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복지에 관심이 많은 시누이가 집에 놀러왔다. 요양원에서 요양보호사 일을 하면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있다. 복지학을 전공하다보니 사회 전반에 의외로 광범위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며 사회 정치 경제 문화 등 연관 된 곳이 많다며 단순한줄 알았던 가벼운 공부가 아니라며 시작한 공부이니 만큼 후회 없도록 최선을 다해서 사회복지사 자격증에 도전할 모양이다.
요양원 일은 할 만하냐고 했더니 힘든 만큼 보람 있는 일이라며 적성에 맞는 일 찾아서 오히려 즐겁다고 말한 그녀의 흡족한 표정이 행복해 보였다. 그날도 할아버지에게 침 세례까지 받았지만 화가 난 게 아니고 대상자를 살살 구슬리자 어린애처럼 고분고분해진 모습이 아이들처럼 순진하다며 휠체어로 이동 할 때도 힘이 따라주지 않으면 대상자의 감성을 유발해서 스스로 몸을 움직이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사용한다고 했다. “어르신 보시다시피 제가 힘이 없어요. 어르신이 몸을 움직여 주면 저를 도와 주신는건데 그렇게 할 수 있어요?”
그렇게 말하면 체구가 커서 꿈적도 안하던 대상자들이 스스로 최대한 몸을 움직여 힘든 이동도 수월하게 해 낼 수 있다며 현장에서 터득한 근무상황을 말했다.
대상자들 중에는 유난히 적응하지 못하고 집으로 보내달라고 소리치며 가족들에게 버림받았다며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불안 해 하는 환자들이 있다. 밤만 되면 집에 간다며 옷 보따리를 들고 배회하는 분들이 있다. 시누이는 아마 어머니도 요양원에 입소하면 그런 분들처럼 요양보호사들 무척 힘들게 할 수 있는 성격일거라며 고분고분하지 않은 어머니의 성격을 얘기했다.
어머니가 칠순을 갓 넘었던 겨울이었다. 옆집에 사는 작은 시누이 남편한테 전화가 왔다. 단순한 안부전화가 아닌 듯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 했는데 아무래도 큰 아들이 있는 쪽으로 옮기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갑자기 배가 아파서 가볍게 생각하고 병원에 갔더니 맹장염이라며 수술하자고 한 바람에 수술대에 오르려고 생각하니 아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수술 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서 퇴원했다며 시누이 남편이 소식을 전했다.
남편이 급하게 고향으로 내려갔다. 다음날 어머니와 함께 비행기로 올라오셨는데 연세가 있어서 그런지 얼굴이 핼쑥해졌고 걸음이 휘청거렸다. 곧바로 종합병원 응급실로 입원시켰다.
식사를 거의하지 못하자 부드럽게 드실 수 있는 죽을 사다드려도 마찬가지로 빈 수저만 들고 있는 모습이 안 돼 보였다. 드시고 싶은 것 있으면 말씀하시면 해 드리겠다고 하자 굴비를 구워서 먹으면 제대로 밥을 드실 수 있겠다기에 굴비를 노릇노릇 구워서 병원에 가져다 드렸다. 보기에도 군침이 돌만큼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굴비를 두어 젓가락 뜨시더니 이내 수저를 상위에 놓았다.
다음날부터는 정밀검사 들어간다며 금식을 시켰다. 시골에서 장거리를 이동한데다가 식사를 제대로 못한 탓인지 지쳐 보인데다 기억력까지 가물가물해져서 평소의 총명함은 사라지고 시든 풀잎 같은 모습이었다. 종일 MRI찍고 심전도 검사하고 조직검사 하느라 몇날며칠을 검사실과 입원실을 드나들었다. 시동생과 남편과 내가 돌아가면서 정밀검사 하는 어머니 수발을 들었다. 마침 혼자 사는 시당숙모님이 오셔서 수발을 맡겠다며 사촌 동서지간에 지난 추억을 얘기하면서 지내면 서로 외롭지 않고 우리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거라며 뜻밖에 제안을 해온 바람에 한시름 놨다. 나도 병원에만 있을 수 없는 처지라 당숙모님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던 참이었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검사는 여러 날 계속 됐다. 수액을 주렁주렁 매단 체 검사실에 갔다가 돌아오면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여러 날을 금식하다보니 기억력이 희미해져서인지 뭘 물어봐도 제대로 대답을 못 하고 엉뚱한 소리를 하곤 했다. 좀 이상했다. 긴장 때문인지 8인실 병실에 있는 환자와 보호자들의 말소리가 소음으로 느껴졌다. 그런 상황에서도 어머니는 보호자들끼리 떠들며 하는 말을 받아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려했다.
