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 쥐 죽은 듯 고요한 밤이다. 거실 한쪽을 비취는 야간 등이 하얀빛을 쏟아내고 있다. 나는 긴 간이의자에 앉아서 피곤한 몸을 기대고 있었다.
“흐윽” 하는 참았던 울음소리가 잇몸사이로 흘러나왔다. 박 할머니의 침대에서 나온 흐느낌이었다. 낮부터 우울하게 앉아서 뭔가 골똘히 생각하던 모습이 자신의 슬픈 감정을 누르려했던 표정이었다. 일어나 가보려다 슬픔을 참고 있다가 동료 할머니들이 자는 시간에 혼자만의 감정에 빠져있는데 방해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한참 후에 할머니침대 옆으로 다가가서 손을 꼭 쥐어 주었다.
까다로운 할머니라고 동료 요양사들이 꺼리는 할머니다. 파킨슨씨병으로 심한 떨림 때문에 보행이 자유롭지 못해서 거의 침대에서 생활하는 게 전부다. 가끔 휠체어 타고 프로그램에 참여하지만 동료 할머니와도 부딪치는 일이 심심찮게 있었다. 1남 3녀를 뒀지만 삶의 마지막을 요양원에 의탁한 몸이라며 자식들에 대한 섭섭함을 푸념하곤 했다.
그 시절 모두가 배고픈 삶을 살아왔지만, 살아온 과거가 평범치 않은 할머니의 과거 얘기를
듣고는 되도록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토록 미워했던 남편마저 세상 떠나자 아들과 함께 사는 삶이 늘 불편했던 것 같았다. 유산으로 소형아파트 한 채를 남기고 하늘나라로 먼저 떠난 남편이 지금까지 생존했다면 요양원으로 오는 일은 없었을 거라며 먼저 떠난 영감님을 원망스러워했다.
젊은 시절 남편은 고물상을 해서 얼마간의 돈을 벌자 사업을 확장한다며 친구와 성남에서 동업을 했고 사업장과 집이 멀어 출퇴근이 불편하자 사업장 근처에서 혼자생활 하면서 가끔 집에 들르는 정도였다. 세월이 지나자 집에 오는 날이 늘어지더니 아예 모습을 보이지 않자 젊은 아내는 아이를 업고 남편을 찾아갔다. 어느 정도 감은 있었지만 남편은 새살림을 차려서 딴 여자와 함께 신혼부부처럼 살고 있었다. 자식들이 굶고 있는지 아픈지도 모르고 엉뚱한 짓을 하는 남편에 대해 분노를 쏟아냈다. 화가 머리끝까지 오르자 업고 있는 아이를 내려놓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단다.
그때부터 남의 집일을 다녔다. 그만그만한 아이들을 두고 일 갔다 오면 아이들은 엄마를 기다리며 자지 않고 저희들끼리 방안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모습에 울컥 눈물을 쏟아냈다. 하루는 일을 하고 오자 큰딸이 배고픈 지 먹을 것을 찾기에 밥을 해서 그릇에 담으니 밥 한 그릇이 겨우 나왔다. 먹으려고 밥상에 앉아서 한 숟가락 뜨더니 “엄마 나 배 안 고파” 하면서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하루 종일 일하고 저녁을 굶는 엄마 모습을 보고 먹던 밥을 놔두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 부엌에 나가서 소리 죽여 울었다.
남편의 동업자가 찾아왔다. 말 꺼내기가 쉽지 않은지 머뭇거리더니 남편에게 두고 간 아이를 데려 오는 게 나을 거라며 슬며시 아이의 안부를 흘렸다. 바람난 남편 때문에 자식들과 먹고살기 위해서 남의 삯일하는 걸 보면서 그런 말 하게 됐냐며 쏴 붙이자.
아이가 말라서 거의 죽음 직전에 있어서 아이에게 변고라도 생기면 한이 될 것 같아서 그래도 낳아서 기르던 엄마 품에 있으면 죽음은 면할 것 같아서 일부러 찾아왔다고 했다.
홧김에 아이를 두 사람 앞에 내려놓고 왔지만 어찌 잊을까. 그래도 분유 먹던 아이라 굶기지는 않을 걸로 생각했었는데 죽음 직전이라니. 그 길로 아이를 찾으러 남편에게 갔다. 여자는 눈에 보이지 않고 남편이 일하고 와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아이를 이지경으로 만들어놓고 입에 밥이 들어가냐고 악을 쓰고 아이를 업고 나와 버렸다..
