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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론의 꽃 Jan 26. 2024

꿈속의 아들


 아침시간 바쁘게 오가며 어르신들 세안을 돕는다. 따뜻한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준다.

세수 대야를 들고 다른 방으로 가려고 막 나오는데 종희할머니의 목소리가 나의 뒷덜미를 끌어당긴다. 좀처럼 말하는 법 없이 침대에 누워 눈만 감고 있는 분이 웬일인가 싶어 옆에 갔다.

 “아줌마 아들 낳았어.”

 “아들? 어디 있어요.”

 “데리고 가버렸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들 낳은 건 뭐고 데리고 가버린 건 뭔지 무슨 말을 하는지 의아하게 할머니를 보자, 옆에 있던 요양보호사 C가 그 말뜻을 알아들었다.

아픈 과거를 가슴속에 품고 있는 할머니는 꿈속에도 그리던 보고 싶은 아들이 있다. 젊은 날 미혼모라는 꼬리표를 달았던 그녀는 어느 날 당신의 살아온 아픈 과거의 행적을 고백했다. 그녀는 대학생과 연애를 하다가 덜컥 임신을 했다. 집안과 신분의 차이가 있어 남자 쪽의 반대가 심했다. 남자의 집안에서는 절대로 며느리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이었다. 아이를 낳자 아이의 할머니가 아이를 강제로 빼앗아 가버렸다. 서로 사랑했지만 결혼이라는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자 남자의 사랑도 서서히 식어갔고 어느 날 이별을 통보 한 후로 사랑하는 남자도 아이도 보지 못하는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다. 더구나 남들이 손가락질하는 미혼모가 되면서 세상은 그녀를 향해 손가락질 하였다. 순탄치 않은 운명을 거부하지 못 하고 홀로서기 하기란 추운 겨울날 맨몸으로 칼바람 앞에서야 했다. 휘청거리며 무너지는 자아를 바로세우려 자신을 향해 피나는 채찍질을 했다. 


  그 후로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지만 5남매를 낳고 살다가 바람처럼 떠돌던 남편은 자녀들과 아내를 버리고홀로 떠나버렸다. 결국 집안의 가장이 되어 자식들을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면서 살았다. 식당을 운영했다. 막내딸을 업고 한식집을 해서 돈도 꽤 많이 벌었다. 먹고살기에 급급하던 시절을 넘어 경제적 안정이 됐지만 그녀는 남들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과거의 아픈 상처를 안고 살았다. 꿈에라도 보고 싶은 아들을 한 번이라도 만나고 싶지만 희망은 그녀의 고달픈 삶의 행로에서 언제나 비켜갔다. 워커에 의지해서 방안을 돌던 그녀는 저녁놀이 붉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며 동료들에게 말했다. 이제는 죽을 날만 기다리는 몸인데 그때 낳은 아들이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소식이라도 알고 싶다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저문해가 자기의 운명처럼 느껴졌는지 마지막 소원을 말하는 그녀의 말에 방안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첫사랑에 실패하고 두 번째 만난 남편과도 해로하지 못하고 삶의 마지막을 요양원의 침대에 누워있는 처지가 지난날의 아픔을 아로새기며 아픈 과거를 얘기하는 모습에 가슴 아팠다고 C가 말했다.

날이 갈수록 야위어진 몸은 정신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다. 혼미해져 가는 정신세계를 붙잡아 두려는 것 같다. 그녀는 불행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잠재된 과거의 아픈 기억을 무의식 중에 슬픔을 토해내고 있다. 딸이 면회 오면 이유 없이 트집 잡는 자식들을 못 마땅해한다. 날이 갈수록 말라가며 기력 없는 어머니를 보고는 그 탓을 요양보호사들에게 화풀이 식으로 짜증 부리면 감고 있던 눈을 슬며시 뜨고  “그만해”  한 마디 하고는 말문을 닫는다.

 질곡의 세월을 살아온 그녀는 5남매에게는 훌륭한 어머니였지만 여자로서 행복이라는 게 뭔지 모르고 아픈 세월을 묵묵히 참고 견뎌온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지 지그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다.


 다음날 아침에 출근해 보니 그녀의 침대가 비어있다. 병원으로 옮겼단다. 일주일 지난 후에 아들과 딸들이 어머니의 유품을 챙기러 왔다. 폐렴으로 병원에서 세상 떠났다며 눈물을 훔치는 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편안한 것만 추구하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비교해 본다. 운명의 수레바퀴에 떠밀려 살아온 그녀, 비몽사몽 보고싶던 아들을 그리며 중얼거리던 그녀는 이제는 영원한 안식을 찾아 삶의 고통에서 해방됐다.과거의 아픔속에서 맴돌던 그날의 운명을 잊어버리고 참된 휴식이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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