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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론의 꽃 Jul 01. 2024

가족


지인한테 전화가 왔다. H의 어머니께서 소천하셨단다. 병원 장례식장에 있는데 고인의 가족이라야 달랑 남매뿐인데 60 전후에 있는 남매도 결혼을 하지 않아서 교인들이 자리를 지켜줘야 될 것 같다며 전화를 끊었다.

H는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시간적 여유가 거의 없었다. 병원과 집을 전전하는 어머니를 모시고 있기에 밖에 볼일이 있어도 어머니가 집에 있으면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 혼자 놔둘 수 없다고 곧바로 집으로 가곤 했다. 일 년이면 거의 절반이상을 병원에 입원하면 어머니의 간병을 직접 맡아서 하고 퇴원하면 불편하지 않게 정성껏 모시고 살았다. 어머니를 집에 홀로 두고 일할 수 없기에 경제적 여유도 없고 역시 결혼 안 한 오빠가 조금씩 주는 돈으로 병원비와 생활비로 쪼개어 쓰는 것 같았다.


병원을 집처럼 드나드는 세월이 20여 년 됐다는데 지칠 법도 하지만 90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건강에 신경을 곤두세운 그녀의 정성도 알아줄만하다. 얼마 전에도 뇌압이 차오르면 심정지 가능성이 있다고 어머니를 위한 중보기도를 부탁했는데 끝내 깨어나지 못하고 영원한 안식처를 향해 영면의 길을 떠났다.

퇴근길에 장례식장으로 바로 갔다. 목사님이 예배를 집례하고 있었다. 상주석에는 두 남매가 문상객을 쓸쓸히 맞고 있다. 생명의 끈이 다 할 때까지 어머니의 손을 붙들었던 H는 수척해진 얼굴로 슬픔을 견뎌내고 있다. 고통 없는 영원한 안식처에서 영면을 기원하는 목사님의 예배로 찬송가가 울려 퍼지고 고인의 자녀들의 위로를 끝으로 예배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왔다.


너무 쓸쓸한 장례식장 풍경에 마음이 안 좋았다. 흔히 보는 가족들이 와글와글하는 장례식 모습과는 너무 달랐다. 가족은 작은 공동체이기 때문에 기쁨도 슬픔도 함께 할 수 있어서 때론 힘이 되고 때론 어려움도 같이 극복해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어머니를 여윈 H의 슬픈 눈동자 속에서 진한 외로움이 서려 있었다. 가정이라도 이루고 살았다면 이렇게 쓸쓸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다가왔다.

찬송가 '하늘 가는 밝은 길' 고요히 부르는 선율에 눈시울을 붉히는 H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 전날까지 어머니의 두 손을 잡고 생명을 연장시키려 주치의께 매달리던 순간도

그녀도 주치의도 의술의 한계를 넘어서 자연의 섭리에 순응해야 함을 깨달았을 때는 포기가 아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어머니의 생명을 조금이라도 연장시키려 노력했던 그녀건만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그 길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죽음 앞에 경건해진다, 삶을 마무리하는 그 시간만은 신의 섭리를 거부할 수 없다. 발인예배가 끝나고 공원묘지로 향하는 마지막 순간에 영정을 들고 나오는 아들의 모습에서 쓸쓸한 어머니의 마지막 길을 앞장서고 있다.


베란다 문을 통해 아침 햇살이 거실까지 들어와 있다. 문밖에 푸른 나무사이로 까치들이 나무 위에서 햇살을 받으며 일광욕을 하는지 날개를 퍼덕거리며 나뭇가지를 분주히 옮겨 다닌다.

까맣게 익은 버찌가 나뭇가지에서 툭툭 떨어진다. 숫자를 세워봤다. 한 나무 위에서 눈에 보이는 것만 다섯 마리 되는 대 가족이다. 한 무리의 까치가족이 회의를 하는지 분주한 모습이다. 그들도 서열대로 질서에 맞춰 생활한 것 같다. 까치가족들의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새들도 가족이 있어 평화로운 삶을 사는데, 장지에서 돌아온 다음에는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H의 모습이 은근히 걱정된다. 그 외로움을 혼자서 달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텐데, 슬픔을 이겨내려면 가족과 지인의 위로가 있어야 할 텐데 한동안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결혼하고 자녀들을 생산하여 가정을 이루어 가족이 함께 하라는 뜻이다. 가족이 있는 것은 축복이다. 하나님께서는 가정을 이루라고 명령하셨다.


중국으로 출장 간 아들이 기다려진다. 오늘 오기로 했는데 소식이 없다. 출장이 연기되면 연락을 할 텐데 소식이 없다. 힘들고 어려울 때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것도 가정이라는 울타리와 가족이 보내는 한마디의 위로가 큰 힘이 된다. 밤 11시가 넘어서 아들이 여행용 가방을 끌고 집안으로 들어온다. 반가운 마음에 나갔더니 피곤에 지쳐있는 아들의 모습에서 진한 가족애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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