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샤론의 꽃 Sep 21. 2024

이혼, 피할 수 없는 상처


가을바람이 귓전을 스치는 어느 날, 병실로 찾아온 남자 두 명은 K를 데리고 가는 허리를 흔들며 활짝 웃고 있는 코스모스 사이를 가르며 병원 옥상 공원으로 나갔다. 추석명절 다음날 찾아온 사람은 K의 친구들이었다. 오랜 시간을 얘기하다가 친구들은 가고 K만 병실로 들어왔다. 타고 다니던 전동차에서 내린 그는 친구들에게 받은 돈이라며 수표 두 장을 꺼내보였다. 백만 원짜리 수표 두 장을 보며 친구들이 필요한 곳에 쓰라며 주고 간 돈이라고 했다. 다음날 아들 내외가 방문하자 통장에 입금하라며 수표를 아들 손에 건넌다.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도움을 준다는 친구들은 성격 좋은 K에게 거액을 선뜻 낼만큼 신뢰와 우정을 쌓고 있었다.

K는 뇌종양으로 수술을 받았고 편마비로 활동을 못하자 요양병원에 입원하면서 병원은 그의 생활의 근거지가 됐다. 발병하기 전에 택시 운전을 하며 생활 한 성실한 가장이었던 것 같았다. 그런 그에게 운명이 빗나가기 시작했다. 아내가 식당을 하면서 부부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일 하지 않은 날은 아내식당에 나가서 일을 도울 만큼 성실하게 생활했지만 돈은 늘 쪼들리기만 했고 아내와도 다투는 일이 잦아졌다.

아내가 좀 달라졌다고 생각하면서도 싸우고 나서는 성격 좋은 K가 먼저 화해를 요청하는 편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아내와 다정하게 손잡고 이야기하며 걸어가는 남자는 다름 아닌 식당 단골손님이었다. 예전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아내를 의심하는 것은 가정을 파멸시킨 지름길이라고 생각하며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었다. 두 사람의 모습을 보는 순간 상상이 현실이 돼버렸다. 그는 이성을 잃었다. 그날 밤 아내에게 처음으로 손찌검을 했다며 그 후로 이혼을 했다고 했다. 용서할 수 없었냐는 물음에 한번 뒤돌아선 여자는 남편과 자녀가 있는 가정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선택했다며 들리는 소문에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혼 후 그는 새로 야채행상을 시작했다. 트럭을 한대사서 돌아다니면서 야채를 팔았고 저녁에 집에 들어갈 때는 소주 한 병을 사가지고 가서 밥 대신 안주 없는 술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하루도 빼지 않고 새벽에 일어나 중학생인 아들의 아침밥을 챙겨주는 생활을 하다가 건강에 이상이 왔다. 뼈저린 후회를 했지만 과거의 잘못된 생활습관의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만 했다.

병원에서 뇌수술을 받았지만 언어장애가 왔다. 말을 하려 하면 머릿속에서만 뱅뱅 돌뿐 입에서는 웅웅 거리기만 하지 제대로 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비록 편마비가 생겼어도 남은 삶을 위해서 언어라도 제대로 구사해야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그는 퇴원 후에 집에 노래방 기구를 설치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노래를 불러댔다. 조금씩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린아이가 말을 배우듯이 기초 언어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약간 어눌하긴 하지만 정확한 언어구사를 할 만큼 의 효과가 있기까지는 그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였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부모님은 성실했고 5형제 중 차남인 그는 부모에게 씻을 수 없는 불효를 저질렀다며 지난날을 회고했다. 중학생인 그는 학교 가기가 너무 싫었다. 학교 가서도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으니 가방만 가지고 왔다 갔다 하는 생활에 싫증이 났다.  친구와 함께 부모 몰래 가출을 했다.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아들이 소리 없이 사라지자 수소문을 했지만 사라진 아들을 찾아낼 방법이 없었다. 날마다 새벽에 교회에 나가서 아들 돌아오기를 기도하며 혹시나 하고 밤에도 대문을 잠그지 않고 아들 소식을 기다렸다. 공장에 취직해서 친구와 함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서울로 아들을 찾아 나섰다. 아들이 살고 있다는 근처에서 아들을 발견한 어머니는 길 건너에 있는 아들을 보고 놓치지 않으려고 급하게 길을 건너다가 군용차에 치어서 결국 세상을 등졌다. 시골에 홀로 남은 아버지도 어머니 없는 힘든 삶을 살다가 몇 년 전에 세상 떠났다며 불효도 모자라서 자신의 가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병든 몸으로 형제와 자녀들에게 걱정을 끼치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무슨 이유로 이혼을 했는지 누구의 잘못으로 이혼을 했는지 알 수는 없다. 입원 환자 중에 유난히 이혼한 사람들이 많다. 한결같이 여자가 바람나서 이혼한 후에 술로 생활하다가 병 이 나서 병원에 입원했다고 하지만 자세한 원인은 알 수 없다. 술로 인해서 가정불화가 생겨서 이혼으로 갈 수밖에 없었는지, 아니면 본인들 말처럼 여자의 잘못 때문에 술로 세월 보내다가 발병이 됐는지는 어디에 원인이 있건 자기 몸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 이혼 후에 상실감으로 많이 방황했다는 그도 세상을 원망하기보다는 자기의 삶에 책임 있는 생활을 했다면 지금보다는 삶의 질이 훨씬 좋았을 텐데 뒤늦게 후회하는 그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작가의 이전글 마지막 인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