리 집을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냐며 묻기도 한다. 오전시간에는 화장실 앞에서 내가  수돗물 사용 하는 것을 감시하기도 한다. 화장실은 휠체어가 바로 들어올 수 있게 턱이 없어서 환자들이 드나들기 편했다. 수돗물 흐르는 소리만 나면 곧바로 화장실로 쫓아와서 나를 째려보며 "젊은 엄마! 수도요금이 너무 많이 나와서 그러는데 물 좀 아껴 써!" 나를 젊은 엄마로 불렀다. "할머니! 수건 빨래 끝나면 물 안 쓸게요"하면 휠체어를 휙 돌리면서 "속에서 천불이 나서 못 살겠다." 하면서 나간다. 유난히 물 쓰는 것에 민감하게 나온다.


 손 씻을 때도 가만히 물을 틀어놔도 곧바로 쫓아 와서 나를 째려보고 있을 때가 많았다.

 할머니의 손과 발은 관절 마디가 뒤틀려 심하게 변형돼 있었다. 얼굴은 울퉁불퉁 콩알 같은 작은 멍울이 잡힌다. "할머니 얼굴이 왜 이렇게 울퉁불퉁해요?"

 “젊어서 보톡스 주사를 많이 맞아서 생긴 부작용이야" 젊어서는 꽤나 멋을 부렸던 것 같았다.

"젊었을 때 춤을 배워서 춤도 잘 추는데 지금은 다리가 아파서 서서 춤출수가 있어야지? 젊은 엄마도 춤 배워봐 좋아"

"할머니! 그러다가 춤바람 나면 어떡해요"

"춤춘다고 다 춤바람 난 것 아니야 그렇게 잘못생각하고 행동한 사람들이 잘 못된 거야"

젊어서는 멋 좀 부리고 삶을 즐길 줄 아는 멋쟁이였던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어디 계셔요?"

 “응 우리 아저씨? 할아버지 아니고 아저씨야 출장 갔어."

"아저씨 잘 생겼어요?"

 "준수하게 생겨서 주변에 여자들이 많이 있었지"

과거를 어렴풋이 얘기를 하시곤 했다.


 아들이 가끔 면회를 오면 아들 앞에서는 아무 말도 안 하신다. 아들에게 짐이 된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아들은 올 때마다 과일과 과자를 사놓고 가지만 어머니를 직접 모시지 못한 죄책감 때문인지 마음 아파한 것 같았다. 돌아갈 때는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놓지 못하다가 병실을 나가면서는 몇 번씩 뒤 돌아보고 무거운 발걸음을 돌린다.

"내가 죽어야 자식들 고생 안 시키는데"

할머니는 자책 섞인 푸념을 늘어놓는다.

 할머니에게도 지남력 장애가 있지만 아들이 오면 거의 실수를 안 한다. 아들 입장에서는 어머니의 치매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

병원에 입원하신 분들의 대부분이 치매가 있어도 자녀들은 잘 모르는지 자기 부모는 치매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어쩌다 면회 온 자녀들에게 피해 준다고 생각해서인지 자녀들 앞에서는 되도록 말을 아끼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도 아기가 아파서 소아과에 간다며 곰 인형을 가슴에 품고 같이 병원에 가자며 내손을 끌고 어디로 가야 되냐기에

 "할머니! 아기가 피곤해서 잠들어 있으니까 조금 있다가 아기가 깨면 데리고 같이 갑시다." 할머니에게 맞장구를 쳐주어서 잠시 고민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도 그때그때 일을 해결해 나가는 방법이었다.

 조그만 손가방에는 어디서 구했는지  곰 인형을 꾸미는 머리핀과 구슬목걸이가 들어 있었다. 할머니의 소중한 물품 목록 중 한가지다. 곰 인형을 가슴에 안은 채 잠들어 있는 할머니의 모습은 그녀가 오늘 누릴수 있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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