걷던 아이는 두 달 만에 비쩍 말라서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 팔다리가 장작개비 마냥 말라서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모습에 분노가 일자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이 아이를 업고 무슨 일을 해서 굶지 않고 살 것 인지 답답한 현실 앞에 갇혀 버렸다.
아이를 업고 무작정 동네를 한 바퀴 둘러봤다. 더운 날씨라 목이 타고 갈증이 났다. 멀리서 아이스케키를 외치는 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 어린아이들도 얼음과자 통을 메고 목이 터져라 외치며 얼음과자를 파는데 무기력해진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이스케키 하나를 사서 아이 입에 흘려 먹이며 아이스케키 장사 하려면 얼마만큼의 돈이 필요하냐고 아이들에게 묻자
“왜 아주머니가 장사하게요? 돈이 없어도 장사할 수는 있지만 우리 같은 애들이나 하지 어른들은 못해요.” 아이들의 기준으로 봐도 무리일 것 같은지 얼음과자 값을 챙겨서 가버렸다.
아이 업은 여자에게 일하러 오라는 사람은 없고 무슨 방법으로 돈을 벌어야 할지 가슴이 먹먹했다. 뙤약볕에 얼음과자공장으로 가서 공장 실무자를 만나서 사정얘기를 하고 내일부터 나와서 얼음과자 팔러 다닐 수 있게 해 달라고 했다. 실무자는 땀을 흠뻑 흘린 모습으로 등에 업은 아이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자고 있는 모습을 보더니 처음부터 무리하게 많이 가지고 다니지 말고 조금씩 가지고 다니면서 팔아 보라 했다. 들에 다니며 밭 매는 여인네들에게 팔기도 하고 아이 업은 모습이 안 돼 보였는지 동네 분들도 팔아주어서 여름을 났다.
남의 베 짜는데 가서 베 손질도 해주고 농사일하는 집에서 밥 해주면서 입에 풀칠하며 아이들과 살아온 세월이 무심히 흘렀다. 살기에 바빠서 남편에 대해 미워할 틈도 없이 살아왔지만 어느 순간 남처럼 살던 남편이 집으로 찾아들어왔다. 같이 살던 여자와 관계를 정리하고 들어온 남편을 차마 쫓아내지 못하고 남은 삶을 살았지만 그나마 일찍 세상을 버리는 바람에 홀로 남겨진 몸에 병이 생기자 요양원으로 쫓기다시피 들어왔다며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어미닭이 병아리를 품듯 비바람 불고 춥고 굶주리면서도 4남매를 품어 키웠지만 자기들 삶이 바쁜지 얼굴도 제대로 내밀지 않은 자식들에 대해 섭섭함과 그리움이 동반됐다. 급한 성격만큼이나 감정조절이 안되고 화가 나면 손을 파르르 떤다. 거친 세파를 이겨내며 살아온 삶이 마지막에는 자식들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한다. 하루가 가면 새날이 오지만 할머니는 고달팠던 과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려운 시절 뒤엉켜 살았던 때가 살가운 정을 가지고 살았던 것 같다. 이제 자식들은 제각기 가정을 이루며 자기들의 행복을 찾아 살아가지만 스스로 움직이지 못해 그리운 자식들의 모습도 마음속에 담고 있을 뿐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과 배신감속에 헤매고, 고독이 밀물처럼 가슴속에 밀려오면 멍하니 창밖의 내다보는 날이 많아졌다. 새장에 갇힌 새 마냥 하늘을 향해 비상하는 날개를 펼치는 꿈을 꾸는 그날은 언제 오려나. 한밤의 고요함에 서글픈 마음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살아온 발자국을 되돌아 본다. 삶의 공간인 요양원이라는 작은 공간 안에서 지난날의 서글픈 추억의 설움이 복받쳐 쏟아지는 눈물을 훔치고 있다. 달그림자에 비친 나무가 유리창에 비친다. 나뭇가지사이로 얼굴 내민 밝은 달은 할머니의 한 서린 마음을 위로라도 하듯 노란 달빛을 뿌리는 슬픔에 젖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