식사시간에는 구수하게 풍기는 음식냄새가 식욕을 자극했다. 건강했을 때 비교적 식사를 잘 하시던 어머니는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는지 환자들 식판이 병실에 들어오면 부쩍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판단력이 흐려져서 옆에 사촌 손윗동서가 굶고 있어도 가서 식사하고 오란 말은 안 하고 밥도 못 먹고 검사만 하는 이놈의 세상 차라리 칵 죽어버리겠다며 짜증을 부리더라며 당숙모가 식사하러 식당에 와서 말씀하시면서 사람이 좀 달라진 것 같다고 하셨다.
가슴 졸이며 검사결과를 기다려도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며 했던 검사를 다시 하는지 금식 한지가 여러 날이 돼도 수액만 맞고 있었다. 탈진되지 않을 뿐 배고픔은 여전 할 텐 데 고통스럽기는 자녀들도 마찬가지였다. 췌장암이 의심스럽다던 검사결과는 다행히 췌장염이라 우리는 한 시름 놓였다. 걱정이 사라진 게 아니라 어머니는 예전 기억을 거의 못했다. 살던 집에서 어떤 경로로 오셨는지, 입원한 병원에 오신지 며칠이 됐는지 전혀 기억을 못 하시기에 어머니께서 이러이러 말씀 하셨다고 일깨우면 “내가 그랬냐?” 그 정도였다. 치매 초기증상 같은데, 일시적인 현상이라면 다행이지만 이런 현상이 계속 되면 어쩌나 바짝 긴장되었다.
병원에서 집으로 어머니 소지품을 가지러 오신 당숙모께서 “자네시어머니한테 들볶여서 못 살겠네. 사람을 어지간히 들볶아야 살지, 춥다고 성가시게 하질않나, 배고파서 못살겠다고 성질 부리질않나, 어휴” 친언니처럼 살갑게 해준 사촌 손윗동서한테 어리광을 부린 모양이다.
남편은 퇴근하면 곧바로 병원으로 가서 자고 아침에 출근하곤 했다. 어느 정도 긴장이 풀렸는지 몸살 난 것 같다며 나보고 오늘밤 어머니한테 가서 자라고 나를 데리러 와서 말했다. “어지간히 엄살을 해야 살지 지금 내 몸이 아파 죽겠는데 나를 들볶아서 오늘은 도저히 병실에서 못잘 것 같아, 당신이 좀 자고와”
검사 때문에 물 한 모금도 못 마시게 하는데 물 안줘서 못 살 것 같다 하면 수건을 촉촉히 적셔 입가에 대주면 물 가져오라고 해서 못 견디겠다고 했다. 침대 머리맡에 과일하고 두유, 쥬스가 많이 있는데 혹시 어머니가 드시려고 하면 못 드시게 말려달라고 주변 보호자들한테 부탁해놨다며 어떤 사고를 칠지 모르니 빨리 가야 한다며 재촉했다. 병실에 들어서자 보호자들이 "와!"하고 웃었다.
“할머니! 아들 왔으니까 빨리 다 죽어가는 시늉 해야지요.”
8인실의 보호자들이 한마디씩 던졌다. 어머니가 아들들에게 어떻게 했는지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갔다. 아들이 병실에서 나가자 곧바로 주스를 마시려고 하기에 병실 보호자들이 달려들어 뺏어났더니 어느새 귤을 까고 있어서 귤도 뺏어놨다고 했다. 가슴이 아팠다. 먹고 자는 것은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인데 먹는 것까지 박탈당한다는 허탈감 때문에 아들만 보면 못 살겠다고 난리를 친 것이다. 남편은 집에 가면서 먹을 것이 눈에 보이는데 놔둬서 배는 고프고 먹을 수는 없어서 더 짜증낸 것 같다며 과일과 주스를 같은 방 보호자들 나눠주고 남은 것을 박스에 담아서 가져간 것을 보더니
“저것이 있은께 내 속이 든든하더니 워따워따 다 갖고 가버리네”
무척 아쉬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다행이 췌장염 치료가 잘돼서 정상적인 식사를 하면서 기억력도 제자리로 돌아왔다. 지금도 그때 일을 얘기하면
“내가 언제 그랬다냐? 느그들이 나한테 먹을 것 안 준 것은 생각 안 나냐?”
시누이는 그때 광주에 있어서 병실에서 일어난 소동을 자세히 모르지만 어머니 성격상 주변사람들을 힘들게 했을거라는 것을 예상했다며 유별난 어머니의 엄살이 어디가겠냐며 말을 마치더니 어머니한테 전화를했다.
"엄마 아픈데없어?”
“왜 안 아프것냐 천지가 쑤시고 아파도 내가 꾹 참고 살지, 나는 엄살같은것 안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