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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대를 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되나요?”
“이 길을 따라서 올라가면 최고봉이 나와요. 산에 오르는 길에 푯말이 있으니 주욱 올라가면 됩니다.”
등산배낭을 메고 등산스틱을 잡은 60대 초반의 남자가 연주대를 오르려고 지나가는 등산객을 향해 길을 묻는다. 관악산 입구에서 만난 남자는 70년 초에 나훈아가 불러서 히트했던 흘러간 유행가 “임 그리워”를 휘파람으로 불며 연주대를 찾아 올라간다.
물어물어 찾아왔소 그님이 계신 곳에
차가운 밥바람만 몰아치는데
그님은 간 곳이 없네...
관악산 최고봉인 연주대(戀主臺)는 글자 그대로 주를 그리워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그가 부르는 휘파람 콧노래로 목적지를 향하는 뜻이 담겨있을까? 오가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무슨 뜻을 가지고 가는지, 아니면 우리처럼 단순히 더위를 피해서 올라간 것인지 그 속내는 알 길이 없다.
휴일아침 남편친구부부와 넷이서 더위를 피해서 관악산으로 향했다. 산 아래서 차를 주차시키는 데 도로 양옆이 주차장으로 변해있었다. 더위를 피해 산으로 올라간 사람들이 미리 주차시키고 나머지 차들은 주차할 공간을 물색하기 위해 배회하고 있다. 국정교과서 회사 정문 앞에 주차시키려 하자 회사 경비원이 정문 앞에는 주차할 수 없다고 다른 곳으로 가라고 말한다. 남편은 다른 곳도 이미 꽉 차서 갈 데가 없으니 회사 안에다 주차 좀 하자며 문 좀 열어달라고 말하자 외부차량은 들어올 수 없다고 말한다. 일요일이라 회사 안에 차량도 없는데 잠깐 주차 좀 시키자는 엉뚱한 제안에 경비원은 어이가 없는지 저쪽으로 가면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며 골치 아픈 민원인을 떨쳐내기에 바쁘다. 길목에 산책로방향이 있어서 산으로 오르는 사람들이 꽤나 많이 눈에 띄었다.
날마다 쏟아지는 불볕더위는 아스팔트 위를 불로 달군 것처럼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차 있다. 어지간한 더위에도 선풍기 바람을 피해 다니던 나도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그립다. 집안에도 열기가 가득 차있어 조금만 감정을 건드려도 폭발할 것 같다. 아들은 속에서 열이 올라온 지 “아이고 더워”를 연발한다. 사람마다 느끼는 체온의 감정이 다르다는 걸 남편도 아는지 모르겠다. 더위를 피해서 관악산으로 함께 놀러 가자는 남편친구의 전화를 받고는 머리도 식힐 겸 집에서 나왔지만 차를 가지고 나온 사람들이 많아서 관악산 아래는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귓가를 스치는 시원한 소슬바람이 등에 흐르는 땀을 식혀주었다. 계곡에는 가족들과 또는 친구들과 함께 과일과 도시락을 싸와서 먹으며 흐르는 냇물에 발을 담그고 있다. 산등성이 오르는 길에 연주대(戀主臺)라는 푯말이 그려져 있다.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위태롭게 서있는 소나무가 눈에 띈다. 바위 위의 절벽 위에 비바람을 견디며 만고풍상을 겪고도 쓰러지지 않고 고고한 모습으로 우뚝 서있는 생명을 유지한 것을 보면 강인한 생명력은 미물에 가까운 식물일지라도 소홀이 할 수 없는 생명의 신비를 느끼게 한다. 나무와 어우러진 기암절벽은 생생한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또한 다음과 같은 전설도 전한다. 조선초기 태종은 명석하고 영리한 셋째 왕자 충녕대군을 태자로 책봉하려 하자 이를 눈치챈 첫째 양녕대군과 둘째 효령대군이 왕궁을 빠져나와 발길 닿는 대로 방랑의 길을 떠나 이산 저산을 헤매다가 며칠 만에 문득 발을 멈춘 곳이 관악산이었다. 그들은 관악사에 들어가 입산수도하면서 왕좌에 대한 집요한 미련과 동경하는 마음을 누를 길 없어 관악사를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그러나 왕좌에 대한 미련으로 발길은 언제나 왕궁이 바라다보이는 산정으로 향하였으며, 이 연주대에 올라 왕궁을 바라보며 왕좌를 그리워하였다. 그리하여 관악사의 이름도 어느덧 연주암으로 바뀌게 되었다.
연주대 [戀主臺] (두산백과)
아버지 태종의 뜻을 거역하지 못하고 왕위계승자가 되지 못한 그들의 운명을 스스로 받아들여야 했기에 왕궁을 향한 그리움이 서린 곳, 연주암에서 의 지난 역사의 두 왕자의 삶이 베여있는 곳이다. 아이의 손을 붙잡고 연주대를 향한 발걸음을 재촉하는 한 가족은 그곳에서 600여 년 전의 역사를 아이에게 가르치려고 힘든 발걸음을 옮긴 것인지 흐르는 땀을 닦으며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그늘이 있는 계곡 물가에 자리를 잡았다. 바로 옆에는 우리처럼 친구 가족들끼리 놀러 온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놀고 있다. 물 위에 나뭇가지에 끈을 매고 성인용 요람 위에 누워서 흔들리는 대로 망중한을 즐기는 중년의 여자는 일어날 줄을 모른다. 주변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편안함을 마음껏 즐기고 있다.
남편친구 부인 Y는 두발을 물에 풍덩 담그고 어린아이와 같이 물놀이에 정신없다. 몇 시간을 요람 위에 누워있던 여자도 집으로 가기 위해 일어나서 돗자리를 챙긴다. 한낮더위가 물러가고 조금 시원해지자 물가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연주암까지 올라가자는 남편에게 굳이 힘들게 갈 필요 없이 내려가자고 하자 짐을 챙겨 하산을 했다. 왕좌를 눈앞에 두고 정처 없이 흘러들어온 연주암에서 왕좌를 그리며 흘렸을 눈물을 생각하며 왕자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며 발걸음을 옮길 때 “임 그리워”를 부르는 등산객의 휘파람소리가 아득히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이 글을 쓴 2016년 8월 여름에도 올해처럼 더웠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